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HVDC 권위자' 김찬기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
특허 70여건, 논문 80여편 발표…효성과 전압형 국산화

▲김찬기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이 HVDC 핵심설비 앞에서 직류송전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찬기 전력연구원 수석연구원이 HVDC 핵심설비 앞에서 직류송전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투뉴스] 대전역에서 출발한 택시가 대덕연구단지로 접어들자 비가 그쳤다. 일몰을 한 시간 가량 앞둔 전력연구원은 고즈넉했다. 전력연구원은 한전의 기업부설연구소이자 특수사업소다. 500여명의 연구인력이 한 해 2300여억원 규모의 R&D를 수행하고 있다.(2018년 기준) 김찬기(53) 수석연구원(공학박사)은 1996년 이곳에 입사했다. 한전이 전력연구원을 세계 최고 연구기관으로 키우겠다며 사택을 제공하며 인재를 모을 때다. 형편이 안돼 1년째 신혼집을 마련하지 못한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가난했던 그 청년은 25년 뒤 HVDC(초고압직류송전. High Voltage Direct Current)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가 됐다. 지금까지 70여건의 관련 특허를 출원했고, 80여편의 논문을 해외 유수 학회지에 게재했다. 현재 전압형 HVDC 국산화 연구를 이끌고 있다. 그가 저술한 기술서 <HVDC Transmission>은 북미권 대학에서 교재로 쓰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계획 발표가 있던 지난 20일, 그에게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HVDC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일면식도 없는 자신이 제보자로 오해받고 있다”는 하소연을 건네 듣고서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자주 만나 얘기를 들어볼 걸 그랬다.
 

- 직류냐, 교류냐 ‘전류전쟁(Current War)’이 재점화하고 있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어느 것이 더 좋다기보다 보완관계다. 지금은 99%이상이 교류다. 하지만 앞으로 30~40년이 지나면 교류 대 직류비중이 70대 30, 또는 60대 40까지 될 거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교류는 변압기로 쉽게 전압을 바꿀 수 있다. 또 교류발전기는 직류발전기보다 간단하고 저렴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동기의 80%는 유도기다. 물론 직류도 변환기를 통해 전압을 바꿀 수 있다. 인위적인 전력제어가 가능하며 손실도 적다. 그런데 컨버터 가격이 변압기의 10배다. 40만원대 작은 발전기에 제어기를 붙이면 4000만원이 되는 식이다. 그렇기에 항상 교류보다 직류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소위 회전체인 전통발전기는 교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기는 직류와 궁합이 맞지 않나

“그렇다. 전통발전기와 765kV 조합이 가장 튼튼한 전력망이다. 교류는 고장이 나도 강건하며 차단이 잘 된다. 반면 직류는 고장 시 동시에 망이 죽는다. 이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2000년대 들어 직류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전압을 컨버터로 바꿀 수 있고, 송전탑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어서다. 직류송전은 초고압도 지중화가 가능하다. 대신 아직 후진국이 쓰기엔 너무 비싼 고급기술이다. 직류는 선진국에서 필요할 때만 쓰는 거다. 교류망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 교류 송전선은 왜 바닷속을 지나거나 땅속에 건설하지 못하나

“절연체로 싸인 교류케이블에 전기를 보내면 저항이 너무 커져 나중엔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길어야 40~50km를 간다. 그러면 중간마다 변압기를 걸어 보상을 해줘야 한다. 바다 한복판에서 그렇게 할 수 있나?. 직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또 교류는 3상이라 항상 케이블 세 가닥이 필요하다. 단상이면 2가닥씩 모두 6가닥이 된다. 그런데 HVDC는 한 가닥이면 된다. 교류 지중화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토목비용이 엄청 들 것이다. 다만 HVDC는 상대적으로 부품이 많아 고장도 비례해 많을 수밖에 없다.”

