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동해안-동서울 HVDC 건설사업 全구간 마을 합의 100% 달성, 이제 동서울변환소만 남았다’ 휴일 오전 한전이 배포한 보도자료의 헤드라인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초고압직류송전선로가 건설되는 경북~강원~경기지역 79개 마을 전 구간에서 주민 합의를 완료했는데, “정작 중요한 변환설비 증설사업은 주민 수용성 부족을 사유로 인허가를 현재까지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남시와 변환소 반대 단체·주민을 압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동해안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경로의 마지막 종착지인 하남만 남음’이라는 부제도 달렸다.

한 발짝 더 나아가 한전은 “하남시 인허가가 계속 지연될 경우 값싼 전기를 만드는 동해안 발전설비와 280km에 달하는 송전선로를 모두 건설해 놓고도 마지막에 전기를 받아줄 변환소가 없어 그간 투입된 막대한 건설비와 범국가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며, 이로 인한 전기요금 상승 피해는 고스란히 모든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남시와 변환소 증설 반대 지역주민들은 단숨에 지역이기주의로 매도되었다. 언론은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주민설득 끝냈는데...하남시만 반대’, ‘~ 하남시만 빼고 OK’, ‘~ 주민합의 100%...하남 변환소만 남아’ 등으로  불러준듯 보도했다. ‘~하남시만 몽니’, ‘~변전소 발목에 전력망 흔들'이라며 대놓고 비판한 언론도 여럿이었다.

그런데 “국익을 고려해 대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는 79개 마을 중 상당수는 여전히 송전선로 건설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경과지 선정과 보상협의 과정의 불거진 주민 간 갈등과 후유증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를 지켜본 지역사회단체 측은 ‘한전이 어떻게 주민들을 설득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님비 세력화하고 있구나’(김현정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라고 탄식했다. 2008~2014년까지 이어진 밀양송전탑사태 이후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유감스럽게 한전의 ‘송전탑 주변지역 인지 감수성’은 전원개발촉진법 시대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은 어떤가. 여전히 주변지역 주민들의 유·무형 손실을 충분히 보상하지 않고 있다. 올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은 전촉법의 ‘패스트트랙’ 버전에 가깝다. 송전선로 확충의 당위성과 속도에 매몰돼 가장 중요한 절차와 투명성 개선을 놓치고 있다. 하남시 감일동주민을 님비로 몰아붙이기 전에 한 번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자. 당신은 국책사업이라면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과 같은 실질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가, 대표성이 부족한 위원회가 한전과 만든 합의안도 군말없이 수용하겠나. 우리가 싸고 편하게 쓰고 있는 전기는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과 불편을 담보로 생산·유통되고 있다. 원치 않게 원전, 석탄화력, 초고압송전탑을 끌어안고 살고 있거나 살게된 이들의 마음도 헤아려보자. 지금과 같은 송전탑 인지 감수성이라면 제2, 제3의 밀양사태는 계속된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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