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평가위 기술특성자료 재정립 과정 불만 고조
"정당한 보상없이 가장 어려운 발전기 희생 강요"

▲지난 1월 13일 기준 일일 전력수요와 발전원별 전력공급 현황 그래프. 태양광과 풍력 등 임의로 발전량을 조절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수요변화를 한계발전기들의 출력을 증감시켜 공급하고 있다.
▲지난 1월 13일 기준 일일 전력수요와 발전원별 전력공급 현황 그래프. 태양광과 풍력 등 임의로 발전량을 조절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수요변화를 한계발전기들의 출력을 증감시켜 공급하고 있다.

[이투뉴스] 재생에너지 확산에 대응해 전력당국이 추진하는 발전기 기술특성자료 재정립 작업을 놓고 한계발전기를 운영하는 발전사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현행 전력시장에서 이들 발전기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계통에 기여하면 할수록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거래액 기준 48조원 규모 전력시장에서 이같은 보조서비스(AS)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0.1%에 불과한 485억원 수준이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전력거래소 기술평가위원회는 최근 한전 및 각 발전사 실무자급 30여명과 기술특성자료 작성 워킹그룹 킥오프 회의를 가졌다. 각 발전사들로부터 발전기별 상세 기술특성자료를 취합해 올해 10월부터 이를 실시간 운영발전계획(UC)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기술특성자료는 발전기의 기계적 규격(Specifications)을 말한다. 최대‧최소 발전량은 물론 기동과 정지에 필요한 최소시간과 얼마나 빨리 출력을 높일 수 있는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출력과 연료소모량, 시속 100km 도달시간 등이 기록된 제원표다.

앞서 올해 3월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는 기존 비용평가위원회가 수행하던 계통관련 업무를 신설 기술평가위원회로 이관하고 국내 모든 발전기들의 기술특성자료를 재취합하고 있다. 태양광·풍력 증가로 커지는 변동성을 부하추종력이 뛰어난 자원으로 커버하기 위해서다.

실제 킥오프 회의에서 기술평가위원회 실무위 측은 발전기 기술특성자료 적용기준 개선방향과 목적을 설명한 뒤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인만큼 발전사들이 적극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당국은 특성자료 임의변경이나 변칙적 자료제출이 발전사 측의 고의적인 부정행위로 간주될 경우 시장감시위원회에 회부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발전사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특히 전력수요와 공급력이 만나는 꼭짓점에서 출력을 증감하며 전력수급 윤활유 역할을 하는 한계발전기 운영사들은 “변동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형편이 어려운 한계발전기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발전사의 의견을 취합해 보면 향후 유연성 전원으로 투입될 발전기들은 가장 최근 건설한 발전기나 저렴한 LNG를 사용하는 직도입발전기가 아니라 가스공사 LNG를 연료로 쓰는 주로 수도권 외곽 한계발전기들이다.

이들 발전기는 잦은 기동정지나 계통제약운전으로 가동하면 할수록 연료비와 정비비용 적자가 불어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고속도로를 정속주행하는 차량에 비해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정체구간 운행차량의 기름값과 소모품 교체비가 더 들고 고장이 잦은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한 해 한계발전기들이 입은손실은 계통제약운전으로만 발전사당 평균 28억원, 전체 207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2007년 책정된 보조서비스 배정액(436억원)은 지난 14년간 49억원이 증액되는데 머물러 있다. 당국은 속응성자원 보조서비스 배정액과 정산단가를 현실화하는 용역을 추진하는 한편 각종 계통제약을 전력시장가격(SMP)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실행여부는 미지수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현 전력시장은 유연한 자원일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서 “가장 피해를 보는 한계발전기들에게 재생에너지 변동성과 불확실성마저 감당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 추가되는 비용을 고스란히 발전사가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특성과 환경이 제각각인 발전기 특성자료를 일원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시장제도를 고려해 일단 따르라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면서 “계통에 필요하다면 시장에서 적절한 유인을 하면 될 일이지 규제만으로 이를 해결하려하면 안된다. 이런식의 차세대 전력시장은 변동비반영시장(CBP) 도입 이후 누더기가 된 전력시장의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전문가들은 합당한 시장보상과 계통운영의 투명성 제고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발전계획 전문가인 정해성 장인의공간 대표는 "에너지가격이나 예비력가격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으면서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감당할 순 없다"면서 "전력거래소부터 어떤 발전기가 예비력을 제공하는지, 전력계통에는 어떤 제약이 존재하는지부터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을 개편하고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는 "가장 큰 책임은 산업부에 있다. 어떤 정책을 결정하면 합당한 시장제도를 만들 궁리를 해야하는데, 그런일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이것저것 미봉책을 동원해 일을 키운다"면서 "제대로 된 기준, 적절한 보상, 패널티 부여가 맞물려 가야한다. 수요정체 상태에서 재생에너지가 지속 증가하면 향후 7~8년간 기존 발전기들이 굉장히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계통분야 한 당국자도 "속응성 전원은 계획상 용어에 불과하다. 적절한 보상을 안해주니 갈수록 그런자원이 줄어 계통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발전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계통이든 시장이든 기술적인 응동특성에 따라 보상을 우대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LNG복합화력
▲LNG복합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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