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박종배] 일본은 가깝고도 먼나라다. 일본은 서울에서 도쿄까지 비행기로 2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매우 가까운 나라이다.  두 나라는 수출과 제조업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 ’50 탄소중립을 선언하여 이를 법제화하며, 전력망이 이웃 나라와 연계되어 있지 않는 고립 전력계통을 가졌다는 점 등 많은 유사성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멀게 느껴지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된지 80년이 흘렀지만, 많은 국민들은 1910년부터 35년에 이르는 일제 강기의 치욕과 고통을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나라는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탄소중립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에너지와 전력 정책의 실제 구현에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탄소중립 경로를 세세하게 결정하는 규제적 접근을 보이는 반면, 일본은 정부가 주도는 하되 그 경로는 열어놓고 이를 달성할 기업에게 기술 개발과 구체적 수단을 맡겨두고 있다. 즉, 탄소중립의 달성을 위한 에너지와 전력 정책에서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중심이고, 일본은 시장과 기업 중심이다.  어떤 접근이 경제와 환경의 공동 번영을 가져올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창의성, 혁신성, 유연성 측면에서는 시장 기반 체계가 보다 나아 보인다. 특히, 이제 막 태동기인 다양한 탄소중립 기술이 가진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대상 연도인 ’30년, 탄소중립 목표 연도인 ’50년, 그 중간에 있는 ’40년에 양국이 어떠한 성적을 받을지 궁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국은 ’30년, ‘40년, ‘50년에는 온실가스 감축 정도, 경제와 산업의 발전 여부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성적을 받을 것이고, 성적에 따라 양국의 젊은 세대들의 희비가 갈릴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은 거의 동시에 ’38년과 ’40년의 발전량 구성을 보여주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과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 ’22년의 발전량은 우리나라가 594TWh, 일본이 917TWh 정도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5배 큰 규모이다. 한편 발전량 구성을 비교해 보면, 원전은 각기 31%와 5.6%, 화력은 62%와 73%, (신)재생에너지는 9%와 22%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 중심, 일본은 재생에너지가 주력 무탄소 전원인 셈이다. 석탄 및 천연가스 등 화력의 비중은 우리나라가 약 10%p 정도 낮다. 양국의 미래 발전량 구성은 각국의 전기본과 에기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38년 구성은 원전 35.2%, 화력 20.7%(석탄 10.1%, LNG 10.6%), 재생에너지 29.2%, 청정수소암모니아 6.2%, 신에너지를 포함한 기타 8.8%로 구성된다. ’38년의 무탄소 발전량의 비율은 70.7%에 이른다. 한편, 일본 에기본에 따른 ’40년의 발전량은 원전 20% 정도(程度), 재생에너지 40∼50% 정도(태양광 23∼29%, 풍력 4∼8%, 수력 8∼10%, 지열 1∼2%, 바이오메스 5∼6% 정도), 화력 30∼40% 정도로 구성된다. ’40년의 무탄소 발전량의 비중은 60%∼70% 정도이다. 일본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결정하기 위하여 5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이는 미래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시나리오로는 재생에너지확대, 수소‧신연료활용, CCS활용, 혁신기술확대, 기술진전(技術進展) 등이 있다. 가장 불확실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시나리오 분석의 결과인 범위로 주어지니, 타 발전원의 목표치도 당영히 범위, 즉, 정도(程度)로 표현된다. 정도(程度)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것의 분량이나 사물의 수량, 또는 거리, 넓이, 속도, 시간 따위를 대강 헤아려 나타낸 수치’이다. 여기서 본 바와 같이,  양국의 미래 전원구성에 대한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가 소숫점 한자리까지 일일이 결정하는 중앙 계획인 반면, 일본은 전원별 범위를 제시하는 전망(Outlook) 체계를 유지하는데 있다. 우리 정부가 전원 구성을 소숫점 한자리까지 결정하다 보니 원전 1기를 추가해야 하느니, 태양광을 늘려야하느니 등에 여야가 매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3차 에기본에서 유일하게 ’40년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경제성, 기술, 제도 등을 고려하여 범위(30∼35%)로 설정한 바는 있지만, 이후의 제10차, 제11차 전기본에서는 정부가 세밀하고 촘촘한 중앙 계획을 직접 수립하고 있다.  

양국의 미래 전원구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차이는 전력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현실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민간 및 공기업에 대하여 정부가 모든 전원의 진입, 퇴출, 보상(가격), 기술개발까지 직‧간접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력회사가 민간 소유이고, 소비자는 공급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에너지의 최종소비 형태인 전기‧열‧가스 산업은 완전 경쟁체계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세세히 개입할 여지가 적다. 오히려 민간 투자의 적극적 유인, 에너지 안보기술의 개발 지원, 안전과 환경 규제 등에 집중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과 AI, 첨단반도체 등 미래 주력산업은 전력시스템의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전기에너지가 안정적 공급, 경제적 공급, 청정한 공급 등 3대 요건을 어느 정도 만족하는가가 곧 국가의 경쟁력이 결정되는 시대다. 따라서, 정부 주도의 계획 체제로 갈것인가? 시장 주도의 경쟁 체제로 갈 것이냐?에 대한 담론의 지속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