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취임 후 첫 본지 인터뷰서 지속가능 전력체계 구축 강조
"전력거래소 역할, 에너지전환 시대에 더 중요해지고 커질 것"

조영탁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
조영탁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

[이투뉴스] 조영탁 전력거래소 이사장<사진>은 “에너지전환은 각종 계획의 수치가 바뀐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계통이 변해야 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시장·계통이 바뀌지 않은 수치는 종이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장은 14일 오후 서울 양재동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 등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전력체계를 구축하되 특정 가치편향은 지양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에너지전환 정책의 성공요건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그러면서 “에너지전환은 전력산업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 변화와 병행해 갈 수밖에 없다. 결국은 국민합의나 수용성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면서 합의해 가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전력거래소 새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가 4개월여 만인 이날 처음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전 부서에 걸친 조직 재편 작업과 주요 보직인사까지 마무리 한 뒤다.

경제학자로 전력정책 수립에 관여하던 시절 그는 각종 쟁점에 대해 무던히 진영논리를 배격했었다. 줄곧 통합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접근과 해법을 강조했다. 권부(權府)나 자본, 특정기득권 등이 선호하는 학풍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현 정부 공공기관장으로의 변신이 시선을 끌었다.

전력거래소는 실시간 전력수급과 계통운영을 담당하면서 전력시장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공공기관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주요 전력정책 수립 시 정부와 보조를 맞춰 실무작업을 수행한다. 2000년 도매 전력시장 경쟁도입과 함께 태동해 올해 설립 17주년을 맞았다.

이와 관련 조 이사장은 전력거래소의 시대적 사명을 ‘명실상부한 에너지전환의 최고 실무지원기관’으로 규정했다. 과도기적 전력산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실정에 정책지원, 시장운영, 계통운영 기능 등을 모두 보유한 거래소가 이들 세 측면을 통합적으로 보면서 에너지전환 정책의 성공을 실무적으로 충실히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정책계획을 어떻게 수립할지, 시장과 계통을 어떻게 연관 운영할지 등의 조화가 굉장히 중요해졌다”면서 “전력거래소의 역할은 이전에도 중요했지만, 에너지전환 시대에 더 커졌다. 우리만 나선다고 될일은 아니지만, 전력거래소 없이도 (에너지전환이)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계통, 시장, 정책계획(전원) 등 기관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격변하고 있다고 주지했다. 계통 측면에선 중앙집중식 대형발전기가 줄어드는 대신 저탄소 전원인 가스발전이나 간헐전원인 재생에너지가 늘고 있고, 시장 측면에선 기존 시장의 비용정산 정상화 등 개선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진단했다.

또 계획 부문에선 기존 수급계획의 패러다임과 수립패턴 자체를 바꿔 수요자원(DR)이나 소규모 전력거래 등의 신(新)자원을 수용하고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계획에 녹여내야 하는 난제에 봉착해 있다고 봤다. 조 이사장은 “이들 세 가지를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에너지전환에 있어 최고 실무지원기관이 되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조영탁 이사장
조영탁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

시의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분야로는 주저 없이 전력시장을 꼽았다. 조 이사장은 “시장, 계통, 계획 모두 중요하지만 시장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에너지전환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에너지시장과 보조서비스시장을 정상화하고, 분리돼 있는 시장과 계통을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현 전력시장은 하루전 입찰에서 가격을 결정하고 이후 계통운영을 통해 실제비용을 따로 정산한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재생에너지자원을 수용하고 DR이나 중개시장이 안착되려면 기존시장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 이사장은 “새로운 자원 수용과 기존 시장 정상화를 어떻게 매끄럽게 제도적으로 연계할 것인가가 제도개선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서 “계통 부문에선 이전에 경험해 보지 않은 재생에너지 간헐성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정책 부문에선 기본모형(WASP)을 벗어나 모든 걸 고려하는 방식의 계획수립을 각각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방대한 과제를 차질 없이 수행하려면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역량을 높이는 것은 물론 조직 위상제고도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전력체제를 한 단계 높이겠다는 정부라면 반드시 전력거래소 위상과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 저평가우량주에 투자하듯, 정부로서 전력산업을 한 단계 격상시키겠다면 전력거래소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투자”라고 역설했다.

당면 정책 현안에 대한 견해는 사견임을 전제로 에둘러 피력했지만 빗겨서진 않았다.

