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 (사)물과생명 대표
파이프를 넘어, 선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관리 MoMoMo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사단법인 물과생명 대표)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사단법인 물과생명 대표)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물
기후위기는 더 이상 예외적인 재난이 아니다. 봄마다 이어지는 대형 산불, 여름의 폭염과 집중호우, 가을의 극심한 가뭄, 겨울의 지반침하까지 모두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이 다양한 위기의 공통점은 바로 ‘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물을 보면서도, 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도꼭지, 파이프, 하천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빗물, 토양수, 식생수, 지하수처럼 우리 발밑과 머리 위, 식물 속에 있는 물이 기후위기의 본질적 대응책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 왜 다 흘려보내는가?

산불이 나면 사람들은 기도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주기를.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면 단비를 기다린다. 하지만 막상 비가 내리면 우리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도시와 산, 마을에는 빗물이 머무를 공간이 없다. 단 10분도 지나지 않아 빗물은 배수구로, 하수도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빗물은 위험한 산성비라고 생각하고 있고 수자원과는 별개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무심코 버리고 있다.

◇보이는 물, 그러나 무시된 가치
빗물은 우리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흔하고 값어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저장되고 활용될 때 산불을 예방하고, 나무를 살리고, 지하수를 채우며, 도심 온도를 낮추는 소중한 자원이 된다.

문제는 현재의 법과 제도가 이러한 빗물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시설이 있어도 이를 위한 제도적 인센티브가 부족하고, 오히려 배수와 유출을 중심으로 하는 설계가 장려되고 있다. 우리의 하수도 법은 빗물은 성가신 존재이므로 신속 배제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공짜 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보이는 물의 진짜 가치는 계속 무시될 것이다. 그리고 지하수는 누구든지 조금만 돈을 내면 퍼쓸수 있고 그것은 금방 다른 물로 채워질 것이라고 알고 있다.

◇기존 물관리 시스템의 한계
현재의 수도와 하수도 중심 물관리 체계는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효율적인 물 공급과 위생 처리를 위해 발전된 시스템이지만, 이는 대량의 물을 빨리 보내는 데 집중된 구조다. 하천도 마찬가지이다. 하천은 빨리 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도 못되고 바다로 빨리 내다 버리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는 물이 흐르는 것보다, ‘머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토양에 머무르는 수분, 나무의 뿌리에 머무르는 수분, 지하로 천천히 스며드는 물이 산불을 막고, 식생을 살리며, 지하수를 충전한다. 기존 시스템은 이 보이지 않는 물을 다루지 못한다. 더욱이 이 시스템은 행정구역, 시설 구역, 기관 책임의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 그 외부의 물, 사람, 땅은 책임 대상에서 제외된다.

◇MoMoMo 물관리 : 모든 물을, 모두가, 모두를 위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물관리 철학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모모모(MoMoMo)’ 물관리다. 이는 모든 물(Management of All Water)을, 모두가(by All), 모두를 위해(for All)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MoMoMo는 빗물만이 아니라 토양수, 식생수, 지하수까지 포함한다. 또한 정부와 기관뿐 아니라 학교, 마을, 시민이 함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철학이어야 한다. MoMoMo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며, 물을 보는 새로운 눈이다.

◇파이프 너머, 선 너머의 물을 보다
우리는 이제 파이프에 갇힌 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도적 경계, 행정 구역, 시설 중심의 물관리를 넘어 자연 속에서 순환하고 머무는 물을 관리해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이겨내는 첫걸음이다.

모든 물을, 모두가, 모두를 위해 관리하는 MoMoMo 물관리.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고, 미래세대까지 이어지는 생존의 철학이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물을 보아야 할 때다. 그것이 곧 하늘의 자비이며, 땅의 회복이며, 사람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길이다.

