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진 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 센터장
수송용 석유제품 중심으로 소비량 급증
주유소 150여개 불과, 음성시장도 만연

정우진 센터장이 북한 석유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우진 센터장이 북한 석유산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투뉴스] 새해부터 남북관계가 심상찮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원천 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맞불을 놨다. 8~9일 군수공장들을 돌아보며 "대한민국은 우리의 주적이다. 한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고 했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즈음에 정우진 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 에너지자원센터장<사진>을 만났다. 1세대 북한 에너지 전문가다. 북한자료가 부족했던 1990년대부터 에너지경제연구원(이하 '에경연')에서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줄곧 광물분야를 연구했다.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 수립 등 굵직한 업무를 맡았다. 2018년 에경연을 퇴직하고 센터를 이끌고 있다.  

이날 정 센터장은 남북관계와 아랑곳없이 단호하고 분명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했다. 인터뷰 내내 남북관계에는 부침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제까지나 나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좋지도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울러 북한 에너지시장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특히 석유산업은 향후 가장 잠재력이 큰 영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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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 센터장.

-북한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게 됐나.
"1990년대 초 에경연에 있을때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북한 에너지 관련 과제가 하나 들어왔는데 이것이 시작이었다. 본래 다른 사람이 맡았던건데 갑자기 그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나에게 왔다. 한두달만에 마무리지어야 했는데 정말 미치겠더라. 당시에는 북한 자료가 정말 없었다. '내외통신' 자료를 활용했다. 북한 관련 뉴스를 담은 일종의 잡지다. 나 포함한 연구원 셋이서 석탄의 '석' 자 하나만 나와도 다 뽑아내 전부 복사했다. 그리곤 자료를 바닥에 연도별로 쫙 정리했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시대가 아니니 별수 있나.(웃음) 모아 놓고 보니 조금씩 흐름이 보였다. 그걸 토대로 1993년 남북한 에너지체계를 비교분석한 연구보고서를 냈는데 이게 히트를 쳤다. 통일부에서도 연락이 왔을 정도니까." 

-당시 북한 에너지 상황은. 
"지금도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과거보다 신재생에너지가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북한 에너지는 무연탄과 수력 중심이다. 이를 '수주화종(水主火從)'이라 한다. 수력이 주, 화력이 종이라는 뜻이다. 석유, 원자력, 유연탄, 천연가스 등으로 다원화된 우리와 대비된다. 특히 석유 소비량은 우리와 비교할때 1%가 안 된다. 또 하나 키워드는 '자력갱생'이다. 주체사상에 입각해 에너지도 자급자족하겠다는 주의다. 신재생에너지 성장배경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환경적 이유보다는 자체적으로 공급이 가능한 분산형 에너지원으로써 신재생에너지를 개발·보급했다." 

-원유도 스스로 자급자족하나. 북한에는 유전이 있나.
"아니다. 북한은 유전이 없다. 1950년대부터 석유탐사를 추진했으나 아직 원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서방기업들이 유전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영세한 기업이라 초기단계에 그쳤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석유공사와도 이야기가 있었다. 단 논의에 그쳤다. 북한은 동해안보다는 서해안에 유전이 있을 확률이 높다. 대표적인 지역이 서한만분지다. 높을 확률로 원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2000년초 북한과 협정을 맺고 현재 에너지공기업 CNPC가 이곳 탐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애매하게 걸진 위치다. 북한과 중국은 이곳을 두고 각기 자신의 해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원유를 수입할 것 같은데.
"과거에는 양국에서 원유를 들여왔으나 현재는 중국에만 의존하고 있다. 1997년 이전에는 중국에서 오는 수입물량이 연 800만배럴에 달했으나, 이후 400만배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가 2017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의거해 원유 수입물량이 아예 400만배럴로 제한됐다. 러시아산 원유는 승리화학 정제시설이 2010년께 가동을 멈추면서 끊긴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에 정유시설은 나선특별시 부근 승리화학과 신의주 부근 봉화화학 등 2개가 있다. 정제규모는 각각 하루 4만배럴과 3만배럴로 작다. 앞서 말한대로 승리화학은 가동을 멈춘 상태다." 

