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취지에 맞는 역할 수행하길

 진통 끝에 국가에너지위원회(이하 국가위)가 지난달 28일 닻을 올렸다. 에너지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만 2년만의 일이다. 국가위는 이날 청와대에서 출범식을 겸한 첫 번째 회의를 갖고 참여정부 에너지정책 노선을 담은 ‘에너지비전2030’을 제시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일각에선 범정부적 성격의 국가위가 참여정부의 첨예한 갈등현안을 고스란히 떠맡게 되면서 애초 사회적 갈등조정을 위해 출범했다가 사실상 연거푸 조정에 실패한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이하 지속위)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국가위가 설립취지에 걸맞은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정책 수립과정에서부터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주문이다.

 

◆‘우려 半 기대 半’=국가위는 출범과 함께 몇 가지 기록을 남겼다. 참여정부 이래 총 23개의 직속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지만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7개 부처의 장관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국가위가 최초다. 그만큼 위원회가 매듭지어야 할 현안의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모 위원은 “상견례 성격이 강했지만 회의는 다소 무겁게 진행됐으며 특히 원자력 정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위원사이에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공식적인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던 첫 회의부터 정부와 시민단체로 이분된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팽팽한 신경전까지 오갔다는 얘기다.

이는 그만큼 각 위원들이 갖는 대표성이 강한데다 기존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정책자문이나 조정ㆍ조사의 명분을 띠고 있는데 반해 국가위는 정부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한 최종 심의ㆍ결정기구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국가위 출범배경에 대해 방폐장 문제를 19년이나 끌어오면서 정부가 절실히 깨닫게 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국가위처럼 최종 결정단계서 시민단체를 포함하는 기구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속위 전철 밟지 않아야=이런 맥락에서 지속위를 국가위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올해로 출범 4기를 맞는 지속위는 지난 2000년 ‘물ㆍ에너지 대책 등 주요정책의 수립 및 시행’과 ‘지속가능한 국가발전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의 해결’ 등을 목적으로 발족됐다. 한 때 새만금 개발사업, 방폐장 부지 선정, 한탄강 댐 건설 등 첨예한 사회갈등이 등장할 때마다 유력한 중재기구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지속위는 1~3기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자문기구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속위의 한계를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는 얼마 전 건설이 확정된  한탄강 댐 케이스다.

노대통령은 2003년 취임 1주년을 기념해 댐 건설에 반대하는 강원도 철원군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회갈등에 대한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한탄강 문제를 지속위에 맡겨보는 것이 어떠냐”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이는 곧 지속위의 한탄강댐당사자회의로 연결돼 당사자 간 극적 타협점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댐 건설을 반대하던 주민과 환경단체 측이 지속위의 조정과정 투명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파행으로 치닫게 됐고 결국 지속위의 중재는 물거품으로 돌아간 바 있다. 이해당사자의 충분한 의견이 수렴되더라도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갈등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선례다.

 

◆국가위 제몫하려면=물론 국가위의 구성은 지속위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자문기구가 아니라 결정기구이며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직접 참여하는 조직이다. 국가위는 더욱이 정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 부처 핵심관계자와 대척점에 있는 시민단체의 대표들이 직접 머릴 맞대는 자리다.
자칫 신뢰관계가 무너지거나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각을 세우면 국가 에너지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란 명분도 허울로 전락하기 쉽다. 때문에 산자부가 아닌 별도의 독자적 국가위 사무처를 세워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요구가 묵살된 상황에서 정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현안을 충분한 논의 없이 강행할 경우 갈등의 불씨는 국가위 파행이란 큰 불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는 게 일부의 우려다.
국가위의 한 민간위원은 “가뜩이나 소수란 느낌이 들어 위축되고 어깨가 무거웠는데 첫 회의부터 원자력 확대를 논의하자는 식의 발언이 나와 당황했다”면서 “전문위원회 구성에 민간전문가들이 어떻게 포함되느냐 하는 점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걱정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위가 에너지에 관한 최고 결정기구로 당위성을 가지려면 안건 상정 과정에서부터 시민단체와 관계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면서 “국가위가 정부 측의 의도를 그대로 강행하기 위한 수단이 돼선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중심축 ‘에너지비전2030’ 무엇인가
2030년 에너지 자주개발율 35% 목표
 
지난달 28일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비상시 에너지수급계획 수립 ▲국내외 에너지 개발과 원자력발전 정책 ▲에너지정책 및 사업의 조성, 에너지관련 예산의 효율적 사용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에 대한 대책 중 에너지에 관한 사항을 주요 논의 사항으로 정했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산하에 ▲에너지정책 ▲에너지기술기반 ▲자원개발 ▲갈등관리 전문위원회를 구성, 운영할 계획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는 2030년까지 에너지정책의 골격을 담은 에너지비전2030을 기반으로 중장기 국가에너지정책을 수립한다.
 
이날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의 정세균 장관은 에너지정책의 3대 기본 방향ㆍ5대 비전ㆍ9대 실천과제를 담은 ‘에너지비전2030’을 보고해 우리나라 중장기 에너지정책의 기본 골자를 제시했다. 3대 기본 방향은 ▲에너지안보 ▲에너지효율 ▲친환경이다. 5대 비전은 ▲에너지 자립사회 구현 ▲에너지 저소비 사회로 전환 ▲탈 석유 사회 실현 ▲더불어 사는 열린 에너지사회 구현 ▲에너지 설비 및 기술 수출국으로 도약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9대 실천 과제는 ▲해외자원개발의 역량 확충 ▲수소경제 기반 구축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 보급 확대 ▲에너지 사용 효율의 획기적 개선 ▲에너지 산업 해외 진출 강화 ▲에너지 기술입국 실현 ▲효율적 에너지 시장 확립 ▲안정적 에너지 공급 기반 확충 ▲원자력산업 정책 방향 ▲에너지복지 확충방안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국가 에너지 자주개발율을 4.1%(2005년)에서 35%로 신재생에너지 보급율을 2.1%에서 9%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또 2005년 현재 0.358인 에너지원단위를 0.20까지 낮춰 에너지효율을 높인다. 석유의존도는 44.4%에서 35%로 낮출 예정이다. 2005년 현재 7.8%인 에너지 빈곤층을 2016년까지 전무하게 만들고, 2004년 현재 60%인 에너지 설비와 기술 수준은 선진국의 90%까지 확보할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에너지복지 확충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정부는 최저에너지(광열비) 구입비용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인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정의하고, 에너지 빈곤층을 제로화하기 위해 2007년 보일러교체와 단열지원으로 100억원을 투입한다. 또 고효율 조명기기보급에 17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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