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기 경희대학교 교수(전 대한설비공학회 회장)

홍희기 경희대학교 교수
홍희기 경희대학교 교수

[이투뉴스] 2019년 가을, 필자는 지면을 빌려 '대통령을 위한 열에너지 강의'라는 제목으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호소했다. 당시 전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열에너지의 중요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반응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4년 후인 2023년에 다시 한번 열에너지의 중요성, 특히 재생열에너지의 잠재력과 신기술의 제도권 진입 장애 해소, 그리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과는 악플 보다도 못한 '무플'이었지만, 오늘 다시 펜을 든 것은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정책 분위기가 과거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공약대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출범은 필자와 같은 에너지 전문가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다. 이는 단순히 부처의 이름이 바뀌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필자는 세 번째 기고글을 통해 다시 한번 열에너지와 재생열의 중요성, 그리고 신기술 상용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강력히 전달하고자 한다.

◇ 여전히 전력에 치우친 에너지 정책, 열에너지에 주목할 때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오랫동안 전력 생산과 공급에만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국가 최종에너지 소비량에서 열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기의 2배 이상이다. 특히 건물 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은 전체의 20%를 넘고, 그중 70%가 냉난방과 온수 관련이다. 그럼에도 열에너지, 특히 재생열에너지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나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 듯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조차 냉난방의 탈탄소화를 위해 재생열에너지 의무화를 필수 권고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재생열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다. 하지만 이는 전기에너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열에너지는 배제된 상태이다. 이제는 열에너지에도 관심을 가질 때이다. 건물의 냉난방 및 온수 분야에서 재생열에너지의 광범위한 사용은 탄소중립 사회를 향한 필수 조건이다. 덴마크가 지역난방 열원으로 태양열을 활용하고, 독일이 신축 건물에 재생열 의무화를 시행하는 등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재생열에너지의 무한한 잠재력을 현실화하고 있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자,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 열쇠라고 확신한다.

◇ 신기술의 무덤이 된 한국, 제도 개선이 답이다

필자가 지난 두 번의 기고글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신기술 개발 능력은 뛰어나지만 개발된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상용화되고 제도권에 진입하는 데 엄청난 장벽에 부딪힌다. '선진국에 비해 2배 이상 더딘 상용화 속도'라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올 정도이다. 

이는 단순한 속도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태양광과 태양열을 결합한 PVT(태양광열) 복합열원 시스템은 태양광 PV보다 2배 이상 큰 탄소 저감 효과와 3배 이상의 에너지 생산량 능력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너지공단의 지원사업이나 공공기관 신재생 의무화 사업 품목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평가 프로그램인 ECO2는 PVT와 같은 신기술을 제때 반영하지 못해 제로에너지건축물(ZEB) 확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PVT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냉방 시 에너지 소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데 시컨트 제습 시스템, 고효율 열회수 환기장치 등 혁신적인 열에너지 기술들이 여러 해 전에 개발되고도 시장 진입 타이밍을 놓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경직된 규제와 법령, 그리고 부처 간 칸막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여전히 연탄보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 흡수식 냉온수기 같은 제품이 빠져있고, 공공기관 실내온도 규정에서 습도 조항이 누락된 것 또한 열에너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내온도가 28도라면 상당히 덥게 느껴지겠지만 습도가 40%라면 상당히 쾌적한 상태이다.

특히, 10년 전 입법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되었던 RHO(Renewable Heat Obligation, 재생열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강력히 촉구한다. RPS(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를 통해 전력 부문의 재생에너지는 성장했지만, 열 부문은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RHO 도입은 재생열 시장을 활성화하고 관련 기술의 상용화를 가속화할 핵심적인 제도적 발판이 될 것이다.

◇ 곧 출범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면, 에너지 관련 신기술 상용화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 기존의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으로 흩어진 에너지 관련 기능을 통합하고, 시장의 변화와 기술 발전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주길 바란다. 우선 RHO(재생열에너지 의무화) 확대다. 독일, 스페인처럼 신축 건물 및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 재생열에너지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 도입 및 법령 재정비도 필요하다. 신기술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기술발전 속도에 맞춰 관련 법령을 신속하게 개정해야 한다. 실증 및 제도권 진입 지원도 이어져야 한다. 동절기 평균 COP 등의 성능만 보장되면 공기열 뿐만 아니라 모든 열원의 히트펌프를 포함시켜 철저히 사후 관리해야 한다. 

PVT와 같은 신기술의 성능 검증을 위한 정부 차원의 실증 사업 지원과 더불어 제도권 진입을 도와야 한다. 현실은 반대이며 각종 규제로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계설비의 분리발주 역시 필수적이다. 건축물 에너지 효율을 좌우하는 설비 공사를 건축 공사에 종속시키지 않고 별도로 발주하는 것은 설계와 시공 품질을 높이고 에너지 낭비를 막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수요 측면의 에너지 효율 강화도 과제다. 원전이냐 태양광이냐의 논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건물 부문의 에너지 수요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고효율 열에너지 시스템 보급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제5의 에너지'라 불리는 에너지 절약의 실현이자, 화석연료 사용 억제 및 온실가스 저감에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 해외 사례를 통해 배우는 신기술 정책

해외 주요국들은 신기술 도입과 관련한 정책 및 규제에서 우리보다 훨씬 유연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EU의 재생에너지 지침은 난방 및 냉방 부문의 재생열 의무화를 포함하며, 혁신적인 열 기술 지원 제도를 운영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첨단 난방 및 냉방 기술의 연구, 개발 및 실증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일본 경제산업성과 환경성은 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하며 기술 보급에 적극적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책의 일관성, 유연한 규제 환경, 그리고 실증을 통한 기술 검증 및 시장 확대 지원에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선진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재생열에너지 신기술이 더 이상 제도적 장벽에 막혀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여름철 에어컨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아열대기후화로 예상치 못한 폭우와 가뭄이 반복되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긴박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통령이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을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려 하는 이 시점에서, 부디 재생열에너지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과감한 정책적 지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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