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부하용으로는 4번째, 설비규모로는 최대
"배터리 화재는 필연, 데이터공유 관리체계로"

▲울산 SK에너지 울산CLX 50MWh(배터리량 기준) ESS설비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울산 SK에너지 울산CLX 50MWh(배터리량 기준) ESS설비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이투뉴스] 12일 오전 6시 23분께 울산시 남구 고사동 SK에너지 울산CLX에 설치된 51MWh규모(PCS 10MW, LS산전 공급) ESS(에너지저장장치)에서 불이 나 8시간여만인 오후 2시 40분 진화됐다. 이번 화재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3층 높이 ESS센터 건물과 2000여개의 내부 리튬이온배터리, 전기설비 등이 불에 탔다. 설비규모상 10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 시설은 SK E&S가 투자와 운영을 맡고 SK이노베이션(現 SK온)이 배터리를 납품해 2018년 11월 준공된 피크부하 감축용 ESS로 확인됐다. 전기료가 싼 경부하 때 충전했다가 피크시간에 방전해 에너지비용을 아껴주는 시설이다. 당시 에너지신시장 개발 차원에 배터리 제작부터 설치(EPC SK TNS) 및 운영 일체를 SK그룹 계열사가 도맡았다.

이번 추가 화재로 2017년 이후 국내에서 발생한 ESS화재는 자체 진화로 끝난 비공식 화재 2건을 포함 모두 34건이 됐다. 피크부하 감축용 화재로는 2018년 세종과 제천, 이듬해 양산과 울산에 이어 이번이 4번째이며, 배터리 설치량 기준으로는 역대 가장 규모가 크다.

배터리 공급사별 화재건수는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이 20건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삼성SDI가 10건, 탑전지 등 군소업체 3사가 각 1건씩을 기록했고, 업계 사이에 ‘우리 배터리는 한 번도 불 난 적 없다’며 자신했던 SK온도 이번 울산 화재로 처음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ESS화재의 원인은 다양하며, 전소나 데이터소실로 규명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내 ESS시장은 삼성SDI가 약 65%(6GWh)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30%, 나머지 약 5%를 SK온, 세방전지, 코캄, 인셀, 일부 흐름전지사들이 나눠 차지하고 있다. SK온의 경우 4~5개 태양광연계 설비에 배터리를 납품했으나 설비용량이 워낙 작은데다 후발주자여서 비중이 미미하다. 화재 후 SK온 측은 고객사에 배터리 충전율(SOC)을 80%에서 70%로 낮출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정확한 화재원인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해당설비 운영기간이 만 2년을 경과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 충‧방전이 횟수가 누적되는 과정에 특정 셀에 피로도가 누적됐거나 취약한 셀이 문제를 일으켰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기존 ESS화재 31건의 평균 가동기간은 16.5개월 남짓이었다.

ESS 전문기업 한 관계자는 “모든 배터리는 불이 날 수 있는데, SK배터리는 공급량이 워낙 적었던데다 구조적으로 분리막이 LG대비 좀 더 튼튼하다는 특성이 있었다”면서 “원인은 누구보다 해당 배터리회사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전기차에서 불 난다고 내연차로 다시 가자 할 수 없듯, ESS도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 책임을 제대로 지도록 하고, 적절하게 보상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잇따른 화재에 대한 정부의 졸속대처로 국내시장은 한전 주도 전력망용 밖에 남지 않았지만 미국 상업용시장이나 동남아 시장은 이제 막 움트는 단계"라면서 "화재가 계속나니 하면 안된다가 아니라 불이 나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를 강화하고 배터리 회사들도 자사 배터리가 좀 더 화재에 안전하다고 고객에 마케팅 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번 추가 화재를 계기로 배터리 제조사들이 독점해 온 운영 데이터를 제3자나 소비자(고객사)에 공유토록 하고 소프트웨어적 관리솔루션에 관한 정부 인증을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세경 경북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모든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고 100세까지 살 수 없듯, 엄청나게 많은 배터리 셀도 마찬가지인데 지금까지는 그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고 건강검진을 하듯 조기에 증상을 파악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줄 관리체계도 없었다"면서 "어떤 수준의 배터리 진단과 화재 예방 솔루션이 적용돼야 한다는 정부 인증제를 만들어 보험과도 연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환자가 수술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있는 의사라도 어쩔 수 없듯, 아무리 좋은 진단솔루션이 개발되더라도 배터리제조사들이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라면서 "그런 관리체계로 가지 않으면 앞으로 에이징(Aging) 되는 배터리들이 다시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정부가 나서 챙겨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화재 발생 전 SK에너지 ESS설비
▲화재 발생 전 SK에너지 ESS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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