조 이사장은 에너지전환 과정의 비용이나 전기료 현실화에 대한 일련의 정부 반응과 관련, “정부가 부담을 갖고 조심스러워 하는 건 충분히 이해된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 때 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반길 정부가 있겠냐”고 반문하면서 “일단 정책 결정에 관한 거버넌스를 바꾸는 것부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개입해 요금을 결정하면 부담이 굉장히 크다. 사회적 합의구조를 만들 수 잇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한발 떨어져 있을 수 있고,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모여 고민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어렵더라도 그렇게 풀어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같은 맥락에서 전력시장 개선을 위한 단초도 거버넌스의 변화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조 이사장은 “결국은 거버넌스를 바꾸는 일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최근 해외 RE100(전력소비량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기업간 캠페인)이나 그린프라이싱(GreenPricing, 녹색선택요금제)처럼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넛지(Nudge)’ 제도를 고려할 수 있다”면서 “위로부터는 거버넌스 개선, 아래로부터는 그런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여러 정책 애로를 돌파해 나가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 이해관계자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환경급전 이행 방안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민하고 있다. 현재로선 그 이상 얘기하긴 곤란한 시점”이라고 선을 그었다.

조 이사장은 ‘환경급전이 선언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거론하자 “일단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일 것이냐에 대한 선행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이른바 현재 전력시장에서 (환경급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급전비용에 외부비용을 넣는 세제 조정과 물량적 접근인 물리적 제약이 수단으로 동원될 수 있을텐데,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보다 폭넓은 논의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 총량제약의 경우 구현 시 매우 디테일한 시장설계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형평성이나 이해관계에서 문제를 유발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작업이나 3차 에너지기본계획 등 쟁점에 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학자로서의 사견과 기관장으로서의 관점을 분리해 답변했다.

조 이사장은 “개인적으론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과정과 프로세스, 결과에 대해 불확실성과 일부 논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술검토반을 꾸려 짚고 있다니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전력거래소 입장에서 본다면 여전히 각계의 이견이 엇갈리는 만큼 좀더 격차가 좁혀지도록 최대한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취임 직후부터 최근까지 조 이사장은 시장과 계통간의 역할 분담 재정립, 전력수급계획의 전환기 성격 추가와 통합적 정책지원체계 구축, 국민경제와 이해관계자를 위한 사회적 가치 구현과 조직 위상제고 등에 주안점을 두고 업무분장을 대폭 조정하는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의 3개 본부가 기능적으로 구분된 횡적 조직이라면, 개편 뒤 직제는 단기운영과 중장기 개발로 구분된 종적 조직이다. 이 과정에 시장, 계통, 운영관련 다수 부서가 혼류됐다. “조직 형태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시장과 계통간의 종적 역할분담과 횡적 기능연계를 위한 조치”란 게 청사진을 도안한 그의 설명이다.

이 또한 “정부가 추구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체계를 갖추기 위한 작업”이라고도 했다.

조 이사장은 인사제도나 조직문화는 ‘아직 지켜보는 단계’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앞으로 전력거래소는 시장과 계통 양쪽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대우를 받고, 과도하면 안되겠지만 기피부서 인력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경직적인 위계서열 문화를 완화하되 무조건 효율만 중시할 순 없으므로 양자의 균형을 찾자보자는 큰 방향성은 제시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노사화합에 대해선 “의견대립은 있어도 불신반목은 없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최근 어려운 점이 많았으나 노조의 희생과 양보로 어려움을 푸는데 큰 도움이 됐다. 노조와 경영진간 신뢰 구축의 계기가 됐다”며 사의를 표했다.

그는 “직접 내부자가 되어보니 직원들이 각 분야의 전문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더라. 정책 영향을 받아 부서간 협업이 부족하고 상호 분리 운영돼 온 아쉬움이 있어 조직 개편 시 그점을 감안했다”면서 “최근 5년간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입사해 조직이 상당히 젊고 열정과 패기가 있다. 이들 인력과 최근 신입직원을 어떻게 육성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5~10년뒤 전력거래소 위상이 좌우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에너지전환과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면서 조금씩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전력체제도 기술경제학에서 일컫는 사회기술적체제여서 기술이 바뀌면 그에 부응하는 시장제도와 사회제도, 법률이 모두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전력거래소의 위상과 역할 제고는 이미 우리앞에 다가와 있는 미래”라며 “그렇다고 손놓고 있어선 안된다.각종 제약이 많지만 우리 스스로 숨 쉴 공간을 찾아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거래소 위상을 한 단계 높이고, 그 과정에 직원들과 소통을 많이 한 이사장으로 3년뒤 기억되고 싶다. 원대한 목표지만 최대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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