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 격변기 진입, 변수는 늘고 선택폭은 좁아져

[이투뉴스] 부존자원이 없다. 에너지의 96%를 수입에 의존한다. 그런데 국민은 값싼 에너지공급을 원한다.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도 여전히 제조업이다. 그렇지만 원자력은 불안해서, 석탄은 환경부하 탓에 꺼린다. 그래서 신재생에 호감이 가지만 아직 비싸고 부존자원도 부족하다. 그러나 어찌됐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성장에 영향을 줘도 안된다.  

2015년 새해, 우리나라 에너지수급 여건과 국민인식의 현주소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수급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최적의 에너지믹스를 수립해야 한다. 가깝게는 올해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부터, 좀 멀게는 2018년 3차 에너지기본계획까지 기존보다 최적화된 조합을 찾아야 한다.  

물론 상충하는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미래 위험까지 완벽히 회피하는 소위 ‘베스트믹스(Best Mix)’는 애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시대마다 우선 시 되는 가치가 다르고 전망과 예측은 빗나가게 마련이다. 에너지부문처럼 생각지 못한 돌발 변수가 많은 곳도 없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조응하면서 향후 대응전략을 꾸준히 쇄신해 나가는 작업은 중요하다. ‘한국형 에너지믹스’의 필요·충분조건을 짚어봤다. 

에너지부문의 불확실성 증대…국제정세도 시시각각 변화
언제나 그랬지만 에너지산업은 격변기에 진입해 있다. 우선 전 세계적인 인구증가와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이 견인해 온 에너지수요 증가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기조 속에 상승세가 크게 꺾였다. 신흥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 에너지수요(1차 기준)가 정체 국면이고, 일부 OECD선진국들은 올해 마이너스 증가율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 10년간 하향곡선을 그려온 전력수요 증가율이 작년을 기점으로 ‘0%’에 근접해 있다. 이런 기조가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면 올해 수립예정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물론 중장기 에너지정책계획의 구성과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제 에너지정세 또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셰일자원을 품에 안은 미국은 지난해부터 중동 산유국들과 에너지패권을 놓고 사활을 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가 셰일오일 견제를 목적으로 버티기(감산포기)에 들어가면서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이 국가디폴트 위기에 처해 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되든 한국은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다. 국제유가 변동이나 달러화 가치 변화에 따라 무역수지가 달라질 것이고, 유가에 연동된 에너지가격의 급·등락도 예상가능한 시나리오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셰일가스전 개발에 직접 뛰어든 국내기업은 결과에 따라 흥망이 갈릴 수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소비국이자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의 전향적 참여로 불씨를 되살린 기후변화협약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믹스를 요구하고 있다. 2009년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의 30%를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고, 올해부터 시행하는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그 약속을 이행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전체 할당량의 절반 가량을 떠안은 발전에너지 업종은 이렇다 할 감축수단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6차 전력수급계획상 오는 2027년 전체 발전비중의 34%를 차지하게 될 석탄화력의 문제가 심각하다. CCS(탄소포집저장)는 선진국조차 비관적이고, IGCC(석탄가스화복합발전)는 경제성에서 아직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전력수급보다 상위 정책목표로 자리잡아 가는 추세에 비쳐볼 때, 발전부문이 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극단적으론 원자력비중을 기존보다(2차 에너지계획은 29%) 더 높이거나 석탄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의 에너지믹스 재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신재생을 단기간에 대폭 확충할 수 어렵다는 전제 아래) 

에너지믹스 변수는 늘고, 선택할 카드는 줄고  
하지만 현실적 제약을 고려한 ‘신(新)기후 시대’의 믹스 수립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변수는 날로 늘어나는 반면 실제 선택 가능한 카드는 점점 줄고 있다. 가령 경제성과 온실가스만 따지면 원자력 비중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조합이 나오지만 국민적 수용성을 고려할 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석탄 중심의 전원믹스가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조합이란 결론이 나오지만, 감축목표를 고려하면 투자요인이 급감해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나 바이오매스, CCS 등으로 전환된다. (김욱 부산대 전기공학과 교수팀)

이밖에 LNG는 석탄대비 탄소배출량을 적지만 발전원가가 2~3배 이상 비싸 배출권 가격이 톤당 14만원을 넘어서야 유연탄과 겨우 경쟁 상대가 되는 등 기저발전의 보조역할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공급안정성과 신뢰도 측면의 제약이 각각 단점으로 지적된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어떤 조합의 에너지믹스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에너지 수급여건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은 작년 4월 4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하면서 앞서 수립한 탈원전 계획을 전면 폐기했다. 이 계획에서 원자력과 화력은 다시 '중요한 전원'으로 규정됐다.

원전 가동중단에 따른 LNG 연료수입으로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자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급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원전 재가동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다만 일본은 2030년까지 20%를 목표로 했던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좀 더 상향 조정키로 하고 구체적 수치는 계획에 적시하지 않았다.

막대한 셰일가스 생산으로 배짱이 두둑해진 미국은 청정에너지 법안 등을 통해 에너지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EIA(미국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석탄의 발전비중은 2011년 42%에서 2040년 35%로 감소하는 반면 같은기간 가스비중은 24%에서 30%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 틈에 신재생은 16%까지 비중이 상승하고 원자력은 20%에서 17%로 비중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회원국중 프랑스와 독일은 에너지믹스의 중심에 각각 원자력과 신재생을 두는 엇갈린 행보를 걷고 있다. 현재 58기의 원전을 가동중인 프랑스는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발전량 기준)을 최저 48%에서 최고 68%까지 높인다는 전략이다. 반면 독일은 2020년까지 신재생비중을 35%로 높이고 2022년에는 모든 원전을 폐기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앞으로 상당기간 석탄과 원자력에 의존하는 에너지믹스를 추종하고 있다. 작년말 현재 발전설비 믹스(용량기준)는 원자력 22.2%, 석탄 29.0%, LNG 32.5%, 신재생 6.7%, 양수 5.0% 순이며, 6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전망한 2027년 피크기여도 기준 전원비중은 원자력 27.4%, 석탄 34.7%, LNG 24.3%, 집단에너지 4.6%, 신재생 4.5% 순이다.

하지만 원자력은 주변지역 및 국민 수용성에서, 석탄은 온실가스 감축 대응 측면에서 각각 한계를 드러내며 중장기적으로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에너지원별로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이나 환경부하 등 외부비용을 반영한 믹스 재수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전력수급계획의 방향전환과 원전, 석탄 등 왜곡된 경제성 위주의 수급계획을 방향 전환하고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설비 분산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상희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환경경제학에서는 그동안 고려하지 않았던 환경적 가치를 시장가치화(내재화)해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만들면 문제도 자연스럽게 시장내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배출권거래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소통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민간발전사 한 관계자는 전원 믹스 수립을 위한 수급계획과 경제급전 중심의 시장운영간 불일치 문제를 거론하면서 "수급계획은 설비용량 기준으로 비중이 반영되지만 복합의 경우 실제 경제급전 시 발전량 비중이 감소하고 적정 예비율 기준이 없어 적정 용량가격 산정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원전 비중처럼 주요 이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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