[국내 실천사례 1] 광진구 스타시티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 시설
서울 스타시티는 세계적인 빗물관리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이곳은 3천톤짜리 빗물저장조를 3개로 나누어 각 천톤의 저장조는 홍수 예방용, 물절약용, 비상용의 용도로 사용되어 모두를 위한 물관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도시 내에서 물의 순환을 회복하는 귀중한 모델이다. 이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2004년 서울시에서는 빗물시설을 만드는 사업주에게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빗물조례를 만들었다. 이를 따라 100개 이상의 시군에서 빗물조례를 만들었지만, 정작 실천은 안하고 있는 듯하다. 

도심 속 물순환 회복의 세계적 모범사례로 꼽히는 서울 스타시티 빗물 저장조 개념도.
도심 속 물순환 회복의 세계적 모범사례로 꼽히는 서울 스타시티 빗물 저장조 개념도.

[국내 실천사례 2] 서울대 35동 옥상녹화의 WEFC 실현하는 모델
서울대학교 35동 옥상은 도시형 MoMoMo 실천의 대표 사례다. 이 옥상은 비가 오면 물을 받아, 식물을 기르고, 옥상 온도를 낮춘다. 구성원들이 함께 돌보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은 물(Water), 에너지(Energy), 식량(Food), 공동체(Community)를 통합한 WEFC 모델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특히 도심에서 비가 땅에 닿을 틈이 없을 때, 옥상은 새로운 자연 순환의 기반이 된다. 옥상녹화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이 줄고, 공동체 활동이 늘어나며, 도시 전체의 기후회복력이 높아진다.

WEFC를 실현하는 도심 속 모범사례인 서울대 35동 옥상녹화시설.
WEFC를 실현하는 도심 속 모범사례인 서울대 35동 옥상녹화시설.

[해외 실천사례 1] 슬로바키아의 산불예방 위한 물모이
한국의 산에는 ‘물모이(water pit)’라는 웅덩이를 만들어 산불 예방과 생태계 복원에 활용하고 있다. 산속의 물모이는 한 개에 수만 리터의 물을 저장하며 동물의 서식처이자, 토양수 보존의 거점이 된다. 이는 소방헬기 수십 대보다도 빠르고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슬로바키아 역시 이러한 물모이를 통해 다양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연형 재해예방, 빗물 저장고인 슬로바키아 산에서 물모이를 조성하는 현장.
자연형 재해예방, 빗물 저장고인 슬로바키아 산에서 물모이를 조성하는 현장.

[해외 실천사례 2] 공동체 단위의 빗물식수화 시설
지붕에서 받은 빗물은 마일리지가 짧아서 이물질이 가장 적게 들어가 있다. 따라서 약간의 처리를 거치면 가장 깨끗한 음용수를 마실수 있다. 다만 유지관리를 위하여 학교나 보건소등 공동체 단위로 설치하는 공동체 단위 빗물식수화시설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대가 베트남 정부와 함께 베트남 시골 보건소에 만든 빗물 식수화 모델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이 모델을 정책적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보건소의 빗물식수화 시스템.
베트남 보건소의 빗물식수화 시스템.

[해외 실천사례 3] 캄보디아의 Rain School 이니셔티브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는 시골의 학교 단위에서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로 식수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특히 빗물의 중요성을 교과과정에 넣어 교육하는 레인스쿨 이니셔티브가 진행돼 관심을 모은다. 대한민국이 UN에 제안한 레인스쿨 이니셔티브에 따라 캄보디아 교육부에서는 1000개 학교에 이러한 시설과 교과과정을 전파하기로 정책을 바꾸었다. 이것을 계기로 메콩지역의 여러 나라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레인스쿨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교육과 생존, 공동체를 연결하는 세계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미얀마에서도 지진 피해 지역에 지붕이 없고 상수도 인프라가 공급되지 못해 식수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에 보급하기 위한 모듈형 RFD(Rainwater for Drinking) 시스템을 설치, 전기나 수도가 없어도 안전하게 식수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지역주민이 스스로 빗물을 관리하며, 위기에 대응하는 자립형 구조를 보여준다.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물과생명 대표)  my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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