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이투뉴스 칼럼 / 최원형]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자정을 넘기고도 잠들지 못했던 사연을 들었다. 개구리 소리를 듣느라 그만 잠 때를 놓쳤다는 거다. 지인이 사는 아파트에 작은 분수대가 있는데 방치하다시피 한 그곳에 장맛비가 연일 내리면서 물이 제법 고였고 그곳으로 개구리들이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개구리 소리를 듣게 될 줄 몰랐다며 비 오는 밤 개구리 소리에 귀가 열리니 반갑고 기뻤다고 했다. 귀가 열리니 생명을 향한 마음 또한 활짝 열려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단다. 그 얘길 들은 어떤 이는 그깟 개구리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잠을 자는 게 건강에 이롭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자기네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아파트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개구리들이 몰려와 밤새 우니까 입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그 연못을 흙으로 덮어버렸다는 거다. 개구리가 아직 있는 연못을 매립했는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상상조차 끔찍했다.

도시를 채우는 소리 대부분은 귀에 거슬린다. 자동차든 에어컨 실외기든 심지어 위층 발소리든. 그래서 생긴 말이 소음공해다. 콘크리트 숲으로 난 길에 가득한 자동차 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다 삼켜버리니 개구리 소리든 새 소리든 사람들 귀에 가 닿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맞닥뜨리는 자연의 소리에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다. 인공의 소리와 같은 취급을 하며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소리의 진원지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보다 먼저 제거해버리려는 혐오가 꿈틀대니 연못을 메워버린 게 아닐까 싶다.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우리 아파트 바로 옆이 숲이다. 아니 아파트 옆이 숲인 게 아니라 숲 일부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었을 것이다. 8년 전에 이사를 왔는데 5월 초순이었다. 늦은 시각까지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늦게 잠들었는데도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무척 피곤한 상태였던 터라 잠을 더 청할 생각이었는데 열어둔 창 너머로 어마어마한 새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 새벽 새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잠을 설쳤다는 피곤함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멋진 합창에 황홀했다. 그날 이후로 내 귀는 창밖 숲을 향해 열려있다. 추워서 창을 꼭꼭 닫는 계절을 제외하고 새벽 알람이 새소리일 때가 많다. 낮이 점점 길어질 때면 새벽에 눈이 떠져서는 첫 새소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올해 6월 어느 날 되지빠귀가 새벽 4시 47분에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숲의 명가수라 불리는 되지빠귀의 고운 소리로 하루를 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새란 존재를 발견하면서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베란다 바깥에 모이대를 설치하고 추운 겨울이면 새들에게 에너지가 될 양식을, 가뭄으로 물이 부족할 때면 물그릇에 물을 채우며 소박한 나눔을 하고 있다. 밤새도록 비바람이 숲을 거칠게 몰아칠 때면 가는 두 다리로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숨죽이고 있을 새들이 염려스럽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찾아오는 새들을 위해 모이대에 모이를 가득 채우곤 한다. 그리고 작년,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둘이 찾아왔다. 인터폰 너머로 하는 말인즉 어떤 주민이 새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한다며 모이대를 치워달라는 거였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도 숲에서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숲에서 새소리가 저렇게 들리는데 우리 집 모이대를 치운다고 새 소리가 사라지겠냐니 그래도 시끄럽다는 민원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며 모이대를 치워줬으면 했다. 퍼뜩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저 숲에서 들리는 새 소리를 다 없애주면 모이대도 치우겠’다고 했다. 숲 가까이에서 살면 당연히 들리는 게 새소리인데 그걸 소음으로 듣다니 놀라웠다. 그런데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다고 연못을 없앴다는 얘기를 들으니 모이대를 없애달라는 요청은 애교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애벌레가 많아지는 계절과 새가 새끼 새를 기르는 시기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겹친다. 만약 새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봄에 돋아나는 어린잎을 애벌레들이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면 숲은 존재할 수 있을까? 생물과 무생물로 채워진 지구가 우리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다. 비행기의 수많은 부품을 조이는 리벳이 몇 개 떨어져 나가도 비행기의 운항은 가능하지만 사라지는 리벳의 숫자가 많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 비행기 운항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수많은 생물은 지구의 리벳과 같은 존재다.

범고래 무리가 지브롤터 해협에서 사람이나 범선을 공격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고래과학자들은 몇 가지로 가설을 세우고 범고래의 행동을 연구 중인데 그 가운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흡사한 가설이 있다. 지브롤터 해협을 오가는 선박이 많아 지속적으로 소음이 발생하고 이것이 범고래에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다. 1년이면 적어도 상업용 화물선 9000여 척이 세계의 바다를 오간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선 되지빠귀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가장 늦게 지구의 구성원으로 합류한 우리가 기계음으로 지구를 가득 채우면서도 자연의 가냘픈 소리조차 용납하지 못하겠다니 오만함이 지나치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느라 자연의 소리를 잊었다면 이제 그 소리에 귀를 열 때가 아닐까?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삶의 출발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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