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 여론에 떠밀려 월성·고리 1호기 논의 실기
어떤 결론 내리던 안전·기회비용 논란 거셀 듯

▲ 고리원전 1~4호기(왼쪽 돔부터)<위>와 월성원전 1~4호기<아래> 전경. ⓒ한수원

[이투뉴스] 패색이 짙다. 일찍이 지역사회는 등을 돌렸고, 국민적 반감은 확산일로다. 반핵으로 노선을 정한 야당 측은 이런 흐름이 사그라들까 군불을 때고 있다. 찬핵과 반핵, 안전과 위험, 경제와 환경 등으로 양분된 여론의 간극은 멀기만 하다. 폐로 아니면 수명연장(계속운전) 사이의 생사기로에 선 두 원전, 월성1호기와 고리1호기 얘기다.

사람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듯 원전 폐로는 기정사실이다. 전 세계 가동원전 435기중 이미 149기의 폐로가 결정됐다. 하지만 운영허가가 종료된 모든 원전이 해체 수순을 밟는 것은 아니다. 150기는 수명연장을 승인받아 여전히 가동되고 있고, 이중 40년을 넘긴 원전도 48기에 달한다. 전 세계 원전의 평균 가동년수는 28년이며, 미국의 경우 34년이나 된다.

반면 국내 원전 23기의 평균 가동년수는 18년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이중 현재 규제기관으로부터 계속운전 심사를 받고 있는 월성1호기가 1982년부터 가동돼 2012년말까지 30년을 채웠고, 2007년 한 차례 10년간 연장허가를 받은 고리1호기가 37년째 가동되고 있다. 계속운전은 원자력안전법상 수명만료 최소 2년전에 신청서를 내야 하므로 고리1호기 역시 내년 6월까지 결론을 내야한다.

일각에서 원전당국이 국내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수천쪽에 달하는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려면 아무리 시간을 단축해도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나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부 결정이 내려지면,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사기한인 18개월을 다 채워가며 수명연장 심사를 받고 있는 월성1호기도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월성 1호기는 캐나다원자로공사가 만든 원자로를 탑재한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쓰다보니 같은 용량의 경수로 대비 사용후핵연료가 5~7배나 나온다. 고준위 방폐장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 중수로 원전이 배출하는 다량의 핵폐기물은 부담스런 존재다.

정책 당국의 핵심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중수로 원전은 전력생산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싼데다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나와 개인적으로도 계속운전은 반대"라면서 "정부가 대놓고 밀어부치지 않는 상황에 한수원이 전면에서 10년을 더 돌리겠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쟁점은 폐로 시점을 언제로 잡을까 하느냐다. 한쪽에선 멀쩡하니 더 쓰자고 하고, 다른쪽에선 위험하니 당장 닫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어떤 결론을 내던 그에 따른 기회비용은 국민 몫이다. 원전당국의 말대로 더 쓸 수 있는 원전이라면 아까운 국민재산을 조기에 폐기하는 꼴이고, 시민단체 주장대로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설비라면 그 위험부담을 국민이 져야한다.

그렇다면 수명연장 논의 대상인 이들 원전의 상태는 어떠한가. 원자력안전위원회 판단에 근거해 정부가 결정할 문제지만 일단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기당 수천억원을 들여 주요 노후설비를 교체한 것이 사실이다. 월성1호기는 수년전 압력관과 제어용전산기, 원자로 계측기 등을 바꿨고, 수소제어설비 등의 안전계통 설비를 보강 설치했다.

또 고리1호기의 경우 두뇌에 해당하는 기존 주제어반과 원자로 헤드, 증기발생기, 비상디젤발전기를 들어내고 새 설비를 앉혔다. 심장에 해당하는 원자로의 노후화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주장도 있으나 건전성 문제로 가압경수로형 원자로를 교체한 사례는 없다는 게 원전당국의 설명이다.

물론 설계수명 만료 이전에 주요설비를 미리 교체한 뒤 계속운전을 신청하는 기존 행태는 논란거리다. 캐나다는 국민 수용성을 먼저 따져보고 교체나 수명연장을 결정하고, 스페인은 주기적안전성평가 결과에 따라 5~10년 단위로 연장운전을 승인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비용이 얼마가 들던지 문제가 될 설비를 미리 교체해 연장허가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논외로 치더라도 포퓰리즘에 편승한 최근 수명연장 논의는 국익에 부합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주장도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자력을 잘 몰라서 두려운 사람들이 원자력을 잘 알아 안전하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모르는 사람들 위주의 결정이 내려지도록 유도하는 현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과학적으로봐도 수명연장 대상 국내 원전과 똑같은 원전들이 전 세계적으로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걸 하지말자는 것은 더 쓸 수 있는 국민의 재산을 폐기하는 안타까운 일"이라며 "특히 원전 설계수명은 회계처리상 규정으로 결정된 것이지 기술적인 원전 노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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