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소외된 90%를 위한 '국경없는 적정기술'
[창간특집] 소외된 90%를 위한 '국경없는 적정기술'
  • 이준형 기자
  • 승인 2012.04.3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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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공학, 디자인 적용…재능기부와 맞물리며 탄력

 

▲ 휴대용 정수기 'lifestraw' : 강물이나 오염된 물에 직접 기구를 대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개발된 발명품으로 세균을 죽이는 필터가 내장돼 있다.

 

[이투뉴스] 강진으로 참혹한 재앙을 맞았던 아이티는 지진 이전에도 허리케인으로 번번이 재난을 당했다.

지진은 어쩔 수 없는 천재였지만 매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허리케인은 인재이기도 하다. 온 국민이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다보니 아이티 산림의 90%가 황페화돼서 홍수에 약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아이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스공대(MIT) 학생들은 2003년 현지를 방문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취사와 난방 연료로 장작이나 차콜을 사용하는 비율이 95%가 넘었다.

부뚜막에서 나오는 연기로 인한 호흡기 질환율도 심각했다. 학생들은 세계적 사탕수수 생산국인 아이티 농부들이 설탕을 추출한 뒤 사탕수수 폐기물을 그대로 버려두는 데 주목했다.

 

▲ q drum : 물을 길어 나르는 큐-드럼. 어린아이라도 약 100리터의 물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안한 공정과 직접 설계한 설비로 사탕수수 숯(차콜)을 만들어 주고, 주민들에게 기술을 전수했다.

이것이 바로 '소외된 90%를 위한 공학기술' 이른바 '적정기술'이다.

적정기술이란 주로 개발도상국에 적용되는 기술로, 첨단기술과 하위기술의 중간 정도 기술이라 해서 중간기술, 대안기술, 국경없는 과학기술 등으로도 불려진다.

최초의 적정기술 활동가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로 볼 수 있다. 간디는 당시 인도의 목화를 수입해 옷으로 가공한 뒤 인도인에게 비싸게 되팔던 영국에 맞서 물레로 옷 짓는 기술을 전파했다. 비록 간디는 적정기술을 알지 못했지만 그가 한 활동은 말 그대로 '적합한 기술'이었다.

적정기술의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저술한 영국의 경제학자 E.F. 슈마허다. 그는 책을 통해 보여준 자신의 철학을 입증하고자 1966년 설립한 '프랙티컬 액션'이란 기업을 설립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한 정신과 의사 출신인 폴 폴락을 적정기술의 주창자로 꼽고 있다.

폴 폴락은 "부유한 10%를 위해 공학설계자의 90%가 일을 하고 있다. 세계의 수십억 고객들이 2달러짜리 안경과 10달러짜리 태양전지 손전등, 100달러짜리 집을 바라고 있다"며 1981년 국제개발사업(IDE)이라는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기업을 세워 관개용 페달 펌프, 태양력 정수기 같은 도구를 만들어 팔고 있다.

21세기 들어 적정기술은 재능기부와 맞물리며 탄력을 받고 있다. 2003년 미국 MIT 기계공학과 강사인 에이미 스미스는 디랩(D-Lab)이라는 강좌를 개설했다.

 

▲ 2010년 기준으로 킥스타트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15만3000개의 펌프를 팔았고 9만7500개 회사를 세웠다. 이로 인해 48만8000명이 가난에서 벗어났고, 1년에 9860만달러치 수입이 새로 창출됐다.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한 현장 활동을 통해 개도국 현지에 적합한 창의적 공학설계(캡스톤 디자인)를 하고 있다. 해마다 수십개의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이 강좌는 MIT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스탠퍼드대, 펜실베니아의 메시아대, 텍사스의 레투어노대, 아칸소의 존 브라운대 등에도 비슷한 강좌들이 개설돼 있다.

국내에서도 현재 '국경없는 과학기술연구회(회장 유영제 서울대 교수, 생물화학공학)'와 사단법인 '나눔과 기술(대표 경종민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전기공학)' 등이 운영 중이다.

◆적정기술과 사회적기업의 만남

적정기술은 IT나 공학 분야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힌트를 제시한다. 공학자의 철학이 기술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정기술이 사회적기업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 프랙티컬 액션은 가난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직접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방안 연구에 주력한다. 주된 활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질병이나 환경 영향으로부터 면역력을 높이도록 돕는 커뮤니티를 조직과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에 도움이 될 기술을 개발·보급 등이다.