- HVDC는 지멘스, ABB, GE 등 일부기업의 독점시장이고 진입장벽도 높다. 뒤늦게 시작해 그들을 따라잡는 게 가능할까 (한전은 GE와의 합작사인 KAPES를 통해 전류형을 국산화하고 있고, 한전 전력연구원은 지난해부터 효성과 전기연구원에 기술을 이전해 전압형을 국산화하고 있다)

“머잖아 세계 1위 지멘스와 각축전을 벌일 것이다. ABB, GE, 나리(중국)는 이미 어떤 부분에선 우리가 추월했다 할 수 있다. 물론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증명해야 하고, 곧 그렇게 할 거다. 특히 우리기술은 어떤 선두기업 것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독자개발한 것이다. 성능은 같지만 우리만의 독창성이 있다. 그게 진정한 기술자립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독자개발한 HVDC 관련기술과 그 의미를 한참 설명했다. 10여개 기술 중 3개는 지멘스가, 나머지는 ABB, GE, 나리를 포함한 모든 기업이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전문영역이라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으나 “꿈을 꾸다가 답을 알아냈다”, “최초로 기술개발에 성공한 뒤 일주일 간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더라”는 그의 집념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 국산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꿰어야 보배다. 더욱이 우리기업이 단숨에 지멘스, ABB처럼 글로벌기업이 될 순 없지 않나. 

“어쩌겠나. 단 열두 척을 갖고서라도 싸워야지. 우선 전체 품질면에서 우리가 만만하게 볼 기업이나 나라가 없다는데 동의한다. 그들은 이미 글로벌시장을 경험한 기업들이다. 분명 우리기업들이 고칠 점이 많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글정적인 결론이 나올거다. 개인적으론 인생을 이 분야 연구에 통째로 갈아 넣었고, 이제 그 성과를 거둘 때가 됐다. 입사 이래 거의 매일 밤 11~12시에 퇴근했다. 해도해도 끝이 없더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다시 하라면 못한다. 처음엔 이렇게 혼신을 다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변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왜 120년 전력사에 한국이 만든 독자기술은 없나. 어떻게 하면 기술강국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손을 떼면 끝이겠구나. 그런 사명감, 애국심 같은 게있었다."

- HVDC는 싸이리스터를 쓰는 전류형과 나중에 나온 IGBT를 쓰는 전압형으로 나뉜다. 이제 전류형은 유물이 되는건가

“(한참을 생각하더니)전류형은 전압형 대비 최대용량이 더 크고 전송거리는 길다. 반면 시스템 손실이 크고 블랙스타트(Black start)와 해상변전소 구축은 어렵다. 그럼에도 중국처럼 발전용량이 수십GW 단위라면 전류형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런 발전용량과 배후계통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중국이 유일할 수 있다. 전압형은 용량이 2GW 이내다. HVDC 고장 시 계통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하면 사실 그 이상일 필요도 없다. 중국은 워낙 대용량으로 깔아 놓은 탓에 교류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임의로 끊어 놓은 곳도 있다. 전류형 프로젝트도 분명 (발주가)나오고 있지만, 지금은 전압형이 절대 다수인 상황이다.”

- 미래 먹을거리로 HVDC 시장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가. 너무 과장된 건 아닌가.

“전압형 HVDC는 재생에너지 시장을 추종한다. 유효전력과 무효전력을 빨리 제어하려면 HVDC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시장 성장 잠재력과 HVDC의 그것은 동일하다고 본다. 재생에너지 시장의 약 10%가 HVDC 몫이 될거다. 앞으로 국내서 30만~40만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술이라고 본다. 내가 쉽게 HVDC를 포기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

- 아무리 전도유망한 시장이라 한들 그게 다 우리 몫이란 보장은 없지 않나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일단 국내시장이 만들어졌지만, 말한대로 우리가 해외까지 나갈 수 있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 맞다. 아직 중국도 해외진출을 성공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 일본도 인프라가 소멸돼 뒤늦게 전압형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기술을 줄 곳이 없어 ABB로부터 구식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린 KAPES(한전-GE합작사)를 통해 먼저 전류형을 받아들인 경우다. 중국은 전 세계 모든 제품을 사들여 분해하면서 이것저것 조합해 ‘Made in China’로 만들었다. 그래서 독자기술과 원천기술이 없고 완벽하지도 않다. 다만 중국은 국가전망이 휘하에 무수히 많은 관련 자회사를 두고 있고, 지속적인 투자로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단숨에 3~5년으로 굉장히 좁힌 상태다.”

