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탄소시장에 악재가 겹쳤다.

탄소시장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유럽 탄소배출권 거래시스템인 EU ETS가 최근 해킹으로 뚫렸다. 도난당한 탄소배출권 금액은 700만유로(한화 110억원).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체코, 그리스, 에스토니아, 폴란드가 잇따라 거래를 중지했다. 

한때 탄소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예견했던 세계 전문가들은 잠잠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탄소배출권거래 전문기관인 CCX(시카고 기후거래소)의 현재 배출권 거래가는 3달러(한화 약 3100원)로 떨어졌다. 싱가포르 아시아기후거래소(ACX)도 주춤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일본정부는 2013년부터 본격 시행하기로 했던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배출 규제에 강하게 반대해 온 산업계의 압력을 못 이긴 것이란 해석이다.  

일본의 이 같은 결정에 한국 산업계는 미소를 머금었다. 한국도 배출권거래제를 안 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하나 더 생긴 탓이다. 교토의정서상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인 일본도 배출권거래제를 안 하겠다는 데 의무감축국도 아닌 한국이 그렇게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냐는 논리다.  

온실가스 규제를 위해서라면 이미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시행에 동의하고 따르고 있지 않냐는 주장도 뒤따른다.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다 하더라도 탄소시장에서 거래될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올해 한국의 탄소시장은 한 마디로 '관망세'로 정의된다. 'CDM(청정개발체제) 시장은 끝났다'는 얘기가 지난해부터 흘러나왔고, 실제 CDM 사업 등록건수도 주춤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 한국정부는 지난해 말 국회에 상정하려던 배출권거래제 도입법안을 2월로 연기했다. 산업계는 더 이상 별 볼 일없는 CDM 시장에 발길을 끊었고, 배출권거래제 법안 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세계적 기류인 기후변화협약과 깊은 연관이 있다. 기후변화협약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현상을 막기 위해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환경회의에서 채택됐다. 2009년 코펜하겐 총회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탄소시장 활성화에 대한 분위기도 무르익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칸쿤 총회 때 상황은 역전됐다. 미국과 중국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협상은 타결되지 못하고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탄소시장에 대한 논의도 사그라졌다.

그럼에도 온실가스 정책을 총괄하는 환경부와 녹색성장위원회는 이 제도를 통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국제 탄소시장에 적극 대비할 수 있다며 배출권거래제법을 강행 추진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국제 감각이 떨어진다는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탄소시장에 대한 세계적 동향을 살피며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계가 주장하듯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만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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