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CSO(기후전문가)

▲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CSO(기후전문가)
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CSO
(기후전문가)

[이투뉴스 칼럼 / 고은] 지난주 폐막한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7)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보상을 위한 재원 조성이었다. 연장 협상 끝에 당사국들은 기후 변화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기금 조성에 극적으로 합의하였으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 논의가 한층 뜨거워짐을 알 수 있는 총회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도 결국 돈의 문제다. 충분한 자금지원과 투자 없이는 빠른 대처가 불가능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내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 공감대는 이루어졌고, 대응을 위한 정부의 재원 마련까지도 이루어졌다. 올해부터 조성된 2조4000억원의 기후대응기금은 탈탄소 이행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 등 143개의 관련사업에 자금을 지원한다. 아울러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예산 편성과 결산과정에서 반영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도 올해부터 새롭게 시행됐으며 288개 사업에 대해 12조원의 예산이 편성돼있다. 

그렇다면 감축활동의 최전선에 있는 산업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실제로 기업에서 ESG를 담당하거나 탄소중립을 고민하는 현업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저탄소 전환을 하자니 비용이 너무 비싸고, 투자의 전망이 불확실하며 이런 애로사항을 해결해줄 제도가 부재하다고 호소한다. 편성된 정부 예산은 결코 적지않은 규모인데 당장 시장이 겪고 있는 고충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사단법인 넥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대상사업 중 산업부문 해당 사업은 85개, 약 2조원 수준으로 이 중 R&D 34%, 산업의 저탄소화 34%, 그리고 금융지원이 2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R&D는 저탄소 기술의 개발, 산업저탄소화는 에너지효율개선 등 현행 최적 가용 기술 기반 감축설비를 보급하는 사업 위주로 구성돼 있다.

모두 넷제로 전환에 필수불가결한 사업임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R&D 기술의 대부분은 상용화 시점이 불확실한 기초연구단계의 기술이고, 감축설비 보급사업은 2015년부터 진행돼온 새로운 것 없는 사업으로 폐열회수이용설비, 고효율기 등 감축효과가 많아봐야 20%대에 머무른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배출량 40% 감축을 목표하고 있다.) 적어도 10~15년 내에 획기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사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르게 말하면 감축량 저감에 기여할 예산 효율성이 훌륭한 사업이 부재하다.

2023년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안 대상사업 중 탄소중립 도시숲조성의 ‘30년까지 누적 예상 감축성과를 따져보면 온실가스 1톤 저감에 약 6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공공시설옥상녹화 사업은 1톤 저감에 1084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1톤의 배출권이 국내에서 현재 2만~3만원선에서 거래가 되고, 배출권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EU의 경우에도 10만원선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 사업은 예산 비효율적인 감축사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공적자금이 가장 시급히 투입돼야 할 부분은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신기술의 도입이다. 혁신적인 감축기술은 업종별로 다양하나, 많은 기술이 경제성으로 인해서 시작품 단계에 머물고 있다. 탄소포집과 활용, 폐플라스틱 열분해 등 한번쯤은 들어본적 있는 기술들이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이렇듯 당장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상용화를 지원하는 예산이 별도로 편성돼 있다면 어떨까? 이런 취지에서 EU는 저탄소 혁신기술의 파일럿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Innovation Fund 기금을 별도로 마련하여 2020년에만 12억유로를 지원하였다. 혁신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김으로써 중단기적으로 획기적인 감축을 이뤄내기 위함이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기업이 탄소중립 이행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보다 잘하려면 정부의 성과보상에 기반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성과보상이다. 행정 편의를 위한, 혹은 국제적으로 구색을 갖추기 위한 예산의 편성과 시행이 아니라 감축 성과에 기반한 재정적 지원이 혁신을 앞당긴다. 무작정 기금만 조성하고 예산만 편성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정말 시급한 곳에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지, 철저한 성과에 기반한 합리적인 지원이 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