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이투뉴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한다. 기상청은 건조주의보를 내리고, 뉴스에서는 대기 상태가 매우 건조하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산불의 원인을 대기 건조에만 돌려서는 실질적인 해답을 찾기 어렵다.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기보다 더 가까운 땅, 바로 토양의 상태에 주목해야 한다.
산불은 먼 원인보다 가까운 원인을 살펴야 예방이 가능하다. 논이나 습지처럼 물이 머무는 곳은 아무리 대기가 건조해도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그에 반해 건조한 경사면에서는 작은 불씨에도 불이 번진다. 불은 마른 땅에서 시작된다.
경기도 광주의 야산에 토양함수율 측정 장비를 설치한 결과 땅에서의 수분의 거동과 건조한 정도를 수치로 알 수 있었다. 계곡과 경사면에 센서를 부착하고 비 오기 전, 20mm의 비가 온 날, 비가 그친 후 2일 후의 경사면과 계곡면의 토양 함수비를 측정하였다. 경사면은 14%-16%-15%로, 계곡면은 23%-28%-24%로 변화되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비가 와도 경사면은 표면만 잠시 젖다가 금세 마르며, 계곡 부근은 수분이 천천히 스며들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또한 이른 봄에는 밤에는 토양 안의 수분이 모세관현상으로 올라와서 얼고, 낮에는 햇볕에 의해 증발하며 땅이 더욱 메마르게 되는 동상현상(frost heaving)을 관찰하였다. 이 현상은 바로 이른 봄에 토양이 건조해지고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러한 자연적 수분 손실 현상은 봄철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특별히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의 산이 특히 더 건조한 이유는 관리 방식에 있다. 산을 깎고 도로와 주차장을 만들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고, 빗물을 모아서 빨리 흘려보내는 방식의 산림 관리방식은 산의 함수율을 떨어뜨리고 산불 위험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오래된 마을 주변의 우물이나 계곡수가 사라진 것도 이러한 인위적 구조 변화와 관련이 깊다.
해결책은 어렵지 않다. 산에 떨어진 빗물을 가능한 한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토양 표면을 낙엽이나 이끼로 덮어서 햇빛과 바람을 막고 수분 증발을 줄이며, 물모이와 같은 작은 웅덩이를 경사면을 따라 조성하면 토양 함수율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자연 기반 해법(NBS, Nature-Based Solution)으로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산의 건조 상태를 수치화하면, 산불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 대책을 구체화할 수 있다. 단순한 기상 데이터뿐 아니라, 지역별 토양 함수율 지도와 같은 실시간 데이터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시대, 산불을 막기 위해서는 멀리 있는 기후변수만 보지 말고, 바로 우리 발밑의 땅부터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 myhan@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