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임기 중 재조정 가능" 논쟁 우회 … 시민단체 "에너지기본법 정신 훼손" 무효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높여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루겠다고 공언했지만 2030년까지의 장기 에너지 전략을 수립하면서 한국 정부가 내린 선택은 '원자력 확대'였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오후 3시 청와대 세종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민관 본회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에너지믹스 결정을 골자로 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8~2030)'을 원안대로 확정했다. <관련기사 2면>

 

이날 의결된 기본계획 원안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화석에너지 비중을 현재 83%에서 61%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현재 2.4%에서 11%로 늘릴 계획이다. 또 현재 26%인 원자력 설비 비중을 최대 41%까지 늘려 36% 수준인 원자력의 발전량 비중을 59%까지 높이기로 했다.

 

이번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된다고 가정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다본 22년 뒤의 우리나라 1차 에너지 수요 전망은 석유 33%, 원자력 27.8%, 석탄 15.7%, 천연가스 12%, 신재생에너지 10.7% 순이다.

 

기본계획은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 전력수급기본계획, 천연가스장기수급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 등을 수립할 때 원칙과 방향으로 삼는 에너지 분야의 최상위 계획이다.

 

◆ 기본계획 탄생까지 = 참여정부 시절 출범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2006년말 1차 회의에서 '에너지비전 2030'을 선포한다.

 

2030년까지 국내 에너지소비량의 35%를 자주개발로 충당하고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9%로 늘리는 한편 석유의존도를 35%까지 축소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목표치는 제시되지 않았으나 정부 차원의 원자력 확대 방침도 사실상 이때 수립됐다.

 

이번 3차 회의를 통해 확정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뼈대가 이 시절 만들어진 셈이다.

 

지난해 8월말 열린 2차 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신국가전략'이 안건으로 상정돼 확정된다. 국가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마련하고 배출권 거래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방폐장 부지선정으로 극심한 사회갈등을 겪었던 터라 원자력 적정비중을 포함한 에너지믹스 결정은 차기회의로 미뤄졌다.

 

그 사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은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을 통해 뼈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에경연은 예상대로 당초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그어 놓은 에너지믹스대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을 내놨다.

 

원자력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이 계획안은 공청회 과정부터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으나 정부측 위촉위원이 절대 다수인 위원회의 특성상 그대로 '제3차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과했다.

 

3차 회의 '무슨 얘기 오갔나' = 제3차 국가에너지위원회에 배석한 인사들에 따르면 이날 본회의는 지경부 장관이 기본계획안을 프리젠테이션하고 이에 대해 위원장과 민관 위원이 의견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됐다.

 

원자력 비중이 쟁점화될 것을 우려한 듯 위원장인 대통령은 원자력 비중에 대한 발언을 자제한 채 시종일관 대체에너지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제로 한 8ㆍ15 경축사를 전하면서 기본계획의 내용 일부를 차용하기도 했다.

 

자율토론으로 이어진 본회의는 자연스레 원자력 비중이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후문이다. 김일중 환경정의 공동대표를 비롯한 5명의 시민단체 출신 민간위원은 일관되게 "원자력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발언을 꺼냈다고 한다.

 

김일중 공동대표는 기본계획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유가전망을 토대로 에너지 수요정점을 반영하지 않은 채 수립됐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고, 이학영 전국YMCA연맹 대표는 정부가 철학과 의지도 없이 원자력 확대라는 손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계획은) 5년마다 한번씩 수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2~3년에 한번씩은 수정해 나가야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속도나 전략, 이런 것을 조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임기중에 한번 더 조정할 수 있다"는 대통령 발언도 기본계획에 대한 시민단체 측의 반감을 달래려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수정없이 기본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별히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도 만나서 얘길 들어보라"는 등의 민간위원 제안에 대해선 즉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회의에서 확정된 기본계획과 관련, 김 대표는 <이투뉴스>와의 통화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다.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길 바랬지만 원안대로 통과돼 아쉽다"고 했고, 민간위원 측 간사인 이 대표는 "과감하게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 잡아도 달성이 불가능한데 정부가 너무 편한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기본계획 무효" = 환경연합, 녹색연합, 에너지나눔과평화를 비롯한 1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에너지시민회의는 지난달 28일 "에너지소비를 조장하고 핵에너지 의존도를 높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무효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민회의는 성명서에서 "시민사회측은 최후까지 그동안 지속적으로 밝힌 의견을 재차 알렸지만 대통령은 세부수치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핵심을 피해 원안을 통과시켰다"면서 "민관 가버넌스를 통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에너지기본법의 본 정신이 심각히 훼손됐다"고 밝혔다.

 

시민회의는 "민간위원들의 이번 참석이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절차가 완성되는 것으로 호도하면 안된다"며 "기본계획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며 에너지기본법 정신에 따라 이번 제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무효임을 밝혀둔다"고 강변했다.

 

김태호 에너지나눔과평화 사무처장은 "기본 계획은 한번 구축되면 변경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 수립돼야 한다"면서 "불확실한 지속가능 에너지체재와 향후 발생할 모든 불협화음은 기본적 원칙과 합의를 깬 정책입안자들이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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