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정국이 격랑으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인 에너지정책들도 곧 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정책도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작용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짓자 궤적을 그린 원전·재생에너지 정책이 그 증거다. 지금은 멀리 내다보고 좌표를 찍어야 한다. 에너지정책은 돛배가 아니라 항공모함의 방향을 트는 일이다. 의욕이 넘친다고 급변침이나 급가속이 가능하지 않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충분히 학습했다. 향후 유념할 점을 꼽아봤다.

첫째, 에너지가격의 순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전기요금은 가정용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38개국 중 35~36위 수준이다. 하지만 에너지수입 의존도는 93%에 육박한다. 에너지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자급률을 높이려면, 수입하는 1차 에너지가격과 국내 조달환경 변화에 충실한 요금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에너지를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며, 자급률도 빠르게 높일 수 있다. 국제유가 등락 때 주유소 기름값 변화와 소비자들의 선택을 떠올려보자. 소비자는 합리적이며 가장 신축성이 좋은 자원이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면 부작용만 키운다. 

둘째,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비중제고 못지않게 분산전원 원칙에 기반한 전력망정책이 시급하다. 이제 송전탑 건설은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됐다. 전력망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탄탄대로가 뚫리지 않는다. 좁은 국토에 이미 너무 많은 초대형발전소와 송전선로가 깔려 있고, 그것도 몰려있다. 이상기후로 태풍과 산불, 극한호우는 잦아지는데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달걀을 쌓은 형국이다. 에너지고속도로든, HVDC든 비싼 새 도로를 만든다고 해결될 단계를 지났다. 비유하자면 교통량 분산이 먼저이고, 그보다는 택지를 분산해서 개발해야 한다. 지역별요금제는 보조수단이고, 현 정부안은 그조차도 기능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수도권에 4GW용량의 345kV 송전선로를 새로 깔아도 수요·공급 편중 문제로 1GW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셋째, 에너지산업과 시장개방, 그를 통한 신산업 창출과 일자리 창출을 고려할 때다. 한전, 가스공사,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지역난방공사, 발전공기업 등의 공동부실화는 9할 이상이 정부 관치 탓이다. 경영평가에 휘둘리는 공기업에서 새로운 도전과 혁신, 효율을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외란의 충격을 떠안는 게 공공성이라 말하지만, 이들 공기업의 수십~수백조원 부채를 결국 국민이 이자까지 붙여 지불하고 있다. 몇몇 공기업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에너지시장에 문턱 없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시장개방과 규제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탄소를 내뿜는 전통 화석에너지는 지속 불가능하다. 세계 최고 수준 첨단 ICT기술과 탈탄소신산업의 융합은 빠르게 쇠퇴 중인 기존 주력산업의 일자리 공백 상당량을 채워줄 것이다. 지금의 시장구조를 그대로 둔 채 뭔가 하겠다면 거짓말이다.

넷째, 이들 모두는 에너지정책의 거버넌스 재편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전력시장과 계통을 관리·감독할 독립규제기관 설립 필요성은 더 말하면 입이 아프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와 시행령으로 에너지시장과 공기업을 제 맘대로 쥐락펴락하는 현 구조 아래 공정이니 효율이니 운운하는 건 모순이다. 전 세계 각국이 앞다퉈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이유는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 일각에선 거기에 공공이란 굴레를 씌워 갈수록 비용이 비싸지는 재생에너지를 쓰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 소모적인 논쟁은 이명박부터 윤석열까지 지난 20년 정부로 족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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