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발전을 위한 논쟁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최근 육지 발전사업자의 발전량에 대한 보상 기준인 계통한계가격(SMP)의 지역 차등에 대하여 설왕설래가 많다. 도입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사이의 간극도 상당히 커 보인다. 도입을 반대하는 쪽은 비수도권의 발전 과잉지역에 있는 민간 발전사업자와 수도권과 같이 송전혼잡 지역에서 대규모로 전기를 소비하는 쪽이다. 전자는 비수도권의 시장가격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를, 후자는 수도권의 전기요금 상승으로 비용의 증가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지역적인 차이를 가져본 적이 없고, 2001년 개설된 도매전력시장에서도 제주를 제외하고는 송전망 제약을 반영하는 지역 구분이 없었다. 올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법에서는 지역별로 다르게 전기요금을 적용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고, 도매전력시장도 육지를 수도권과 비수도권 등으로 구분하여 가격을 달리 결정하는 것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 이제는 도매전력시장의 가격과 소매 전기요금의 지역적 차등에 대한 방향이 제시되어야 할 때이다. 도매, 소매 모두 현재의 상태에 머물러 있던지, 도매 또는 소매 둘 중 하나를 먼저 도입하든지, 혹은 둘 다 동시에 도입하든지 결론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어떤 선택이 현재와 미래의 전력공급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면, 한전 누적 적자는 200조원에 이르러 연간 이자만 4조원 이상 지급하고 있고, 기간 송전망의 확충은 최장 10년 이상이나 지연되어 공급비용도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영동지역에서 생산되는 저원가의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건설되고 있는 고압직류 송전선(HVDC)은 종착역 격인 하남변전소의 증설을 지자체가 반대하고 있다. 올여름에 경험한 바와 같이 살인적 더위로 인한 냉방 전력수요의 급증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용인 첨단반도체 단지의 건설로 인하여 수도권의 전력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한편, 동해안의 석탄발전과 호남의 재생에너지는 송전망 부족과 지역내 공급 과잉으로 출력을 제한해야하는 실정이다. 해답은 명확하다. 전기요금은 송전망 건설비용과 지역별 발전원가를 감안하여 수도권 소비자는 지금보다 더 높은 요금을, 비수도권 소비자는 더 낮은 요금을 지불하여야 한다. 필요한 송전망을 조속히 건설하기 위해서는 전력망 특별법(안)의 내용과 같이 범 정부 차원의 거버넌스도 반드시 필요하다. 발전사업자에게 적용되는 계통한계가격(SMP)는 지역의 수요와 공급, 지역간 전력을 융통하는 송전망의 제약을 고려하여 차등적으로 결정되어야만 한다. 이론적으로 명약관화해보이는 해법이 눈 앞에 있음에도 현실에서의 시행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원가 이하의 낮은 전기요금과 지역적 비차등에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에, 기간 송전망의 건설 촉진을 위한 특별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며, 송전망 경과지의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는 점차 심해지고 있고, 지역별 한계가격제도의 도입은 비수도권에 위치하는 신재생 및 LNG 발전사의 반대를 마주하고 있다.
2001년 1단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개설한 우리나라 도매전력시장은 민간사업자의 진입으로 경쟁이 촉진되는 등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20여년전 모습을 여태컷 유지하고 있어 그 비효율성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비용기반의 시장이 지속되어 규제 비용은 급격하게 늘어난 반면 사업자의 자율성은 지속적으로 없어지고 있다는 점, 둘째, 하루전에 육지 단일의 계통한계가격(SMP)을 제공하므로 지역과 시간에 대한 시장가격의 왜곡이 극대화되고 있는 점, 셋째, 실시간 전력수급 균형에 필수적인 보조서비스 시장도 왜곡되어 유연한 미래혁신 기술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압축된다. 수요와 공급을 기반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의 근본적 기능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시장제도의 변화 출발점인 정확한 지역적 가격 신호를 제공하려는 노력들이 이해당사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난감한 상황이다. 도매전력시장 가격은 지역의 수요와 공급을 바탕으로 지역별로 결정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 발전기 건설이라는 신호등이 켜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국에서 발전기 가격이 가장 높은 값이 수도권이나 비수도권에 동시에 적용하고 있다. 공급이 넘쳐나 출력이 제어됨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더욱 필요하다는 정반대의 가격 신호가 주어지는 셈이다. 1998년 미국 PJM을 필두로 북미 전력시장 등에서 복잡한 모선별가격제도(LMP: Locational Marginal Pricing)를 도입한 이유는 이 방식이 현재까지는 지역별로 가장 정확한 가격 신호를 제공하여 사회적 비용과 부가비용(Uplift)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적 배경 때문이다.
2001년, 도매전력시장이 개설된 당시만해도 송전망 건설이 상대적으로 쉬웠고, 지역 차등에 대한 인식 또한 높지 않았다. 20년 이상이 경과한 지금은 신규 송전망의 적시 준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그로 인한 송전망의 혼잡 비용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도소매 가격신호를 바탕으로 수도권에는 신규 발전설비가, 비수도권에는 신규 전력수요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시장이 개편되어야 한다. 다만, 제도 변화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하여 기존 투자자에 대한 영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충격 완화 방안도 동시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이나 모선별 도매시장가격 체계로 변화된 많은 해외 전력시장의 사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전망 제약이 격심해지는 미래의 전력시장은 정확한 지역적 가격 신호를 바탕으로 전력공급 비용이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그 존재 의미를 가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