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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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뉴스 칼럼 / 권효재] 교육은 백년대계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를 하나 심으면 10년 후에 과실을 수확하듯 100년 후를 내다보고 교육에 힘을 쏟으라는 격언입니다.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조류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교육으로 성공하려면 긴 호흡으로 준비하고 꾸준히 노력하며 흔들리지 않는 지향점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걸어가야 수십년 후 결실을 얻을 수 있기에 100년을 생각하라는 선조의 지혜입니다.

교육에만 백년대계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성공적인 에너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도 명료한 지향점, 탄탄한 준비,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백년대계는 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국제 에너지 시황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 했습니다. 특정 기술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을 때는 정부, 기업, 연구소, 언론이 앞다투어 칭송하고 자원을 투자한다고 했다가, 끈기있게 시행착오를 감수해야 하는 그 다음 단계에서는 지원이 축소되고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쏟아 부어 어느 정도 산업 규모를 만든 경우에도, 제도와 규정의 정비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자립할 만한 시장 규모가 만들어지지 못해 고전하는 분야도 많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향후 100년 혹은 2100년까지를 생각할 때 어떤 에너지 백년대계가 필요하고,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에너지 정책의 3대 목표는 안정적인 공급, 적절한 가격, 환경 보호입니다. 기후 위기 대응의 프레임으로 보면 ‘누구나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탈탄소 에너지의 자급자족’ 정도가 됩니다. 탈화석연료의 실행 경로나 방법론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진행중이지만, 100년을 내다보면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탈탄소 에너지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원전은 더욱 안전하고 투명한 운영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폐기물 영구 처리 및 폐연료 재활용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20여기 원전의 폐기물도 임시 저장하는 상황에서 원전을 더 짓는 것은 하수처리장도 없이 도시를 짓자는 것과 같습니다. 영구 방폐장의 해외 사례를 보면 지질조사, 후보지 선정, 공사와 준공까지 30년 이상이 소요되었습니다.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고, 후속 행정 조치가 정권 교체나 국회 의석의 변동에 무관하게 진행되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공장과 기기들이 전기로 작동되며, 그 전기의 절반 이상은 재생에너지를 통해 공급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행 전력 계통은 소수의 대형 화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공급해서 다수의 사용자가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100년도 넘은 교류 기반 중앙통제형 전력계통을 기반으로 제도, 법규, 시행령, 금융이 작동되므로, 재생에너지만의 특징과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기의 생산, 송배전, 사용이 물리·지리적으로 분리되는 화석연료 기반 시스템과 달리 재생에너지는 광범위하게 분산 배치해서 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규 분산 전력 시스템은 화석 연료의 수입이 불필요하므로 에너지의 자급자족에 유리하며, 분산되어 있으므로 각종 재해나 비상 사태 시 탄력회복성의 측면에서 우수합니다. 향후 10~20년 정도는 기존 전력 시스템과 신규 시스템이 병존해야 하므로 운영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 이후에는 안정성, 경제성, 환경 보호 측면에서 탁월한 장점을 가집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생에너지의 보급과 기술 개량을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고출력, 대용량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들도 있으므로 재생에너지만으로 필요를 다 충족할 수 없고, 원자력 발전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들이 공정한 기준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서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전국 수백만 곳에서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정부와 소수의 공기업이 효과적으로 관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 공급을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듯이 에너지 시장 역시 가격 신호를 통해 작동되도록 해야 합니다. 실시간으로 전기의 가격이 고지되고, 소비자들이 전력을 생산하거나 사용하거나 저장하거나 되팔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기술을 준비해야 합니다.

에너지 분야에 광범위한 시장과 가격 구조의 도입이 민간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우려가 있고, 가격 인상이나 공급 차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부 부작용이나 시행 착오가 있을 수 있으나, 길게 보면 시장화 없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전기화에 대비해서 파편화되어 있는 재생에너지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ESS를 개발·보급하고, 화석 연료 보조금에 일몰제를 적용하며, 에너지 시장 안에서 모든 에너지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큰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지만 치밀하게 계획하고 끈기있게 실행해 나간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백년대계라는 말이 필요 없었겠지요. 대한민국 자체가 교육에 대한 집중 투자로 성공한, 산 사례입니다. 6.25 이후 모두들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소팔고 논팔아서 자식들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부모님들의 노력들이 쌓여 지금의 번영을 만들었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제를 위해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에너지 백년 대계를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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