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2배, 덴마크 5배 전기로 동일GDP 창출
"가격현실화 및 기존설비 효율개선 급선무"

▲1990~2020년 주요국가별 전력원단위(kWh/달러, 2015 실질 GDP 기준), 출처 - IEA, World Bank
▲1990~2020년 주요국가별 전력원단위(kWh/달러, 2015 실질 GDP 기준), 출처 - IEA, World Bank

[이투뉴스] 국제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올 하반기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한국의 전력이용효율(전력원단위)이 지난 30년간(1990~2020) 40% 가까이 더 나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에너지다소비산업을 보호하고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장기간 값싼 요금을 유지하면서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 가운데 전력원단위가 악화된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12일 본지가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세계은행(World Bank)이 최근까지(2021~2022) 집계한 각국 에너지데이터 통계를 확인했더니 한국의 2020년 기준 전력원단위는 0.3590으로 호주(0.1176)및 독일(0.1676)의 약 2배, 영국(0.1077) 덴마크(0.0877)와 견줘선 각각 3배, 5배 높았다. 전력원단위는 각국이 국내총생산(GDP, 단위 달러) 창출에 투입한 전력량(kWh)을 의미한다. 같은 GDP를 창출하면서 우리가 독일의 2배, 덴마크보다는 5배 많은 전기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비효율은 지난 30년간 누적돼 온 결과다. 1990년 기준 한국의 전력원단위는 0.2625로 프랑스(0.2513)나 호주(0.2445), 일본(0.2447), 독일(0.2339) 등보다는 나빴지만 격차가 크지 않았고, 미국(0.3267)보다는 24% 높았다. 한국 원단위를 100으로 치면 각각 미국이 124, 일본 93, 프랑스 96, 독일 89, 영국 67, 덴마크 49 등이었다. 하지만 30년 새 우리나라는 주요국 효율개선 대열에서 나홀로 이탈해 전력원단위가 급격히 악화됐고, 급기야 2020년에는 자원부국인 미국보다 효율이 39% 뒤처진 국가로 전락했다.

각국의 2020년 원단위를 1990년과 비교한 개선율은 영국 39%, 미국 33%, 덴마크 32%, 독일 28%, 호주 27%, 프랑스 13%, 일본 5% 등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30년 전보다 37%나 후퇴했다. 2020년 기준 국내 전기요금은 1982년과 비교해 47.1% 올랐다. 같은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267.6%)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정부는 산업보호와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료 현실화를 미루거나 동결해 왔고, 심지어 2002년 2004년 2017년 2019년에는 전년보다 최대 1.7% 요금을 낮췄다.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기료를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일각의 주장도 군색하다. 한국은행이 작년 10월 펴낸 '2020년 기업경영분석' 보고서의 전(全)산업 제조원가명세서를 보면, 전체 제조비용에서 전력비용 비중은 1.13%(24조5865억원)에 불과하다. 재료비(50.87%)나 노무비(11.22%)는 물론 복리후생경비(1.3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OECD가 집계한 국가별(2020년) 전기료 수준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전체 평균을 100이라고 할 때 가정용은 61, 산업용은 88 수준이다. 반면 독일은 가정용 203, 산업용 162이며 이웃나라 일본 역시 가정용 150, 산업용 151으로 우리와 비교된다. 상대적으로 전기사용량이 많다는 제조업 원가(2019년)에서 전력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65%이며, 요금 1%를 인상할 때 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0.0165%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수급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에너지가격 현실화와 기존 에너시설비 효율개선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공공기관 출신 민간기업 CEO는 "에너지다소비기업들이 탄소배출량 저감과 효율향상이라는 두개의 숙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하는 시점에 도달했고, 이는 산업보호와 물가안정이라는 정부 보호막 아래 낮은 에너지가격 혜택을 누리던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면서 "지금까지 에너지가격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낮아 효율투자 유인도 없었고, 투자예산도 연간 3000억원으로 시늉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신재생에너지 관련 지원예산만 1조원대를 훌쩍 넘어섰는데, 이는 이 나라의 에너지정책 방향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시사한다. 정책 우선순위에서 가장 첫번째는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아니라 기존 에너지설비 효율개선이 돼야 한다"고 직격했다.

구민회 법률사무소 이이(EE, 怡怡) 변호사는 "지금까지 우리 산업계의 관심사는 생산량이나 매출, 지속적인 공장가동이었지 에너지효율이 아니었다. 국가적으로 관련 통계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며 "에너지소비가 미덕인 상황이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아야 한다. 기업 에너지사용량 통계를 기준으로 면밀한 측정과 검증을 통해 감축량에 상응한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정부가) 에너지사용량을 줄이겠다는 생각이나 의지, 필요, 이익과 불이익 어느 하나도 없는 상태다. 보조금은 없고, 세액공제도 다를 바 없으며 융자예산은 매년 줄었다"면서 "에너지는 피크값과 전력 등 수요관리 측면만 한정해 보면 안된다. 효율향상은 전혀 다른 차원이거나 수요관리를 포섭하는 개념으로 다루되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결과가 오래 걸린다고 소홀히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전기료가 워낙 싸다보니 일부 제철소는 대규모 전기로를 여러곳에서 가동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최종에너지를 전기로 대량 전환해야 가능하고, 그런 측면에 전기소비량 자체는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전력원단위를 지금보다 혁신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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