- 그래서 우리나라는 전압형으로 승산이 있다?

“여기서 HVDC를 포기하면 우리가 중국에 대해 경쟁력을 갖는 게 뭐가 남겠나. 중전기기는 단품이라 금방 따라 잡힌다. 변압기의 경우 이미 중국산이 국산의 50%, 인도는 30%에 불과하다. 경쟁력을 잃었다. 차단기도 마찬가지다. 릴레이는 어떤가, 중소기업 적합제품으로 묶어놨는데 해외서 밀려와 영세기업들이 다 망했다. 우리가 원천기술을 확보한 전압형 HVDC는 오히려 해외기업들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온갖 제안을 다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내선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무시하더라. 지멘스를 앞지를 경쟁력을 갖게 될 때까지 길어야 1~2년 남았다.”

- 지금 절실한 건 뭔가. 어떤 측면을 보완해야 하나

“중국이 그랬듯, 우리도 일단 사업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 그건 정책적으로 좋아졌다. 다만 앞으로는 기술자료를 축적하고 하나로 모아 플랫폼화 해야 한다. 특정인이 (개발에서)빠진다고 기술이 사라지면 안된다. 서버를 만들어 하나의 큰 설계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고 모아야 한다. 그게 하드웨어 만드는 일보다 우선이다. 그런 측면에선 우리기업 문화가 많이 부족하다. 일 하나를 하더라도 완벽을 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의 패배주의, 무사안일이 점차 공적영역에서 민간으로 전염되고 있다. 2년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데, 반드시 성공할거라 본다. 우리 저력을 못믿겠으니 선두기업으로부터 확인을 받아 오면 인정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훗날 국산화에 성공한 뒤 후배들이 나를 평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 아직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현 정부 에너지전환정책을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전류전쟁도 그렇게 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비전문가가 전문가보다 득세하니 항상 문제다. 우린 가짜 전문가가 너무 많다. 일본의 에너지전환 분석 리포트를 보면 ‘에너지는 이념이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원전도 필요하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는거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트레이드오프 관계다. 개인적으론 두 전원은 최소 30년은 공존할 듯 보인다. 물론 궁극적으론 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고 국내 산업을 키워가면서 가는 게 중요하다. 결국 재생에너지로 전환도 나라가 부강하자고 하는거다. 국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해외서는 스마트폰으로 주식거래하듯 전기를 사고판다. 우리집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시골집 어머니 댁에 보내 드릴 수 있는, 그렇게 인류를 풍요롭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재생에너지 자체를 이념화 해 싸우는 건 의미없다. 원자력을 무조건 백안시 하는 것도, 원전 쪽 사람들이 재생에너지나 전력계통의 비전을 모르는 것도 문제다."

- 국산화가 완료되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을 할텐가

“해상풍력 멀티터미널을 개발하고 싶다. 전압형을 완벽하게 개발하면 거기서 10%만 더 들어가면 가능한 일이다. 후배들에게 그런 연구를 넘겨주고, 이후론 조용히 사라져야 하지 않겠나. 가능하다면 국산화 기술을 해외 나가 세일즈하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우리기술을 수출한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다."

<대전=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
 

[김찬기(金燦起) He is....] 충북 충주에서 2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앙대에서 전기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1996년 전력연구원에 입사해 처음 3년간 AVR발전기 국산화 연구를 수행했다. 이후 1999년부터 HVDC 연구에 한우물을 팠다. 해남~제주간 제1 HVDC 도면을 분석해 잦은 고장을 해결했고, 대형 고장사고 땐 제작사 결함을 밝혀내 400억원의 패널티 비용을 아꼈다. 세계전기전자학회(IEEE)가 우수논문에 수여하는 학술대상을 비롯해 국내외서 다수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현직 교감인 부인과의 슬하에 대학생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전기연구원 출신 김국헌 전 두산중공업 전무를 연구계 멘토이자 스승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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