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하락, 세수 부족으로 재조정 불가피
휘발유·경유 동일 20% 인하율 적용 가능성도

▲경기도 시흥시의 한 주유소.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경기도 시흥시의 한 주유소.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이투뉴스] 정부가 한시적으로 적용한 유류세 인하조치를 좀 더 연장하되 인하폭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제유가와 국내 기름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단번에 유류세를 원래대로 복귀시키면 물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재 유류세 인하율은 휘발유는 25%, 경유는 37%로 적용되고 있다.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유류세 인하 연장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4개월간 시행한 유류세 인하조치가 다음달 말 종료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늦어도 내달 중순까지는 인하폭 및 적용기간이 담긴 확정안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환경에너지세제과 관계자는 "산업부와 유류세 조정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번 인하조치가 4월 말 종료되는 만큼 그전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국내 기름값이 오르자 국민부담을 덜기 위해 세차례에 걸쳐 유류세 인하조치를 취했다. 2021년 11월 20%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에는 30%, 7월에는 법정세율 최대인 37%까지 확대했다.

그러다가 올해 처음으로 폭을 줄었다. 국내 휘발유값이 상대적으로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판단, 휘발유 인하율을 25%로 축소했다. 단 경유와 LPG(부탄)는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 경유가 휘발유값을 뛰어 넘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해 경유 유류세는 건들기 쉽지 않아서다. 제품별로 인하폭을 달리 적용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국제유가가 뚜렷한 안정세를 보이면서 유류세 인하폭 축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이달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배럴당 평균 73.2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러-우 전쟁이 발발하면서 11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지만 여름께부터는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부터 WTI는 월평균 70달러대를 형성하고 있다. 휘발유 유류세 환원을 시작했던 올 1월(78.16달러)보다 5달러가량 빠졌다.

이에 따라 국내 기름값도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31일 국내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593.92원, 경유는 1519.04원을 기록했다. 특히 경유값이 뚜렷한 내림세다. 지난해 11월 넷째주부터 18주 연속 하락했다. 그 결과 지난달 23일부터는 아예 휘발유값 밑으로 내려오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현재 휘발유와 경유가격 차는 리터당 74.88원이다.

줄어든 세수로 재정당국의 부담이 커진 것도 유류세 조정 필요성에 힘을 실고 있다. 올 1월 기재부가 발표한 '2022년 국세수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전년대비 5조5000억원 감소한 11조1164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새 33.0%가 줄었다.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에 주행세(교통세의 26%), 교육세(교통세의 15%), 부가가치세(10%)를 합해 산출된다.

얼마큼 인하폭을 줄일지는 아직 논의 중이지만, 유력한 방안은 두 제품의 인하율을 맞추는 것이다. 치솟았던 경유값 때문에 이례적으로 다르게 적용했던 만큼 인하율을 휘발유 값인 25%로 맞출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선 휘발유와 경유 모두 인하율을 20% 수준까지 내리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박사는 "유류세 인하조치를 시행했던 2021년 11월 유가는 80달러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이보다도 더 낮다"면서 "유가의 절대적 수준을 봤을 때는 환원조치를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보여진다. 정부 입장에선 인하를 계속 유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내 세제부서와 물가부서가 별도로 있는 만큼 내부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올 하반기 유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어 그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 1월 내놓은 '2023년 국제 석유시장 분석 및 유가전망' 보고서에서 두바이유가 연평균 85.4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유류세 인하폭을 축소하려는 현 정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세수부족을 핑계로 유류세 인하폐지를 들먹이고 있다. 재벌과 부자들 퍼주다가 비어버린 곳간을 채우기 위해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격이다. 이런 것을 가렴주구(苛斂誅求)라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장하는 잘못된 재정기조를 철회하긴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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