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유 여전히 50달러대…국내유가는 벌써 반등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 개선'에 담긴 이중적 의미

▲ 지난해 10월 첫주부터 지난달 네번째주까지 싱가포르 현물가격과 두바이유 가격, sk이노베이션 공급기준가, 국내 휘발유 평균판매가격 변동 비교 그래프.<자료: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이투뉴스] 국내 기름값을 둘러싸고 소비자들의 불신이 깊다.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내릴 때는 게걸음이더니 오를 때는 'LTE' 속도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완전 따로놀지는 않아도 엇박자 느낌은 피할 수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3일 현재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배럴당 54.63달러 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휘발유 평균판매가격은 오피넷 기준 리터당 1509.93원이다. 두바이유는 지난해 100달러대를 웃돌다가 지난 1월 44달러대에서 최저점을 찍은 후 불과 10달러 올랐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2월 들어 1400원대 초반에서 주춤하다 곧바로 1500원대로 반등했다.

이 가격은 지난 한 해 평균 두바이유 108달러 일때 휘발유 가격 1827.3원에서 불과 300여원 내린 값이다. 이에 대한 정유사들의 해명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가격에 연동해 국내 공급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임의로 개입할 여지가 적다고 항변한다.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은 높은 세금 비중과 정유사와 대리점, 주유소로 기름이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시차 및 각각의 마진이 더해지기 때문에 유가변동과 비교해 체감도가 더욱 낮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대리점과 주유소로 가는 흐름을 잘라 정유사의 공급기준가를 놓고 비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가 매주 발표하는 공급기준가 역시 국제유가는 고사하고 정유사들이 기준가로 여기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가격 변동과도 제대로 연동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정유사들은 유가하락기에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가격과 2주여간의 시차를 두고 국내 공급기준가에 반영한다고 해명해 왔지만 싱가포르 가격이 반등한 지난 달 첫째주 정유사들은 동시에 공급기준가를 인상했다.

정유사들은 이에 대해서도 "공급기준가는 어디까지나 기준가일뿐 실제 주유소 공급가격과 차이가 있으며 설령 높게 판매했더라도 월말에 사후 정산(혹은 할인)을 통해 가격을  맞춘다"고 해명했다.

여기서부터 소비자들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복잡다단한 기름값 결정 구조를 하나하나 해부해 옳고 그름을 선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유사들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번지고 있다.

정유사 수익성의 직접적인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2년 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3분기 배럴당 2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던 복합정제마진은 지난달 12달러로 치솟았다.
 
복합정제마진은 제품가격에서 원유가격(두바이유)을 뺀 값을 말한다. 즉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이 좋다는 것은 두바이유는 하락하는데 제품인 휘발유 가격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두바이유 하락만큼 낮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가격과 두바이유의 가격차는 지난해 배럴당 10달러 내외였지만 유가하락기 들어 15달러까지 벌어졌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게걸음으로 하락하는 휘발유를 구입하며 정유사의 부르는 배를 지켜만봐야 하는 상황이다.

원재료인 원유(두바이유) 가격을 오롯이 반영하지 않고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가격을 반영하는 정유사들의 현 정책은 합당한 것일까.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원유와 석유제품은 따로 거래되는 품목"이라며 "국제시장에서 WTI, 브렌트유, 두바이유가 각각 거래되고, 휘발유와 경유 등이 따로 블렌딩 되기 때문에 각각 가격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정유사들도 국제 트렌딩 거래관행인 원료가격과 구분된 제품 가격에 기반해 공급가격을 설정하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 석유제품 판매가격 제도 변천.<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하지만 정유사의 국내 공급가격 제도의 역사를 뒤돌아 보면 제품가격에 기반한 결정이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 원유가와 국제 석유제품가격 연동제가 수차례 변동됐다.

정부가 국내 판매가격을 결정한 고시가격제 시기인 94년은 원유가 연동제를 시행하다 그해 11월부터 정부 고시가격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국제 제품가격에 연동했다. 하지만 가격자유화가 이뤄지자 정유사들은 다시 원유가격에 연동해 국내 가격을 결정했다. 이후 2001년부터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에 기반한 공급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지금의 가격결정 구조는 일종의 타협안"이라고 정리했다. 허 교수는 "유가자유화 이후 수출가와 국내판매가의 형평성, 국제유가의 변동에 대한 시기적절한 반영 등 두가지의 큰 이슈가 있었다"며 "그 해결방안으로 국내 정유사들이 제품을 판매하며 가격이 공개된 싱가포르 현물 평균가격을 반영한다면 가격 투명성 부분은 확보할 수 있지 않나라는 합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사기업인 정유사에 싱가포르 현물시장 석유제품 가격과 국내 공급기준가의 반영 시기와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의 적절성 등을 구체적으로 따지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며 "이 때문에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도입해 주유소 부분에서 가격경쟁을 촉진시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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