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 보급 확대 용이하나 시장 영향 면밀한 분석 필요

 

발전차액 인하를 둘러싼 정부-사업자간의 논쟁이 뜨겁다. 경제성이 확보된 만큼 기준가를 내리겠다는 정부측 주장과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사업자측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차액 삭감을 주장하는 정부는 산업화와 속도조절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보급량 중심의 현 정책을 산업화 육성으로 전환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시장을 공략한다는 밑그림이다.

 

국내 산업이 일정수준 성장할 때까지 보급시장의 '속도조절'은 불가피하며, 이같은 맥락에서 발전차액 인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 정부가 처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국 정부는 늘어나는 보급량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올해 발전차액지원제(FIT.Feed-in fariff)에 배정된 예산은 513억원이다. 전체 신재생에너지 부문 예산의 9.6%다. 이 예산이 한정돼 있는 만큼 기준가를 내리지 않고는 FIT체제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정부는 불과 1년전 작성된 보고서에서 태양광의 100MW 누적용량 포화시기를 2010년으로 내다봤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1391억원의 예산으로 충당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예측과 달리 100MW는 불과 2~3개월내에 완전 소진될 전망이다.

 

차액 삭감안에 따라 약 900MW에 달하는 대기물량이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 잘못된 시장 예측이 초래한 결과다.

 

문제는 FIT 정책을 이끌면서 이처럼 불안한 조정능력을 보여온 정부가 조만간 RPS(의무할당제)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FIT보다 매커니즘이 복잡한 RPS는 정부의 주도면밀한 목표 설정이 성패를 좌우한다.

 

FIT와 RPS간의 정책 논쟁과 장ㆍ단점, 향후 예상 가능한 도입형태를 전망해 봤다.

 


▼ 발전차액 VS RPS = FIT는 '질', RPS는 '양'으로 비유된다. FIT는 보급량 설정 없이 정부가 참여사업자에 대한 보상가격만을 제시하는 반면 RPS는 정부가 일정 목표량을 정해 놓고 달성가격은 참여자의 재량에 맡기는 방식이다.

 

달리 말해 FIT는 정부가 정한 가격에 따라 시장이 보급량을 결정하고, RPS는 정부가 보급량을 정한 뒤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는 형태다. 보급량에 초점을 맞춘다면 RPS가 FIT보다 쉽다.

 

일반적으로 RPS시스템은 보급목표를 최소 비용으로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며, 초과량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하지 않는다. 또 자발적 협약 형태의 RPA와 달리 강제성이 있어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비용 최소화를 추구하는 RPS의 특성상 자원의 지역적 배분과 기술개발, R&D 유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현행 FIT는 가격수준에 따라 도입목표 달성이 유동적이다. 쉽게 말해 발전차액 기준가가 높을수록 보급량이 늘고, 반대의 경우 보급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시스템 설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달리지므로, 참여사업자들의 기술개발을 장려하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

 

단 시장의 예측가격을 미리 정하는 방식으로, 물량 조정과 목표 설정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정부, RPS도입 기정사실화 = 지식경제부는 RPS 도입과 관련, 전기연구원에 중장기 도입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정부는 이 안을 토대로 현행 FIT를 RPS로 선회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으로는 현행 RPA협약 공기업을 비롯, 발전 5개사가 유력시되고 있다. 그러나 설립 목적이 전력공급이 아닌 지역난방공사와 수자원공사는 1차 시행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높다. 또 이들 공기업이 기 설치한 물량은 이미 발전차액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RPS 목표물량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입 방식은 FIT시스템과 병행(1단계) →RPS 도입 및 FIT 일몰제 시행(2단계) →RPS 전면도입(3단계) 순으로 예상되고 있다.

 

1단계인 FIT병행 단계는 현행 발전차액제를 유지하되 한국전력을 비롯한 6개 발전사를 대상으로 RPS를 우선 도입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기존 FIT 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되 연도별로 구매량을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RPS가 본격 도입되는 2단계에서는 기존 FIT에 대한 일몰제가 실시된다. 상업화가 덜 진행된 전원에 대해 FIT를 지속 적용하거나, 별도 조건의 RPS를 적용하는 단계다.

