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건국대학교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건국대학교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박종배] 올해 5월, 한전이 발표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은 ‘국가 에너지 안보 확립을 위한 안정적 전력계통 구축’을 목표로 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의 믹스를 구현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하기 위한 송변전설비를 적기에 건설하며, 유연한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오늘날의 전력산업은 지난 60여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재무적, 물리적 위기를 겪고 있다. 여기서는 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전력산업이 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복합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의 정상화’와 ‘강건한 송전망의 구축’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함을 말하고 싶다. 많은 다른 중요한 이슈도 둘만큼의 무게를 가지지는 못한다. 일견 ‘강건한 송전망의 구축’과 ‘전기요금의 정상화’라는 무거운 숙제가 한전에게만 주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요즈음의 국내외 정세와 경제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한전과 전력당국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우리나라 전체 전력산업계와 우리 정치. 사회,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로 봐야 한다. 

한국전력공사는 1982년 출범한 이래,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전력사업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우리나라의 호당 정전시간은 8.9분/년(‘21년)으로 미국 47.3분/년(’20년), 영국 38.4분/년(‘16년), 프랑스 48.7분/년(’16년)과는 비교불가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과 주요 선진국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전력품질의 차이는 더욱 클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전, 촛불, 성냥이라는 단어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이는 한전과 전력당국의 부단한 노력으로 대규모 원자력 단지, 석탄 단지와 대도시 소비지를 연결하는 765kV 송전선, 수도권과 전국의 345kV 환상망, 육지와 제주를 연계하는 HVDC 등등을 적기에 건설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한 성과와 노력 속에서도 큰 위기들이 발생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대규모 송전인프라 구축에서 발생한 첫 번째 위기로 신고리-북경남을 잇는 765kV 송전선 건설 사업에 따른 갈등, 소위 ‘밀양 송전망 사건’을 들 수 있다. 해당 765kV 송전선로는 당초 계획보다 3년 10개월이나 지연된, 2014년 9월에서야 완공되었다. 그 일을 겪고 난 이후, 전력당국과 한전은 765kV 송전선로의 신규 건설은 다시 하지 않고 있다. 훨씬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전자기파 논란을 잠재우고, 민원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구간에서는 지중화를 통하여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다. 동해안-신가평 500kV HVDC가 대표적 사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전선로 경과지의 주민과의 갈등은 여전하고, 10년 정도나 답보 상태에 있다. 송전선로 건설 지연으로 동해안의 저렴한 원자력, 석탄 발전 대신에 수도권의 비싼 LNG 발전으로 이를 대신하고 있다. 한전의 연간 전력구입비의 증가액만 兆(조) 단위에 이르게 하고, 아까운 달러를 낭비하게 하며, 천문학적으로 한전의 부채를 키우는데 보태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송전망 건설 비용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 가치는 훨씬 더 큰 지수로 증가하고 있다. 위기 발생 직전인 ‘20년 발전원별 연료비 단가는 원자력 6[원/kWh], 유연탄 51[원/kWh], LNG 72[원/kWh]에서, ’23년 현재 원자력 6[원/kWh], 유연탄 105[원/kWh], LNG 186[원/kWh] 수준으로 발전원간 연료비 격차가 매우 커졌다. 

1GW 용량의 송전선로가 원자력 또는 유연탄으로부터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수송하여 LNG발전을 대체할 경우, ‘20년 기준으로는 연간 1900억원에서 5800억원의 편익에 불과했지만, 올해 기준을 적용하면 연간 7000억원에서 1조 6000억원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송전망의 가치가 적어도 3∼4배 높아진 것이다. 송전망 건설에 따른 면밀한 비용편익 분석조차도 필요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종에너지 소비의 전기 비중이 20퍼센트, 1차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은 40퍼센트 정도이다. 또한, 1차에너지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연료의 비중은 40퍼센트 내외로 추정된다. 에너지 위기가 절정에 달한 작년, 우리나라의 연료 수입액은 1900억불까지 증가하여 전체 수입액의 26퍼센트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연료 수입액은 적어도 700억불 이상은 될 것이다. 국가 경제에서 전력산업, 송전인프라가 차지하는 가치와 무게는 이로부터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50년 글로벌 탄소중립을 전제할 경우, 최종에너지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50퍼센트까지 증가될 것이고, ’20년 대비 전력수요와 송배전망의 규모는 약 2.5배 증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0년 탄소 중립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반도체 등 첨단산업 단지, 전기차 보급 등으로 향후 전력수요의 성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며,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추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수도권의 전력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또, 최근 호남지역의 원자력 감발과 태양광 출력제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지역의 송전망 건설도 시급하게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와 경제 안보, 국가 경쟁력 확보, 전력산업의 비용 최소화를 위하여 대규모 송전인프라의 확보는 필연적이다. 지역으로의 전력수요 분산도 되어야 하고, 수요집중 지역의 분산형 전원 보급도 지속되어야 하지만, 당장의 핵심은 대규모 송전망 인프라의 구축이다. 이를 위하여 전력당국만 아니라 범부처 차원에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신규 송전망 건설과 운영에서 한전만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존의 거버넌스를 뛰어 넘는 상상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또한, 송전망 계획과 건설을 담당하는 한전과 전력계통을 운영하는 전력거래소와의 시너지 확보도 필수적이다. 현재의 전력위기를 극복하고, 전력산업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제로 베이스에서 송전망과 전력계통을 새롭게 바라 보자. 새로운 관점과 시도로 위기를 헤쳐나갈 계획을 세워보자. 

지금 바로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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