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투뉴스/발언대]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 사이의 불공정 원전수출 협약이 공분을 사고 있다. 호기당 100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매번 지불해야 하는 불평등 계약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독자수출을 추진한 그간의 전략이 국제 규범과 지식재산권(IP), 분쟁 리스크, 금융·정치 환경 등의 암초를 동시에 만났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원전 신규건설 보다는 현실적인 에너지믹스를 강조한 바 있다. 이제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원전수출을 내려놓고 한수원의 축을 원전 안전운영과 폐로, 비(非) 원전사업으로 옮길 때가 됐다. 리스크가 큰 원전 수출 대신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안전은 숫자와 장치로 담보된다. 한수원은 2년 안에 LERF(대형조기방출빈도)를 50% 감축하는 내부 목표로 정해야 한다. LERF는 사고 초기에 방사성 물질이 크게 새어나갈 확률을 의미한다. 이값이 내려가면 정치·재정 비용이 함께 감소한다. 방법은 명확하다. 정전(SBO)에도 냉각이 끊기지 않도록 이동식·대체 발전기 표준화와 신속 연결 포트를 전 부지에 갖춰야 한다. 또 안전성 논란이 지속돼 온 격납건물 내부 수소제거기(PAR)를 성능 인증제품으로 교체하고, 격납건물여과배기(CFVS)의 신뢰성은 재검증하는 게 바람직하다. 증기발생기세관파단(SGTR), 계통연계형냉각재상실사고(ISLOCA)에 대해서는 조기감지와 자동차단으로 격납 외 우회누설을 구조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내부 화재 공통고장을 케이블 이격·내화 구획으로 줄이고, 비상운전–사고관리–비상대응 등 초기 3시간에 대해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해야 한다.

여기에 적용할 원칙도 필요하다. 확률적안전성평가(PSA)가 설비를 대신할 수는 없다. PSA는 방향을 잡는 도구일 뿐 수소·과압·격납 우회·정전처럼 대형조기방출로 이어지는 경로는 설비로 우선 차단해야 한다. 순서는 설비 보강→현장 성능시험→숫자 공개 순이다. 서류가 아니라 결과로 말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연구개발(R&D)의 축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 10년 뒤에나 개발이 가능하다는 소형모듈원전(SMR)이나 수출지원형 연구는 신속추격형으로 전략을 바꾸고, 안전·폐기물·해체 등에 무게 중심을 둬야한다. 건식저장용기(Dry Cask) 표준, 운송가능 캐니스터(DPC), 부식·지질 장기모델, 섬유광학·가스 기반 모니터링 같은 처분기술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재처리는 외교·안보 문제이기도 하므로 사업화 논쟁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를 기초연구로 돌리고, 본업인 안전한 처분·저장 역량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수출정책은 EPC 패키지(설계·구매조달·시공 일괄)에서 기기서비스 공급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설비·부품(원자로주기기, 터빈, 펌프, 계측기기 등), 정비·해체 서비스와 방사선 멸균·의료동위원소 같은 다품종·다건 제작공급형 수출이 국가 보증과 분쟁 위험을 낮추고, 국내 중소협력사에 꾸준하게 일감을 줄 수 있다. '크고 위험한 한방'보다 '작지만 견고한 100건'이 낫다. SMR, 체코원전 등 리스크가 높은 국내·외 첫 기(FOAK) 건설을 위한 투자·보증은 지양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소위 '따라가는 연구개발'로 바꿔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력도 손볼 때가 됐다. 원자력 건설투자 대신 고준위폐기물(HLW) 안전처분을 위한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건식저장, 운송 규격, 부지의 공동개발 및 동의기반입지, 실시간 감시·검증 시스템을 함께 개발·실증하면 외교 리스크 없이 세계 표준을 선도할 수 있다. 한국의 운영·제조·ICT 강점이 빛을 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안전에 관한 국민신뢰를 얻으려면 내부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LERF·CDF(노심손상빈도) 추이, 상위 위험경로 개선 실적, 배출·해양·대기 데이터를 실시간 또는 정례 공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5km 보상 프레임을 뛰어넘어 이젠 30km 주민위원회와 3자 독립검증체계 및 감시측적망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와 절차준수는 신뢰의 밑거름이다. 

산업 생태계 구조전환도 중요하다. 전환 펀드와 해체·폐기물 테스트베드를 제공해 협력사가 해체·폐기물·방사선 응용 분야로 업을 전화하도록 도와야 한다. 대외적으로 ▶LERF 50% 감축, 전부지 핵심 설비 패키지 1차 준공, 환경 대시보드 정식 공개 ▶CDF 30% 감축, 건식저장 전환율 50%, 비원전(해체·폐기물·방사선 응용) 매출 20% 이상 달성 ▶임원·본부장 평가를 설비 완료율·LERF 감축·훈련 성적과 연동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건 허울 뿐인 원전수출이 아니라 만의 하나 사고에도 국민이 안심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원자력기업이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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