 

마지막 3단계는 RPS가 전면 도입되는 단계로 경과 기한이 끝나지 않은 FIT적용 대상을 제외한 모든 전원이 RPS 의무를 지게 된다.

 

도입 예상시기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대체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가 본격화되는 시점, 화석에너지 SMP(계통한계가격)가 신재생에너지 전원가에 근접하는 시점,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마무리되는 시점 등으로 나뉘고 있다.

 

공급목표는 발전량이나 설비용량 중에서 결정되지만, RPS 제도 자체가 보급량 중심이란 점에서 설비용량을 기준으로 목표가 설정될 가능성이 높다.

 

RPS 전환 방식으로는 3~5년의 시행 예고기간을 거쳐 차액지원 설비의 RPS 전환을 허용하고 신규설비에 대한 지원을 일시에 중지하는 일괄도입 방식과, 신규설비 지원을 단계별로 중단하면서 의무량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부분도입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 국가별 RPS 도입 현황 = 국가별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초기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FIT 시스템이, 어느 정도 시장이 정착되었다고 판단되면 RPS가 시행되는 추세다. 대체로 보급물량에 대한 압박이 심한 국가일수록 RPS 전환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가까운 일본은 2002년 공포된 '전기사업자에 의한 신에너지의 이용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RPS를 도입했다. 매 4년마다 전기사업자가 향후 8년간 달성해야 할 목표치를 정해주는 방식이다.

 

전기사업자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발전량을 채우거나 외부로부터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구입할 수 있으며, 정당한 이유 없이 할당량을 이행하지 않으면 정부로부터 권고나 명령, 심지어 벌금을 물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은 RPS 도입 이후 신재생에너지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져 최근 FIT 개념의 새로운 보급정책을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텍사스주를 비롯한 18개주가 부분적인 RPS를 시행하고 있다. 가장 성공모델로 꼽히고 있는 텍사스주는 이미 10여년전 2009년까지 2000MW의 재생에너지를 새로 건설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채택, 이미 목표를 150% 이상 초과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별로는 캘리포니아가 2017년까지 전체 전력의 5분의 1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 12%까지 목표량을 달성했고, 뉴욕 2013년 25%, 펜실베니아 2020년 18%, 하와이 2010년 10% 등의 목표를 수립해 놓았다.

 

영국은 2002년부터 기존 비화석에너지 공급의무제(NFFO ; Non Fosssil Fuel Obligation)를 재생에너지 공급의무제(RO ; Renewable Obligation)로 전환하면서 RPS를 시행한 나라다. 2003년 3%, 2010년 10.4%, 2015년 15.4%로 각각 목표가 설정돼 있으며 가스전력청(ofgem)이 이를 관장하고 있다.

 

각 전력공급사들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기록된 인증서(ROCs)를 받게 되며, 사업연도 말까지 이를 충족했는지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미달된 양만큼 기금을 물어야 한다.

 

이 밖에 캐나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2002년을 전후로 RPS를 도입해 최저보장가격을 보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 RPS 도입 신중해야 = 이명박 정부는 기후변화를 경제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2012년까지 세계 시장의 12%를 점유하고, 향후 5년 이내에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분야에서 글로벌 TOP3 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도입하려는 RPS가 이같은 산업 육성 목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정확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RPS가 FIT보다 비교우위 보급 정책이라는 확신도 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번 태양광 발전차액 삭감조치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시장 육성에 대한 정부의 정책 의지가 후퇴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RPS 도입 역시 시기와 방법을 잘 선택하지 않으면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올 초 최대 태양전지 생산업체인 일본 샤프는 중국의 Q-Cell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중국 썬테크 역시 일본 교세라를 추월해 생산량 3위 업체로 올라섰다. 태양광 강국인 일본 유슈 기업들이 이처럼 쓴잔을 마신 것은 결국 내수시장 위축 때문이다. 일본은 2004년부터 주택보급 사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바 있다.

 

유권종 에너지기술연구원 태양광발전연구센터장은 "정부가 내수시장 규모를 더욱 확대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발전시장을 제외하고 제조업만 키우겠다는 발상은 공멸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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