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마다 정상여부 확인해야 사고 시 책임소재 분명
업계도 리스크 관리차원 정밀 EOL검사 확대 도입

[이투뉴스]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아리셀 일차전지 공장 화재에 대한 사정당국의 원인규명과 수사가 한창인 가운데 불량 배터리 셀 방치나 취급과정의 외부충격 등으로 발생한 사후성 화재는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 배터리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공장화재는 이미 제조가 끝난 리튬배터리 셀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단계에서 발생했고, 작업장 내부 CCTV 기록을 보면 1개의 리튬배터리가 저홀로 폭발하면서 삽시간에 인접 배터리 연속 폭발과 대형화재로 번졌다.
이는 배터리 셀을 취급하는 과정의 인적 부주의보다 제조 때부터 문제가 있던 특정 불량 셀이 특정 조건에서 발화할 때까지 해당 셀을 선별해 내지 못한 것이 대형 인명피해를 낸 2차적 원인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리튬셀은 양극과 음극이 얇은 분리막으로만 분리돼 있어 셀 내부의 화학적 결함이나 작은 외부충격에 취약하다. 국내 이차전지 대기업들도 불량부산물(덴드라이트) 성장이나 음극판 접힘, 양극 활물질 코팅 불량, 취급 부주의 등의 이유로 연쇄 ESS 화재를 겪었었다.
겉이 멀쩡해 보이는 셀이라도 제조공정 이후 모듈 제작이나 최종 소비자 사용과정에 언제든 사후성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아무리 셀을 잘 만들어도 이후 모듈화나 팩 등의 공정에서 부주의하게 셀을 취급하면 언제든 불량셀이 될 수 있다.
업계에 의하면 셀을 여러겹이나 층으로 쌓아 모듈을 만드는 과정에도 셀간 용접으로 열충격이 가해질 수 있고, 압축이나 찍힘 등 취급과정의 물리적 충격도 정상 셀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모듈을 하나의 팩으로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즉 셀을 이용한 후속공정이나 제품 사용단계에서 발생한 사후성 화재는 셀 제조불량부터 모듈-팩 조립과정, 또는 사용상의 문제 등 모든 단계가 원인일 수 있으므로 각 단계마다 철저히 불량여부를 확인하는 게 향후 책임소재를 가릴 때 가장 중요하다.
업계는 LG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이 2022년 GM의 전기차 볼트EV 모델 리콜 때 배터리와 모듈공정이 공통적으로 화재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다고 보고 2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 사례를 대표적 예로 들고 있다.
당시 GM은 LG로부터 배터리팩을 공급받아 2017~2022년 생산한 볼트EV에서 화재가 잇따르자 두 차례에 걸쳐 차량 14만1600여대를 리콜했고, 그 비용을 배터리공급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모듈화 작업을 맡은 LG전자가 분담토록 한 바 있다.
일각에서 원인불명 배터리 화재 예방과 만일의 화재 시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셀 제조 이후 각 단계마다 각 셀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정밀 EOL(End-of-Line, 출하검사라고도 함) 검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업계도 전압이나 기계적 강도를 측정하는 수준의 기존 EOL을 정밀 EOL로 강화하는 분위기다. 대구시 소재 전기차 배터리팩 공급업체인 K사의 경우 이미 개별 셀 단위 정밀검사가 가능한 EOL장비와 입고 검사기를 양산라인에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다른 배터리 공급사보다 앞선 공정관리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만일의 사후적 분쟁을 대비하고 향후 도입될 폐배터리 이력관리제도 등에도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세경 경북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모듈회사나 팩회사가 기존의 육안검사나 기전검사로 배터리같은 화학제품의 내부이상을 파악하거나 각 공정에서 셀에 가해지는 외부충격을 알기는 어렵다"면서 "정밀 EOL 등을 통한 공정검사 강화로 사후성 화재 예방과 책임소재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