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바탕 교차판매 옛말…정유사간 서로 다른 셈법

[이투뉴스] 정유사들간의 묵시적 상생관계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인가. 그동안 경쟁 또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던 정유사들간 요즘 모습은 불편함 그 자체다.

일각에서는 30여년간 암묵적으로 동맹을 맺어왔던 정유사들의 관계가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분석까지 제기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간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는 듯하다. 정유사들간 어려움과 기회가 교차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틈새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정유사들이 경쟁과 상생의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경쟁만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유사들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돼 온 교차판매도 끊겼다고 말했다.

교차판매는 정유공장과 먼 곳에 위치한 주유소에 대해 가까운 곳 정유공장을 가진 타 정유사가 대신 석유제품을 공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교차판매는 해당 물량이 비록 타정유사 제품일지라도 품질을 대신 책임을 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상대 정유사 제품을 신뢰한다는 소리와 같다.

교차판매는 특히 운송비를 절감해 석유제품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정유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측면도 있다.

몇십년간 지속돼온 이러한 교차판매가 정지됐다는 것은 그 만큼 서로에 대해 불신과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과 같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A정유사는 최근 국토를 횡단하다시피 하고 있다. A정유사에 불만을 가진 B정유사가 교차판매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A정유사는 어쩔 수 없이 먼곳까지 석유제품을 운송하다보니 늘어난 운송비에 적잖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들간 신뢰가 이처럼 금이 간 주요인과 관련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유통구조를 개선해 기름값을 낮춘다는 목적으로 알뜰주유소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고 최근에는 석유전자상거래도 시작했다.

특히 알뜰주유소를 시작하면서 입찰을 통해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를 물량공급업체로 선정했고 이는 정유사들간의 새로운 경쟁을 불러왔다.

내수시장 점유율 향상에 관심이 높은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공급이 보장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뜰주유소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한국자영주유소연합회는 유통대리점인 한국글로벌에너지를 설립하고 회원주유소에 대한 물량 공급사로 에쓰오일과 협상에 나서면서 또 한번 파장을 예고했다.

자영주유소연합회는 SK이노베이션의 석유제품을 판매하던 주유소 사업자들이 모여 결성한 것으로 이 같은 움직임은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정유사를 압박하는 혼란한 시기를 계기로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다지려는 정유사들의 계산도 불편한 관계를 불러온 요인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해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늘 고심하고 있다.

GS칼텍스는 SK이노베이션과의 격차를 줄이고, 현대오일뱅크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 에쓰오일은 내수시장에서의 약세를 보완해야 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삼성토탈이 정유사업에 진출한다는 얘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정부의 기름값 낮추기 움직임이 정유사들간 경쟁을 한층 촉발시켰다는 분석이다.

석유제품 유통구조를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고,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유소들이 이에 동참하면서 정유사들간의 불편한 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암묵적 동맹관계를 보였던 정유사들간 새로운 경쟁이 시장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주목되고 있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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