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우리말로 흔히 도덕적 해이라고 부르는 모럴해저드. 이 말은 원래 보험회사들이 피보험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르키는 윤리적 의미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정인의 행위로 인한 위험비용을 타인이 부담하게 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경제학자들은 “위험 발생에 따른 비용이 위험행위 주체가 아닌 제3자에게 전가될 때 발생하는 비효율”을 모럴해저드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국내 집단에너지업계가 갈수록 모럴해저드에 빠져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집단에너지 공급 포기다. 어렵사리 사업권을 확보했지만 시장이 별 볼일 없어지자, 차일피일 시간만 미루다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집단에너지보다 다른 이권을 위해 뛰어든 사업자가 주로 이러한 양상을 보인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지만, 대개 누군가 이어받아 사업을 지속해 그 피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 영종지구를 비롯해 미단시티에서 보듯이 아예 사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한 후에야 사업권 반납을 외치고 있어 문제다. 검단신도시 역시 지역난방 공급이 임박해서야 사업권 양수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업권을 포기하더라도 신규사업자를 선정할 때만 불이익이 주어질 뿐 별다른 패널티가 없다보니, 다들 ‘나 몰라라’로 흐르는 분위기다.

사업자의 모럴해저드만 탓할게 아니다. 인천 영종지구와 미단시티는 모두 섬인 영종도에 있다. 영종도 집단에너지사업은 최초 공항지구를 시작으로 영종지구와 미단시티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육지와 연결하기 어려운 영종도를 두 곳으로 나눠 사업자를 각각 선정했다. 전체를 포괄해 하나의 사업으로 운영해도 규모의 경제 달성이 쉽지 않은 곳을 다시 쪼갠 것이다.

검단신도시 역시 한숨이 나온다. 청라지구와 한강신도시 가운데에 있는 검단신도시 집단에너지사업권을 별개 사업자에게 부여했다. 인천발전단지에서 청라지구를 거쳐 한강신도시까지 가는 대형 열배관을 이용하면 검단은 쉽게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바로 옆 발전소에서 다시 배관으로 끌어오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낸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차지했다.

국내 집단에너지사업자 선정은 표면적으로 경쟁이라는 절차를 밟는다. 지금 발생하는 집단에너지사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 경쟁이라는 미명아래 열연계 등을 통해 인근사업자가 공급할 수 있음에도 불구 새로운 업체가 선정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아무리봐도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은 곳을 사업지구로 지정하는가 하면 과도한 사업영역 쪼개기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부와 일부 사업자의 연이은 모럴해저드에 제3자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책과 결정으로 나머지 집단에너지사업자와 국민들만 휘둘리는 셈이다. 자기반성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잘못을 자꾸 되풀이 해선 안된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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