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작년 7월에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상징적인 용어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했다. 한전의 심각한 적자와 차입금으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을 논의한 지난달 당정회의에서는 한전에 14조원의 구조조정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였다. 정치권과 정부는 책임을 한전에 떠안기면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의 비난을 피해 가는 것 같다.
언젠가 한번 본 것 같은 낯익은 장면이다. 10년 전 모습이 데자뷔(deja-vu)처럼 그대로 떠오른다. 2013년 11월 14일 현오석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전, LH공사 등 12개 주요 공기업 수장들을 아침에 소집해서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질타하고 부채문제와 도덕적 해이에 대해 강도 높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전력산업의 위기는 그저 우연히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우리 전력산업에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10년 전 이야기부터 하자. 2004년 이후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BRICs의 경제성장으로 국제유가는 급등하였다. 그러나 2011년까지 우리나라에는 전국적 선거가 일곱 번 있었다. 잦은 선거로 전기요금은 거의 오르지 못했다.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뛰는데 전기요금은 그대로여서 전력의 대체수요가 급증했다. 학교마다 건물마다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했고 음식점은 전기온돌을 비치하였다. 전기요금이 안 오르니 공급은 제자리였다. 전기가 모자라 2011년 9월15일 드디어 수도권 순환정전이 터졌다. 그 이후 2013년까지 전국적 절전규제가 시행되었다. 발전설비를 풀가동하는 바람에 원전 및 석탄발전설비의 고장과 가동중단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10년 전 위기는 2009년의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로 침체된 경기 때문에 서민을 보호하는 ‘서민경제’를 펼쳤고 전기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을 동결했다. 때마침 세종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건설을 담당했던 LH공사와 함께 한전은 기록적인 부채를 기록하였다. 2008년 말 290조원이었던 공기업 부채는 2012년 말에 493조원으로 200조원 넘게 증가했다. 한전은 전기요금 억제로 2012년 말 95조원을 넘는 부채규모를 보이게 되었다. 정권이 바뀐 2013년 기획재정부는 요금규제, 금융위기와 정부사업으로 부채가 누적된 공공기관의 군기를 잡기 시작하였고 사업조정, 자산매각, 원가절감 등 자구노력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4년 한전은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삼성동 본사 부지를 매각하기 위하여 내어 놓게 된다. 이는 결국 현대자동차에 10조5000억원의 가격으로 팔렸으나 세간에서는 그 가치가 배 이상 뛰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 7월 새로운 정부가 공기업의 군기를 잡으면서 다시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요금규제로 적자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에게 당정은 14조원의 구조조정 노력을 요구하였다. 10년 전의 장면이 주는 학습효과에 따르면 이제 한전은 삼성동 본사 부지처럼 값나가는 자산을 내어놓을 것이다. 전기요금은 미미하게 오르겠지만 내년의 총선을 대비하여 당정은 3분기부터 전기요금을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 쌓이는 부채와 적자는 자산을 처분하여 일부 해결하고 당정은 다시 시간을 벌 것이다. 10년 전 95조원이었던 한전 부채는 이제 193조원으로 100조원 가깝게 증가했다. 

요금 정상화 없이 버텨온 정부가 중심을 잡고 전력산업의 수지를 맞출 가능성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다. 독립규제기관같이 정치 바람을 차단하고 요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선진국형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채 우리 정부는 1960년대 이래 공공요금 규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우리 전력산업의 위기는 점점 더 그 위험의 진폭을 키우고 있다. 해외의 에너지 위기가 몰아닥칠 때 국민과 함께 전력산업에 적절한 자원을 투입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공기업의 군기를 잡아 전력산업의 소중한 자산을 팔아먹으며 빚잔치를 할 요량이면 차라리 전력산업을 민영화하여 전력산업의 미래를 보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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