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폐해 고발

[이투뉴스] 1994년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 AT&T는 2년 동안 1만5000명을 정리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당일 직원들을 '성공 1994'라는 동기 유발 행사에 보냈다.

행사의 주연급 연사인 동기 유발 강사 지그 지글러(Zig Ziglar)가 전한 메시지는 이랬다. "(해고를 당하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미국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고교 시절 치어리더였다. 미국의 발명품임에 분명한 치어리더는 긍정산업의 핵심인 코칭과 동기유발의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의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하고 비관론과 절망과 의심을 싫어했기 때문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부시 앞에서는 우려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이전 여름부터 곳곳에서 테러를 의심할 만한 징후들이 감지되었음에도 연방수사국, 이민귀화국, 부시, 라이스 등 어느 누구도 그런 불편한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2008년 <타임>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하느님 탓일까?'라는 도발적인 기사를 실었다. "하느님은 은행이 내 신용점수를 무시하도록 해 주시고 내가 처음으로 소유한 집을 축복해 주신다"고 말하면서 일부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 면을 꼬집은 것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하지만 앞에 예시한 세 가지 사례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존재한다. 긍정 또는 낙관이라는 이름의 신념 체계가 그것이다. '긍정적'이라는 말은 대개 좋은 의미로 쓰일 뿐 결코 경계하거나 삐딱한 눈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긍정적 태도에 대한 찬미가 산업 현장과 경제계, 정치, 종교, 학계에까지 깊게 뿌리를 내려 일종의 신념 체계를 형성하고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관습과 생활 태도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런데 긍정의 이데올로기는 그 이름부터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친화성 또는 강제성을 담고 있다. 낙관적이 되라거나 긍정적으로 사고하라는 말을 싫어한다면 대번에 '삐딱이'라는 딱지가 붙거나 현실 부적응자로 의심받기 십상이다.

시민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쓴 <긍정의 배신>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긍정의 신념 체계에 감히 삐딱한 시선을 들이댄 책이다.

저자는 긍정적 사고의 번창은 후기 자본주의, 소비 자본주의의 특성과 일치한다고 본다. 절제, 금욕 등의 가치에 친숙했던 초기 자본주의와 달리 현대의 소비 자본주의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개인의 욕구와 '성장'이라는 기업의 지상 과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의 배신> 은 모두 304쪽이며, 가격은 1만3800원이다.

이준형 기자 jjoon121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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