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P한국위원회 "기후변화 대응 소홀하면 투자 못 받는다" 경고

[이투뉴스] #사례1. 최근 삼성물산은 주한미군에 물품을 납품하려다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CDP)에 응답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어리둥절해했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및 감축계획, 기후변화 관련 기회·위험요인 등을 외부에 공개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이다.

과거 기업들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온실가스 등 환경적 책임도 수행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때문에 삼성물산은 올해 부랴부랴 CDP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영국은 기업이 공공기관에 물품을 납품할 경우 CDP에 응답하도록 하고 있다.

#사례2. 지난해 LS전선은 유럽의 모 기업에 수출을 추진하다가 역시 "CDP에 응답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CDP한국위원회에 "어떻게 하면 CDP에 응답할 수 있느냐"를 물어왔다. LS전선은 비상장 기업이어서 CDP 응답 대상기업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CDP는 주식 거래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상장기업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CDP한국위원회는 LS전선의 온실가스 관련 정보를 LS그룹에 최대한 많이 노출시킬 것을 주문했다. LS전선의 모회사인 LS그룹은 100대 CDP 응답 대상이다.

▲ 양춘승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탄소정보에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투자자들의 경우 CDP를 통해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고 있다. 또 투자자들은 기업 투자나 대출을 결정할 때 기업 경영에 개입하기 위한 보조자료로 활용한다.

양춘승 CDP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은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금융기관은 투자사가 온실가스에 관리를 허술하게 하면 찾아가 문제를 지적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며 "특히 영국 허미스 에쿼티 오너십 서비스나 아문디 자산운용은 굉장히 적극적인데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늦다"고 꼬집었다.

전통적인 투자기법이 자기자본 이익률, 미래의 기대수익, 이익창출 능력 등을 따져 투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보호나 지구온난화 방지와 같은 환경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얼마나 지느냐도 투자의 조건에 포함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고 자본주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게 양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양 부위원장은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는 결국 '투자자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자본주가 어떤 기업의 주식을 사고 싶은데 그 기업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고 보고, 만약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투자하지 않는 식이다.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는 비영리기구 차원에서 수행되고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CDP위원회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모토로 하지만 기업 투자자인 금융권의 정보공개 요구가 거세지면서 탄소정보 공개가 사실상 의무화되고 있다. 탄소정보 공개시 CDP위원회의 질의내용은 온실가스 관련 위험 요인과 기회 요인에 대한 기업 시각을 묻는 것이 요체다. 온실가스 배출 현황 및 대응책, 온실가스 감축 성과나 목표 달성 사항에 관한 질문도 덧붙여진다.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는 사실 기업 경영상태나 기밀 등을 담고 있어 기업들은 답변을 꺼리는 것이 당연지사. 게다가 민간에서 하는 공개 요청이자 자발적 성격을 띄고 있어 굳이 질문지에 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기업들에게 정보공개를 이끌어 낸 것은 금융권의 요구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은행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KB자산운용, NH-CA자산운용 등 자산운용사,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등 국내 굴지의 20개 금융사는 기업의 탄소정보공개 요구 대열에 합류했다.

양 부위원장은 "돈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 기업이 정직하게 녹색성장을 하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며 "모든 산업이 녹색으로 가는데 금융기관만 ‘녹색이 아니라 회색이 좋다’면서 건설사에 투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CDP한국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투자자들이 탄소정보공개 기업에 투자하는 금액은 64조달러에 달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1%도 미치지 못한다. 투자액의 차이가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탄소정보 공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차원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기업들을 움직이는 것은 경제적 이득이다. 이것이 투자액이 중요한 이유다.

양 부위원장은 "국내 기업이 CDP한국위원회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것이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CDP한국위원회는 2008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에코 프런티어, 아시아지속가능투자협회의 합작사로 출범해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국내 시가총액 기준 상위 50개 기업에 질문지를 발송해 16곳에서 응답을 받아냈다. 지난해에는 100개 기업 중 50개사가 응했다. 위원회는 올 초 200개 기업에 질문지를 보냈다. 내년에는 300개로 늘릴 방침이다.

양 부위원장은 "마르크스 명제 중 '양이 질을 바꾼다'란 말이 있다. 많은 기업들이 환경정보를 공개하면 결국 좋은 기업에 대한 외국 투자가 늘어나고 기업들에게 좋은 일이 된다"며 자본의 선순환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부나 투자자가 환경정보를 요구할 때 비로소 기업들이 움직일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위원회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친환경상품 공공조달에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를 접목하기 위해 올해 환경부와 산하기관 등에 이를 제안할 계획이다.

CDP공공조달 부문은 국내에서는 미개척지이자 탄소정보 공개프로젝트 참여 기업에게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또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하이닉스 반도체가 이달부터 CDP공급망을 가동하기로 했다. CDP공급망은 자사에게 물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에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기회를 인식하고 CDP질문지에 답하도록 하는 것이다. 구매업체뿐 아니라 공급업체들도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공급업체들이 여러 기관에서 복수 설문을 받아 시간적·행정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2007년 미국 월마트가 자신의 공급업체들과 제품 생산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하는 CDP공급망을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2월부터 기업들이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등에 대한 공시를 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필수적이기보다 자발적 공시의 범위가 넓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도 장기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고 정부도 자발적으로 기업을 유도하지만 기업 반발이 만만치 않다.

양 부위원장은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한국이 두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기업의 탄소정보공개는 필연적"이라고 참여를 독려했다.

한편 런던 CDP위원회 본부는 지난해 물 정보 공개프로젝트(WDP)를 공식 출범했다. 물 정보 공개프로젝트란 물 사용량 및 절약방안 등 물 사용을 최적화하고 물 관련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도체, IT기업을 포함해 전 세계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CDP한국위원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 포스코, 한전이 포함될 것"이라며 "그나마 WDP는 이미 기업마다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어 CDP보다는 쉽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선애 기자 moosim@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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