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막장. 광산의 갱도 끝에 있는 작업장을 일컫는다. 제일 안쪽이니 막다른 곳이다. 지하 수백미터에서 광원들이 사투를 벌이는 산업현장이자, 누군가의 아버지들의 삶의 터전이다.
1년여전 석탄공사 전남 화순탄광 막장을 들어갈 일이 있었다. 폐광을 6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광원들이 조기폐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가슴 한켠에는 자원담당 기자로서 막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호기로운 생각은 작업복을 입자마자 바로 사라졌다. 무언가 비현실적인 일을 진짜 현실로 맞닥뜨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뜩이나 몇달전 경북 봉화군에서 큰 광산사고가 있었던 터라 불안감은 더했다.
이날 입갱한 채탄 현장은 지하 440m. 갱구가 천운산 110m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니 정확히 지표면에서 수직으로 550m를 내려간 셈이다. 가는 길도 녹록지 않다. 인차(인부를 싣는 광차)를 타고 경사 18도의 사갱을 거쳤다. 막장까지 다다르는데만 1시간가량이 소요됐다.
폭 3.6m, 높이 2.6m의 지하 막다른 곳에서 근로자들이 탄을 캐내고 있었다. 광원들이 마스크를 내리고 목청 높여 말하는데도 도통 들리지가 않았다. 에어펌프로 지상의 공기를 불어넣는 소리, 탄이 광차에 떨어지는 소리, 폭약 터지는 소리 등 각종 굉음이 뒤섞였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숨소리였다.
습도가 높아 숨 막히는 사우나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현장을 동행한 석탄공사 직원은 작업복이 땀에 달라붙어 하루에도 여러번 옷을 갈아입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다. 현장에서 경외심과 존경심을 배웠다.
이런 산업현장임에도 막장이란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다른 의미로 변질돼 사용되고 있다. '막장드라마', '막장스토리' 등의 신조어로 사람들 입방아에 가볍게 오르내리고 있다. 언젠가 한 석탄공사 사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 입장에서 막장을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생각해 봤습니까.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그분들의 가슴에 멍이 들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최근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폐광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그간 광원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였다. 장성광업소는 6월말 이미 종업식을 갖고 탄광사업을 종료한 바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까지 참석한 행사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행사장은 단출했고, 비까지 내려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연출됐다.
막장을 떠나는 산업역군들에 대한 예우가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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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