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CES업계, 전기공급사업 '샅바싸움' 격화

에너지원별로 사업자가 분명했던 에너지시장의 성역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구역형 집단에너지 사업이 추진되면서 앞으로 전기는 발전사가 아닌 도시가스사가 천연가스로 열병합발전소를 돌려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가스분야 역시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천연가스 직도입에 민간기업에 허용되면서 능력있는 기업은 가스공사보다 더 싼값에 필요한 만큼의 가스를 수입해 자급 또는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될 조짐이다. 

   

수십년간 독점 전기공급자로 군림하던 한국전력은 구역형전기(CES) 사업자에게 고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고, 천연가스 직도입을 추진하는 민간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큰 손 대접'을 받고 있는 국적 가스 공기업의 밥상 위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다양한 에너지원이 융ㆍ복합하는 '에너지 컨버전스(Convergence) 시대'는 과거 독점사업자에게는 커다

란 위기로, 새로운 시장으로의 도전을 준비해 온 사업자들에게는 더없는 기회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구역형전기사업 제한용량 증대(본지 9월 10일자 4면보도 참조) 검토로 촉발된 한국전력과 CES사업자간의 기싸움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이 문제는 향후 전력ㆍ가스산업 구조개편과 맞물려 한국 에너지시장의 지각변동을 부를 전망이다. 

 

◆ 한국전력의 위기=지난 수십년간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만들어 파는 일은 한국전력 혼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불변의 이 공식은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일환으로 1995년 구역전기사업제도를 도입, 집단에너지사업자에게도 사업기회를 제공했다.

 

이 결과 최근 신규택지 개발지구에 전력과 열원을 공급하는 구역형 집단에너지사업이 본격화되고 있고 일부사업의 경우 조만간 첫 수익도 발생할 전망이다. 현재 정부로부터 허가가 떨어진 CES설비 용량은 전체 930MW에 사업자만 24개다.

 

전기공급 사업은 더 이상 한전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이같은 변화는 몇가지 필연적인 논쟁을 불러왔다. 구역형전기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과연 우리나

라 현실에 적합한가 하는 경제성 논란과, 어느 수준까지 확대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적정성 논란이 그

것이다.

 

최근 구역형전기사업자들이 산자부에 의뢰해 검토가 진행중인 한계용량 증대건은 이 두가지 논쟁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사안이어서 정부의 최종 선택에 에너지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의 주장처럼 300MW로 한계용량을 지금보다 두 배 늘리면 판교신도시 정도의 대규모 공급권도

CES사업자가 거머쥘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향후 발생할 신규시장 대부분은 열원과 전기를 동시에 공급하는 CES사업자 몫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시장을 그만큼 빼앗기게 될 한전이 위기감을 느껴 반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현재 한전이 구역형전기사업을 반대하는 논리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민간사업자 등장에 따른 전기공

급의 공공성 훼손과 CES사업 자체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저효율 주장이다.

 

한전 영업팀 관계자는 "산업용 전력을 싸게 공급하고 외진 곳에 농사용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주를

10본씩 세워가며 KWh당 40원도 안되는 가격을 받는 것은, 주택용을 높게 받고 이들 전력을 원가 이하에 공급하는 공익기능 덕분"이라며 "구역형사업이 확대돼 요금이 오르면 결국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규모의 사업을 허용해 달라는 CES업계의 요구는 대규모 시장을 차지하고 보겠다는 '손 안대고 코풀기' 전략이거나, 이문이 남지않는 사업을 빼놓고 알짜 사업만 빼 먹는 '크림 스키밍' 전략이라는 비난이다.

 

더 나아가 한전은 집단에너지 확대공급의 명분이 돼 온 분산형 전원체제 구축과 열효율 제고도 결국 오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다른 한전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국토는 어디든 30Km 이내에 전력망이 깔려 있어 기저발전으로 저렴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고 송전손실도 크지 않아 열병합 자체가 타당성이 없다"며 "오히려 CES사업자가 LNG값을 핑계로 싼값에 전기를 받아 비싼값에 되파는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역형 집단에너지는 하루 열수요가 12시간 이상이고 천연가스 단가가 낮아야만 경제성이 있다"면서 "결국 구역형 전기사업을 확대하면 공익적 기능을 포기하고 사업자만 살리는 시장왜곡을 자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CES업계 "자율경쟁은 시대적 흐름"=하지만 이해당사자인 CES업계는 구역전기사업 확대가 송ㆍ배전 시장 개방을 성사시키지 못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지속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고, 분산형 전원체제 구축과 에너지효율 측면에서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용량증대 검토는 업계에 혜택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악화된 구역형전기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해 주기 위한 규제완화로, 한전은 '밥그릇'을 포기하지 않으려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구역형전기사업을 추진중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개정 당시보다 LNG가격이 20%이상 상승했고, 참여정부 들어 부지비용은 두 배이상 상승해 150MW 규모로는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특히 150MW까지는 '규모의 경제'가 어려운 가스터빈 조합형태가 불가피해 이를 확대해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역전기사업은 소비처와 발전처가 다른 전기공급 구조를 해결하고 분산형 전원체제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법에서 300MW까지 허용된 용량을 시행령에서 150MW로 막고 있는 규제를 개선하자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전은 과거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성을 받아들이고 경쟁체제 도입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구역전기사업이 시장의 경쟁을 유발시키는 요소를 도입된 만큼, 좋은 취지로 출발한 사업의 본질을 이해관계로 왜곡시키면 안된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처럼 양측이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산자부는 연말께 CES업계가 제안한 용역연구 결과를 토대로 용량증대를 전제로 한 구역전기사업의 개선방향 공청회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산자부는 "워낙 민감한 문제라 지금 시점에 언급할 상황이 못된다"고 입장표명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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