 

▶ 프랙티컬 액션 : 가난에 맞서는 가장 체계화된 조직

‘적정기술’이란 명칭을 처음 제시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저술한 영국 경제학자 E.F. 슈마허가 자신의 철학을 입증하고자 1966년 설립한 기업이다.

창업 당시 이름은 '중간기술 개발 집단(Intermediate Technology Development Group)'이었다.

프랙티컬 액션은 가난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직접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방안 연구에 주력한다.

주된 활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질병이나 환경 영향으로부터 면역력을 높이도록 돕는 커뮤니티 조직과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에 도움이 될 기술 개발·보급 등이다.

또한 저개발국가 시골이나 도시에서 물이나 위생, 에너지, 교육 같은 기초 인프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거나 직접 시설을 구축하는 일도 병행한다.

교육을 통해 도시 빈민들이 시장에 접근하기 쉽게 도와 궁극적으로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 환경을 만드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국제산업개발기관(IDE) : 빈민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기회

IDE는 1981년 폴 폴락이 소말리아 난민 캠프에서 조직한 단체다. 빈민들이 소득 증대를 통해 가난을 벗어나도록 하자는 게 설립 취지다.

첫 프로젝트로 소말리아 빈민들의 이동수단으로 당나귀에 폐차 바퀴를 이어 만든 '당나귀 수레'를 고안했다.

IDE는 제3세계 빈민의 70%를 차지하는 소작농들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주로 벌인다. 이들은 단순 원조를 넘어서 소작농들이 경영자와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펌프나 관개시설 등 기술 교육에 주력한다.

IDE 기술로 1900만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10억달러의 수입 증대 효과를 거뒀다. IDE가 지원한 1달러로 가난한 이들의 수입이 평균 10달러씩 늘었다고 한다.

▶ 킥스타트 : 저소득층을 위한 상품

1991년 7월 '어프로텍(ApproTec)'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최근 '킥스타트'로 이름을 바꿨다.

사업 아이템 탐색, 제품 설계, 제품 공급체계 확보, 시장 개발, 평가 및 새로운 개발이란 5단계 운영 방법에 따라 사업을 진행한다.

킥스타트는 상품을 설계할 때 투자액 이상으로 수익을 내고,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선에서 가격을 결정한다.

인간 친화적이고 안전하며, 설치와 사용이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며, 해당 지역 문화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원칙도 지킨다.

2010년 기준으로 킥스타트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15만3000개의 펌프를 팔았고 9만7500개 회사를 세웠다. 이로 인해 48만8000명이 가난에서 벗어났고, 1년에 9860만달러치 수입이 새로 창출됐다.

킥스타트가 한 가족을 가난에서 영원히 구제하는 데 든 비용은 단돈 300달러였다.

▶ 프리플레이 에너지 : ‘친환경과 친서민’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다

프리플레이 에너지는 런던에 본사를 둔 친환경 가전기기 제조업체다. 이들은 수동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기기를 주로 만든다.

'라이프라인' 라디오는 본체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만든 전기로 작동하는 라디오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2002년, 유엔개발프로그램(UNDP)과 프리플레이재단이 아프리카 니제르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라이프라인 라디오를 보급했다. 당시 니제르 국민 수천명이 프리플레이 라디오와 총을 바꾸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후문이다.

▶ D-REV : 가난한 90%를 위해 제품을 디자인하자

IDE 설립자인 폴 폴락이 만든 비영리 디자인 기업. D-REV는 '디자인 혁명(Design Revolution)'의 약자다.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전세계 빈민들의 건강과 수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주력한다.

예컨대 '블루스타'는 황달 치료기다. 황달은 단순한 광선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지만, 저개발국가에선 이런 기기조차 제대로 보급돼 있지 않다. 그래서 기존 기기의 불과 4%가격의 저렴한 치료기를 개발한 것이 블루스타다.

▶ D.라이트 : ‘주경야독’을 위해선 빛이 필요하다.

D.라이트는 인도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이다. 전력 공급이 여의치 않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태양광 발전에 기반한 값싼 램프나 스탠드를 생산·판매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한다. 이들이 개발한 'D라이트'는 2010년 '애쉬든 친환경 에너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준형 기자 jjoon121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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