북한의 주요 석유시설
북한의 주요 석유시설

-일년에 원유 400만배럴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대북제재 이후 석유제품 밀수가 늘고 있는 이유다. 공해상(公海上)에서 해상 환적을 통해 석유제품을 조달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 등 수송용 석유제품이 대부분이다. 밀수를 통한 석유 공급물량 최대치는 북한 전체 수입량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엔 접근 제한으로 밀수량이 크게 줄었다가 다시 예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밀수량 자체가 많은 데다 이마저도 정확하게 파악이 안되기 때문에 석유제품 수입량 관련 통계는 신뢰도가 낮다."  

-석유유통시장에 대해서도 설명해 달라.
"미국인 한 북한 분석가가 위성사진(2022년 9월 기준)을 판독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150여개 주유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석유는 원칙적으로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고 배급하는 공공재다. 때문에 주유소는 기관 등에 할당된 석유를 공급하는 역할만을 한다. 일부 주유소는 돈주(부를 축척한 북한의 신흥 자본가, '돈의 주인'의 준말)가 비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유소가 적은 이유는 석유 유통량이 적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큰 규모의 관공서나 공기업은 자체적으로 유류를 보관하는 창고를 가지고 있다. 우리로 따지면 A공사, B시청이 각각 내부에 주유소를 갖고 있다."

-주유소 외 석유를 공급하는 루트는 없나.
"북한에는 연유장사꾼(기름장사꾼)이 있다. 돈주, 장마당(시장) 등 민간 시장이 확대되면서 배급 이외에 석유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현재 연유장사꾼은 유류공급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연유장사는 불법이나 통상적으로 석유거래 시장으로 인식된다. 장사꾼은 기업과 군대에서 유류를 담당하는 보급계로부터, 또는 차량운전수로부터 기름을 받는다. 밀수로 받은 것도 물론 있다. 이러한 기름을 써비차(서비스차의 준말, 운임을 받고 사람이나 물건을 날라주는 차량), 선박, 디젤발전기 등에 공급·판매한다. 심지어 관공서도 석유가 부족할때 장사꾼으로부터 석유를 구입하기도 한다. 타지역 장사꾼끼리도 서로 거래도 한다. 지난해 탈북자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웃음)"

-음성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것 같은데. 
"수송용 연료는 대체하기 힘들다. 차량이 늘어나면서 휘발유·경유를 계속해서 찾게 될 거다. 석유시장이 잠재력이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북한 석유유통망 인프라 구축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다. 우선 평양과 나진 등지에 현대화된 주유소를 설치하는 사업이 가능하다. 우리가 설비를, 북한이 부지를 제공하는 합작투자다. 대부분 중국산을 사용하고 있는 주유기도 좋은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설비 쪽도 마찬가지다. 현재 연유창(저유소)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확충해야 할 타이밍이 분명 올꺼다. 가동이 멈춰 있는 승리화학의 개보수사업도 좋다. 이제 막 개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장을 선점한다는 차원에서 북한 석유산업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정우진, HE is...] 1981년 동력자원연구소(추후 에너지기술연구원, 지질자원연구원으로 분리)에 입사해 에너지업계와 처음 연을 맺었다. 주 활동무대였던 에너지경제연구원에는 1986년 입사했다. 30여년을 근무하면서 자원개발실장 등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자리를 옮겨 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에서 소장을 맡았다. 남북 개발협력 방향과 정책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문가 연구네트워크다. 2년 뒤 연구소가 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현재는 에너지자원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국가 에너지위원회 전문위원(자원개발분야), 국가정보원 자문위원, 산업부 자원개발 융자심의회 위원,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1955년생.

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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