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펀드와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해결책

지난 10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0일 만에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외국 체류기간 중 기업의 활동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을 느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에너지업계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도시가스와 연탄사업으로 유명한 대성그룹의 김영훈(사진) 회장은 이를 하늘의 구름에 비유했다. 김회장은 "구름의 속도를 지상에선 느끼지 못하지만 공중에선 매우 빠르게 느낄 수 있다"면서 급변하는 세계 에너지업계를 표현했다.

 

한마디로 격동기다. 에너지업계에서 '격동'이란 에너지 가격이 높다는 게 아니라 에너지 가격이 자주 급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회장은 에너지그룹의 총수답게 에너지 생산국과 수입국의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런 그가 격동기는 우리나라와 같은 에너지 수입국엔 고유가보다 더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김회장만의 주장이 아니다. 지난 11월 중국에서 열린 다보스포럼(Davos Forum)에서 격동기에 접어든 에너지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회장은 "에너지업계 전문가와 책임자가 공감한 부분이 에너지가격의 변동 폭이 크고 변동주기가 짧다는 점이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격동기에 접어든 에너지시장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국제에너지펀드를 공동 출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유국의 가격 및 생산량 조정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회장은 "마카이 중국 국가발전계획위(NDRC) 주임이 방한했을 때 그를 만나 국제에너지펀드 조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마카이 주임은 5개국 에너지 장관회의 등을 통해 이를 적극 검토, 개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도 함께 진행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DRC는 우리나라로 치면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를 섞어놓은 기관이다. 마카이 주임은 부총리급 인사다.

 

국제에너지펀드 조성과 같이 각국 기업의 세계 무대 진출이 에너지업계의 트랜드다. 바꿔 말하면 에너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시기가 도래한 셈이다. 김회장은 "에너지업계는 세계적인 거대 기업에 의해 움직이는 추세"라며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해보면 에너지 기업의 위상이 매우 높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는 세계적인 트랜드이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이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에너지기업이 국제 무대로 진출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 시장에서 생존해야 한다고 한다. 김회장은 "우선 우리 기업이 국내에서 살아남아야 국제 에너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국내 에너지 저가 정책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이다. 도시가스산업을 사례로 든 김회장은 "국내에서 20년 역사를 가진 도시가스산업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면서도 "도시가스 공급비용은 전기료보다 2% 높은 정도로 미국이 10%, 일본이 5∼6% 비싼 것과 비교하면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도시가스산업은 최근 지역난방이 인기를 끌면서 위기감을 맛보고 있다. 게다가 20년마다 교체주기가 돌아오는 가스배관 교체 시기가 도래함에 따라 도시가스업계는 휘청거릴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 허덕이는 국내 기업이 국제 무대로 진출하기란 쉽지 않다.

 

김회장은 국내 기업의 국제 무대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놓을 계획이다. 세계에너지협의회(WEC) 부회장인 김회장은 "우리나라가 2013년 WEC 총회 유치에 출사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국내외 에너지 기업이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세계수출국기구(OPEC)이 생산자를 대변하는 조직이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소비자를 대변하는 조직이라면 WEC은 이 두 부분을 모두 아우르는 비영리 민간조직으로 유엔이 인정한 에너지 산업계의 대표적 비정부기구(NGO)다.

 

김영훈 회장은…
1952년 대구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1981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법학석사와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미국 하버드대학원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대성그룹본부 기획조정실장 부사장과 1997년 대성산업(주)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도시가스(주)와 경북도시가스(주) 대표이사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또 세계에너지협의회(WEC) 부회장인 김회장은 APEC기업자문위원ㆍ한국도시가스협회장ㆍ한국능률협회 부회장 등 대외적인 역할도 소화해내고 있다.

한편 그는 국궁(國弓)을 사랑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매일 아침과 저녁 서울 인근 국궁 터를 들러 활시위를 당긴다. 수년 전 어깨가 아파서 고생하던 중 어느 시중은행장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배우는 과정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깨 통증이 사라져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활시위를 깊숙이 잡아당기는 만작(滿作)은 새로운 사업을 할 때 모든 사업정보를 하나로 모으는 것과 같고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발시(發矢)는 돈 되는 사업에 집중투자하는 것과 같다.

 

김회장은 최근 활시위를 문화산업을 향해 당겼다. 그는 코리아닷컴을 인수해 온라인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가 하면 영화ㆍ애니메이션ㆍ게임ㆍ공연ㆍ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다. 김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은 반도체산업이라는 전망을 삼성그룹이 50년 전에 읽은 것이라면 향후 50년 후 성장동력은 문화산업이며 이를 대성그룹이 일궈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성그룹은…
1947년 창립한 대성그룹은 도시가스와 연탄사업으로 유명한 에너지 전문기업이다. 대성청정에너지연구소ㆍ대구도시가스㈜ㆍ경북도시가스㈜ㆍ대구에너지환경㈜ 등 에너지관련 계열사가 있다. 에너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근 TES(Total Energy Solution)사업을 구축했다. TES는 액화천연가스ㆍ신재생에너지ㆍ매립가스ㆍ지역전기공급ㆍ액화석유가스산업에 쓰이는 종합 기술 또는 시스템을 뜻한다.
대성그룹은 이를 기반으로 해외자원개발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대성그룹은 몽골 고비사막에 태양광발전과 풍력 복합발전시스템을 설치, 실증실험 중이다. 또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까지 가스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AGG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에도 도시가스사업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한편 대성그룹은 신사업을 확장하며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문화산업으로 선정하고 영화ㆍ출판ㆍ이벤트ㆍ게임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을 발굴해 유럽과 미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또 계열사인 글로리아 트레이딩(Gloria Trading)사는 자체 브랜드로 중국 아동복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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