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황금알 낳던 LPG충전소 '어제와 오늘'
충전소 급증·LPG차 증가율 둔화로 경영 악화
직원 근무여건도 열악…충전업 현실 축소판

[이투뉴스] 국내 LPG(액화석유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LPG차 운전자들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있다. 지난해 가을 리터당 900원대였던 차량용 부탄 가격은 최근 1080원대까지 올랐다.

주름살이 느는 건 운전자뿐만이 아니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충전업자들이 늘면서 문을 닫는 충전소도 속출하고 있다. 한때 황금기를 구가하며 '충전사업 불패' 신화를 누렸던 LPG충전소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달 24일 서울 대치동의 한 LPG(액화석유가스) 충전소를 찾았다. 실제 충전소 영업환경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위해서다. 기왕이면 일일 충전원으로 직접 뛰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 싸늘했던 탓이다.

관계자들은 법정교육을 이수해 충전원의 자격을 갖춰야 할 뿐 아니라 충전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질 경우 충전소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우려에서 기자가 직접 일하는 것을 꺼렸다. 바쁜 영업시간에 방해가 된다는 것도 이유였다.

특히나 성격 까칠한 택시 운전자와 충전원과의 마찰이 잦은 탓에 취재협조가 어렵다며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과민반응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실제 현장을 둘러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 서울 대치동의 한 lpg충전소. 충전 중인 차량 외에도 휴식을 위해 주차 중인 차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여곡절 끝에 충전소에 들어서니 충전 중이거나 충전소 한 쪽에 가득 늘어선 택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휴게실과 차 옆 곳곳에서 담배를 태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택시 운전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휴게실에서 TV를 시청하던 한 운전기사는 "식사시간에 이곳에 머무는 운전자들이 많다. 여기서 수서역 부근에 가면 개인택시복지조합에서 만든 충전소가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택시기사들도 훨씬 많다"고 귀띔했다.

"액법(액화석유가스의 안전관리 및 사업법)에는 충전소 내 충전차량 외에는 주차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개인택시 운전자들이 정차하고 쉴 만한 곳이 없어 저렇게 충전소에서 쉬었다 가곤 한다." 이곳 충전소에서 근무하는 윤일상(가명·41) 과장이 쉬고 있는 운전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충전소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자 윤 과장은 충전소 운영에 대한 고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LPG차 종류도 많고 가격도 싸 충전소가 잘 나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릴 정도였다. 지금은 '초상집'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전만 해도 지역 홍보책자 등에 충전소 위치를 소개하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충전소가 돈이 된다 해서 뛰어드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포화상태가 됐다. 예전엔 강남지역 전체에 충전소가 3곳가량 있었는데 지금은 4km내 5군데나 된다. 판매물량이 많이 줄었다."

▲ 점심시간 이후 충전소 안은 늘어선 택시들로 혼잡하다.

윤 과장의 말처럼 LPG 충전사업은 한때 각광을 받던 사업 아이템 가운데 하나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신규 허가를 받은 충전소가 전국적으로 크게 늘었음에도 LPG 차량의 증가율은 여기에 미치지 못해 충전소 영업환경은 날로 악화됐다.

한국LP가스공업협회 통계자료에 의하면 충전소당 평균 판매량은 1999년 5175톤을 정점으로 매년 하락을 거듭, 2009년 기준 2539톤까지 하락해 1999년 대비 51% 감소했다. 연간 판매량이 1000톤에도 미치지 못하는 충전소가 3곳 가운데 1곳이다.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충전소는 1800여개로 2000년 600여개 대비 10년만에 3배로 늘었다. 하지만 LPG차는 2000년 약 121만대에서 지난해 8월 약 245만대로 2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판매된 LPG차가 약 110만대로 폐차시기가 가까워 LPG차의 순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1993년까지 운전자들이 가스차를 가장 많이 뽑았다. 그때 레조, 카스타, 카니발 등 LPG 차종이 쏟아져 나왔다. 10년 전에 구입한 차들의 폐차 시기가 도래하고 규제완화로 충전소가 마구 생기면서 어려워진 거다."

LPG 가격이 오르면서 CNG(압축천연가스) 차량으로 개조하는 운전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 클린디젤이 이슈화되면서 경유차량으로 차종변경을 고려하는 이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업자들도 많다. 이곳 충전소도 그 중 하나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LPG 장사만 할 수는 없다. 전기차가 곧 대세가 될 텐데 전기충전소는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지, CNG 충전소는 얼마나 시장성이 있을지 등을 따져보며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

사무실 밖에서는 오고가는 차들로 인해 분주한 충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충전소 운영의 애로는 경영상의 어려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일하는 충전원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이곳에서 일하는 충전원은 모두 15명. 3교대로 근무하고 있는 이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충전원의 평균나이도 갈수록 고령화하고 있는 추세다.

충전소 운영을 위해서는 충전원과 안전관리자를 필수로 둬야 한다. 규모가 작은 충전소일수록 근무인원이 적다. 주간 1명, 야간 1명의 충전원과 안전관리자 1명만으로, 심지어 2교대로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러한데 급여나 복리후생의 열악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충전원들의 고충은 다른곳에도 있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급여도 어느 정도인지 알고 들어왔으니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인간 대접을 못 받는 게 무엇보다 힘들다. 내 아들보다도 어린 것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듣곤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하지만 여기선 그런 게 안 통한다."

이곳에서 충전원으로 일하고 있는 황모(52)씨는 "살면서 갖가지 일을 다해봤지만 이곳만큼 별천지는 없었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 예민한 운전자들과 늘상 마찰을 겪어야 하는 충전원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걸로 시비가 붙는다. 예를 들면 충전기는 정액제 적용 여부에 따라 두 종류로 세팅이 된다. 정액제 안 되는 기기에서 충전하고서 정액 요금대로 안 했다고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성격들은 왜 그리 급한지 충전노즐을 꽂은 채로 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황씨의 설명에 의하면 택시운전자의 경우 장시간 좁은 운전석에서 일하다보니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한 경우가 많다. 일반인 또한 LPG차를 탈 정도면 차량이나 연료가격, 연비 등을 따져본 이력이 있는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빈말이라도 듣기 좋게 '추운데 고생이 많다, 고맙다' 이런 말 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가끔 찐빵을 주고 가는 친절한 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하루가 다 기분이 좋다. 반면 반말은 예사고 나이 어린 사람들이 욕하고 휙 가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회의가 느껴진다."

점심시간을 전후로 충전소를 가득 메웠던 택시는 어느새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간간이 들어오는 차량들만이 한적해진 충전소를 채우고 비웠다.

김광균 기자 kk9640@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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