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유화산업편

 

리싸이클링(recycling). 재활용의 순화된 표현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자원을 절약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용품이나 폐물을 재생하여 이용하는 일”이다. 리싸이클링은 미국이 불황기를 맞았던 1980년대 버려진 물건을 수선해 다시 쓰는 ‘재활용’의 개념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인류가 생활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자원고갈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리싸이클링은 일반인의 귀에도 낯설지 않은 상용어가 됐다. 
단순한 페트병 분리수거에서부터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한 슬러지 연료화까지 한 번 사용된 자원적 가치를 또 다른 가치로 재창출시키는 마법 같은 리싸이클링의 세계가 ‘제2의 자원개발’로 전 세계의 이목을 잡아끌고 있다. 이에 본보는 3회에 걸쳐 국내 리싸이클링산업의 현주소를 찾아본다.

 

글 싣는 순서

(1) 플라스틱 유화산업
(2) 슬러지연료화
(3) 목질계 바이오매스

지난달 20일 경기도 화성시 외곽의 한 공장. 일반 공장과 별다를 것 없는 보이는 이곳에서 석유를 시추중이다. 동명알피에프(주)의 유덕명(46) 사장은 버려진 플라스틱에서 하루 4드럼(800ℓ)의 경유급 정제유를 뽑아낼 계획이다.
플라스틱 유화기술을 간단히 설명하면 석유를 원료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로 되돌리는 공정이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석유이므로 제조 때와 반대 공정을 거치면 다시 석유 상태로 되돌아가는 원리에 착안한 기술이다.
유사장은 국내에서 플라스틱유화기술이란 개념조차 낯선 지난 2002년 이 기술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처음 유화사업에 손을 댔다. 그는 “거리에서 하찮게 뒹굴고 있는 폐플라스틱도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에 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유로 환생한 폐플라스틱=일단 전국 각지에서 수거된 플라스틱이 이곳에 도착하면 무산소 상태에서 섭씨 420~430도 이상의 고열로 녹여진다. 이때 고체 상태의 플라스틱은 기름 75%, 회수할 수 있는 가스 15%, 카본 같은 잔사 10%의 상태로 분리된다.
유사장은 이렇게 발생한 기름을 정제유를 필요로 하는 철강회사 등에 되팔아 수익을 내고 발생한 가스등은 연료로 재사용한다고 했다. 그는 “아직은 근근이 현상유지만 하는 수준”이라고 했지만 “원활한 원료공급만 확보되면 연간 3억~4억원의 매출을 거뜬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잠재력이 높은 사업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생활폐기물의 60%를 차지하는 플라스틱류의 포장폐기물이 이처럼 유화공정을 통해 연간 150만㎘의 석유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은 400만톤으로 추산된다. 이중 유화가 가능한 25%만 리싸이클링해도 연간 3억달러에 가까운 석유수입 대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일단 용도를 다하면 부피만 차지하는 골치 아픈 플라스틱도 이 같은 공정을 거치면 값진 자원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유화기술의 본고장 일본=플라스틱 유화기술은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최초로 개발됐다.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불안에 휩싸인 시절이었다. 북해도 지방의 한 공업기술원이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기름을 추출해 내는 실험을 시도한 것이 지금의 플라스틱유화기술의 원천기술이 됐다.
지금도 일본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대형 유화공장이 상시 가동되고 있다. 특히 삿포로에 위치한 도앙유화시설은 2004년 기준 연간 3600㎘의 기름을 생산해내는 대규모 단일 공장이다.
도앙유화는 미가사시(市)와 구보다, 시나넹 등 6개 민간 기업이 지난 1998년 2억5000만엔(한화 30억원)을 공동 투자해 건립했다. 이 시설은 연간 6500톤의 폐플라스틱을 녹여낼 수 있는 선별시설과 일체의 추출설비를 확보하고 있다.
아직 설비 능력대비 가동률이 40~60%에 불과해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일본 정부는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지자체는 처치 곤란한 폐플라스틱을 소각이나 매립하지 않아서 좋고 운영회사는 쓰레기에서 귀중한 석유를 뽑아낼 수 있어서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2004년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온 김동환 워터라이프 대표는 “미래에너지 정책의 말단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느끼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부는 정책과 자금을, 지자체는 분리수거를, 관련업계는 유화산업을 운영시키는 그들의 시스템이 매우 인상적이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일본은 순수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삿포로플라스틱리싸이클링'이 지난 2000년부터 사업을 펼치고 있다. 도시바와 삼정물산 등이 자본금을 대고 정부가 절반을 지원해 총 52억엔을 투입했다.
삿포로플라스틱리싸이클링은 하루 40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선별부터 파쇄, 건조, 열분해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해낸다. 부지 면적만 1만5000평에 달하는 대규모 시설이다.

 

◆갈 길 먼 국내 유화산업=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유화산업은 아직 규모와 시설 면에서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10여개의 유화회사가 성업했지만 지금은 동명알피에프를 비롯한 3~4개의 소규모 회사만 남았다. 유화를 하고 싶어도 원료로 쓰이는 폐플라스틱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유화는 철저한 분리수거를 통해 가급적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원료를 써야 양질의 석유를 추출할 수 있고 수지타산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유덕명 동명알피에프 사장은 “일본은 엄격한 분리수거 시스템이 구축돼 경제성 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한 조건을 갖춘 셈”이라며 “우리나라는 아직도 똥 기저귀까지 섞여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플라스틱유화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홍보가 필수적이란 업계의 주장이다. 그나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통해 폐기물에 대한 재활용 시스템이 갖춰지고 있지만 폐기물을 자원으로 보고 가정에서부터 실천하는 일반인에 이해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이론에 치중돼 있는 정부의 정책 지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열분해 기술과 체계 없는 연구 등이 유화산업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이에 대해 유사장은 “유화산업을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보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분명한 비전이 보이고 잠재성이 높은 산업이지만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업계가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개척되지 않은 미국 서부지역의 유전을 개발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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