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육지 대규모 탈락 불구 산업부 '강 건너 불'
전문가들 "정책간 밸런싱 필요, 제도정비 시급"

▲제주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제주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이투뉴스] 제주시에서 27MW규모 태양광을 운영하고 있는 A사업자는 올해 8월 4일 발전소가 모두 정지하는 사고를 겪었다. 하루 중 발전량이 가장 많은 한낮이라 영문도 모른 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같은시간 3MW 풍력터빈 10기를 운영하는 탐라해상풍력단지 역시 갑작스런 터빈 정지로 비상이 걸렸다. 모든 설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날 동시정지 사고를 경험한 태양광‧풍력‧ESS는 무려 150MW. 당시 전력생산 재생에너지 설비의 70%에 달한다.

풍력단지를 운영하는 B사업자는 “크레인이 154kV 초고압선을 건드리면서 선로 중 한 상에 지락(어떤 요인으로 선로가 대지와 전기적으로 연결돼 전류가 땅으로 흐르는 상태)이 발생, 주파수와 전압이 떨어지면서 파급사고가 난 것으로 나중에 들었다”면서 “발전량이 많지 않은 계절이라 다행히 큰 영향이 없었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더 높았다면 공급에 큰 차질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재생에너지 30%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정작 전력망 접속기준이나 제도, 설비인증 요건 등을 챙기지 않아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서 집단이탈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양적확대에만 치중해 정부가 설비 기술기준 정비 등 기본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발전사들에 따르면, 제주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대규모로 이탈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1월에는 한림복합화력 인근 송전선에 낙뢰가 떨어지면서 순간적인 저전압이 발생해 일대 풍력터빈 90MW 가량이 동시에 멈췄다. 순간적인 낙뢰 충격을 막아주는 피뢰기(Lightning Arrest)가 정상동작하지 않으면서 해당 선로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기존 풍력터빈 인버터에 이를 걸러 줄 LVRT(Low Voltage Ride Through)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아서다. 

LVRT는 전압이 순간적으로 떨어졌을 때 해당설비가 일정수준까지 그 충격을 견디며 운전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전력망의 회복력을 높여주는 기능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인버터 설비에 탑재된다. 미국의 경우 상용인버터는 반드시 UL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인증시험에 LVRT기능이 포함돼 있다. 유럽도 LVRT기능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기술협의 의무조항이 마련돼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수십MW급 이상 대형발전단지 계통접속 시에만 한전과 이런 사항을 협의해야 한다는 신재생에너지 송전계통 연계기술기준이 있을 뿐, 인버터 KS인증에 이를 의무화하지 않아 기능이 없는 설비가 현재도 보급되고 있다.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같은 유형의 계통사고 때 갈수록 더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기들이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고 이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엔지니어링기업 한 전문가는 “LVRT기능은 별도 하드웨어를 추가하지 않고도 소프트웨어적으로 변경이 가능한데, 정부기관들은 제대로 테스트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KS인증내역에 이를 포함을 시키지 않고 있다”면서 “국내에 수입되는 외산제품들은 모두 이미 이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오히려 국내에서는 그 기능을 무력화시켜 판매‧설치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기준이 시장보다 뒤처져 발생하는 문제로, 포드자동차가 고무타이어 대신 마차시대 나무바퀴로 운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재생에너지정책이나 보급에 관련된 정부나 관련기관들이 현장의 기본적인 목소리를 듣지 않고 소위 연구실과 정부상담 전문가들의 이야기만 들으면서 시장과 동떨어진 낙후된 기술체계와 인증이 시장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발전단지 전경
▲태양광 발전단지 전경

같은 유형의 재생에너지 집단이탈 사고가 지난해부터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작년 3월 28일에는 석탄화력인 신보령 1호기가 불시 정지하면서 계통 주파수가 59.8Hz로 떨어지자, 이를 저주파수로 인식한 태양광 450MW가 추가로 정지하면서 주파수가 59.67Hz까지 주저 않았다. 주파수 회복이 지체되면 자칫 대규모 정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부랴부랴 신규설비에 새 연계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기존설비 설정값 변경에 나섰으나 정부 담당자 교체 이후 유야무야되면서 현재까지 미해결 과제가 됐다.

익명을 원한 당국자는 “정부는 지적이 나올 때만 반짝 신경을 쓸 뿐”이라며 “현 정부 초기에 파악된 문제들이 지금 얼마나 해소됐는지 의문이다. 계량이 안되는 발전기 문제도 임시방편 대책을 세우면서 사실상 무대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파수도 문제지만, 전압기준도 마찬가지”라면서 “컨트롤타워(정부)가 움직이지 않고 재생에너지 목표나 비전만 쫓으면 공허한 공약만 반복되고, 사고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보급을 위해 선제적인 제도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한데, 현재는 재생에너지 양이 먼저 늘어나고 제도가 그 뒤를 뒤따라가는 형국"이라면서 "정책간에 밸런싱이 필요하다. 선제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재생에너지 양을 늘리면서 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불확실성이 제거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현행 제도는 기존 동기발전기 위주여서 무시못할 수준으로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제도나 규정은 아직 기존자원만큼 완성도 있게 정비돼 있지 않다"며 "재생에너지도 발전자원으로서 책무가 있다. 지금까지는 해외 사례를 보고 제도를 정비하는 식이었지만, 급격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 그런식의 대응은 늦을 수 있어 선제적 제도보완과 정비가 시급하다"고 부연했다.

반복된 지적에도 정부가 기본을 챙기지 않는 건 직무유기란 비판도 나온다. 재생에너지기업 A 대표는 “발전량 정보공개부터 모니터링까지 한마디로 기본에 해당하는 일이 안 돼 있어 발생하는 문제들”이라며 “국민에게 간접세처럼 전기료를 걷어 사업자들을 지원하면서 그 데이터를 사유화 해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용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된 지 17년이 넘었고 현재 10만여개에 이르지만 실제 발전량이 얼마인지, 오늘 발전량이 얼마인지는 깜깜이”라면서 “초기라면 모르지만 한전, 한국에너지공단, 전력거래소가 제각각 십수년간 수십~수백억원을 쏟아 부어 모니터링 한다면서 아직 통합시스템 하나 없다. 거래소 추정값으로 대통령에게 태양광 모니터링이 된다고 보고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A 대표는 “이는 전적으로 역대 산자부 장관이나 에너지 차관의 직무유기”라면서 “각 부서끼리 겹겹이 칸막이를 쳐놓고 자신의 업무만 챙기거나 이를 통합‧조정해야 할 임무가 있는 사람의 무관심이 가져온 결과다. 세금과 전기료로 예산을 늘리고 어디에 쓸 것인가만 관심을 가졌지, 현 실정이 어떤지, 정책 결과가 어떤지는 관심이 없다"고 역설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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