유럽은 지역난방-열전략 접목·지원으로 탄소저감 및 효율화
정부 내 컨트롤타워 설치 및 열에너지 정보·통계 DB화 시급

최종에너지 50% 달하는 열 방치로 정책 왜곡

[이투뉴스] “산업부 내에서조차 열에너지 업무가 분절돼 있어 종합적인 컨트롤을 못하고 있다. 열에너지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를 위해선 산업부를 중심으로 해양수산부, 환경부, 국토부, 기재부까지도 함께 아우르는 범부처 차원의 TF가 필요하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국감에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김정호 의원(더불어민주당, 경남 김해을)은 중요한 열에너지가 방치되고 있다며 산업부에 체계적인 컨트롤타워 역할과 함께 열에너지 관리를 위한 종합대책을 주문했다. 심지어 “현재 산업부 내 열에너지 업무가 에너지정책실 산하 4개 부서에 분산돼 있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열에너지는 거의 모든 국가에 필수적인 에너지다. 세계적으로 최종에너지의 50% 이상이 열에너지 생산을 위해 투입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 기준 최종에너지 중 열(냉·난방)은 50%, 수송 30%, 전력 20%로 구분했다. 특히 가정·상업 부문에서의 열에너지 비중은 이보다 더 높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각국이 다르다. 유럽의 경우 탄소중립 및 에너지전환을 위해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방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이렇다 보니 전력부문의 경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 탄소중립 정책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나 열부문은 지극히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치를 넘어 친환경·저탄소 열에너지에 대한 차별도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무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뤄지기까지 브릿지 역할을 해야 하는 열병합발전과 집단에너지 등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열에너지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과 계획 없이 다른 에너지계획에 의해 산발적으로 다뤄지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부문 58%, 비주거부문 50% 차지
최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주거부문의 최종에너지 사용량의 58%가 냉난방에너지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에너지원별로는 도시가스가 61%로 가장 많고 석유 17%, 지역난방 12%, 전력 7% 등이 뒤를 이었다. 에너지원은 다양하지만 이중 상당수가 열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용됐다는 의미다. 비주거부문의 열에너지 소비는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주거부문과 비교할 때 열에너지 소비 비중이 소폭 낮으며, 전기에너지 비중이 54%로 가장 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산업부문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냉난방을 포함한 열에너지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동력 및 기타 35%를 제외한 나머지가 보일러, 히터·건조기, 오븐 등 열에너지를 얻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최종에너지 중 열 수요비중은 산업부문 40%와 건물부문 12% 등 52% 수준이다. 나머지 48%는 동력, 가전, 조명 등 非열수요로 집계됐다.

이처럼 열에너지에 대한 소비가 여전히 크지만 열에너지에 대한 정보·통계는 찾기 힘들다. 열에너지 용도별 소비와 설비별 통계는 물론 소비특성 정보가 거의 없어서다. 지역난방 및 산업단지에서 공급하는 열에너지에 대한 정보 외에 나머지 열에너지 관련 데이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열에너지 정책이 방치되는 이유는 전담부서가 없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에너지원별로 정책을 펼치는 행태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통합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운용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세부 업무도 조각조각 나뉘었다. 에너지효율 및 수요관리, 집단에너지, 도시가스, 열사용시설 등이 여러 부서에 혼재돼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에 전담부서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여러 곳으로 분산된 형태로는 가정·건물·공공부문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즉 최종에너지 수요의 50%에 달하는 열에너지의 효율적인 관리와 탈탄소화를 위한 정책 마련과 이행을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쌓이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수립을 위해선 열에너지 관련 정보·통계시스템 구축이 필수라는 진단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열에너지 관련 정보 중 미활용 열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내용이 일부 추진되고 있지만 합리적인 열에너지 정책 수립을 위해선 기반이 되는 다양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국회기후변화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제용 서울대 교수는 “전기에너지는 전기본 등을 통해 잘 짜여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용하는 총에너지 중 전기는 20%에 불과하고, 열에너지가 더 많다. 현재 열에너지는 계획이 없고, 통계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가정·건물·공공 부문 탄소중립과 탈탄소화를 위해선 열에너지에 대한 종합계획과 로드맵이 필수”라며 “정부에 전담조직을 먼저 구성한 후 열에너지 관련 정보 및 통계에 대한 데이터 관리가 이뤄져야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U, 에너지안보 패키지로 열전략 제시
열에너지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시각차는 크다. 우리는 열부문은 거의 방치하고 있지만 유럽은 열전략(Heating and Cooling Strategy)이 에너지안보 패키지 4개 요소 중 한 분야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특히 이를 통해 열부문 탈탄소화를 비롯해 건물 및 산업부문 에너지효율 향상, 전력과 열부문의 통합(P2H)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EU 열 전략 개요도.
EU 열 전략 개요도.

에너지효율지침(EED)과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도 회원국 에너지기후계획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2018년부터 지침을 통해 2030년까지 에너지효율의 32.5%를 향상시키도록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공동주택의 가구별 난방소비 측정이 가능하도록 스마트계량기 및 열비용 분배기를 보급하는 것은 물론 냉난방 소비자의 사용량 및 요금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강화하는 추세다.

가정·건물부문의 에너지 절감 및 효율화를 위해 지역난방시스템과의 연계 및 폐열 활용을 적극 권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고효율 열병합발전과 미활용 열에너지 이용, 재생열에너지 접목 등 집단에너지가 효율적인 매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국내에선 열에너지 부문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찾기 어렵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 등 일부 원별 계획을 통해 미활용 열원 사용 확대, 지역간 열거래, 국가열지도 구축 등을 제시한 바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열지도 역시 한국지역난방공사가 구축을 완료했으나, 데이터와 활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 에너지공단으로 이관되는 상황이다.

비교적 데이터가 풍부한 집단에너지 외에 도시가스 및 석유류(등유, LPG)를 사용하는 개별난방 사용세대의 용도별·세대별·면적별 사용량 등 다양한 사용정보를 취합해야 하는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 여기에 산업부문에서의 열에너지 사용정보와 전기→열 전환 비중 및 손실률 등에 대한 데이터도 전무한 실정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계획은 내놨으나 실행이 안되고 있는 RHO(재생에너지 열공급 의무화) 이행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재생 전력과 열 간 보급 불균형이 계속돼선 가정·건물·공공부문 탄소중립과 탈탄소화가 어렵다는 목소리다. 전기로의 집중현상이 심각한 분산에너지 및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역시 전기+열에너지에 대한 사업모델 마련도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에너지 정책의 왜곡으로 도시가스와 LPG, 등유를 사용하는 개별난방과 지역난방 간 교차지원 및 역차별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를 비롯해 요금제도 등에서 적잖은 부작용이 나오는데도 정부 외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 유상할당이 임박한 열병합발전소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더 많은 개별난방은 대상에서 제외하고, 원천적인 저감시설인 집단에너지는 일반 화력발전과 동일시하는 이상한 구조라는 것이다.

원료용 요금이 치솟는 상황에서 도시가스 민수용 요금을 추종하도록 설계돼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지역난방 열요금도 개선이 시급하다. 천연가스의 경우 가스공사가 미수금 형태로 원료비 상승피해를 떠안아 소매단계에선 피해가 없지만 지역난방사업자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집단에너지업계 한 CEO는 “구역전기를 포함한 집단에너지사업은 기후대응 및 에너지전환 측면에서 가장 비용효율적인 수단이자, 탄소중립 및 에너지효율 향상에 가장 앞선 공급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왜곡된 에너지정책이 가정·건물 부문의 탄소중립 및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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