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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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발전소 분쟁과 계약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시구(詩句)다. 변호사 생활을 하며 위 문구를 조금 바꿔 말하고 다닌다. “계약서 함부로 서명하지 마라. 너는 계약서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보는 사람이었느냐.” 

분쟁이란 보통 (1) 당사자간 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혹은 (2) 썼는데 제대로 쓰거나/읽지 않아 생긴다. 최근 태양광발전소 관련 크고 작은 분쟁이 많다. 운전 후 시간이 지나며 모듈이나 설치 하자가 문제되는 사례는 흔하다. 그 외에도 계약 해석상 대금 지급시기가 언제인지 여부, 행정서류 작성 후 착공 전 공사가 사실상 무산됐는데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여부 등 실무상 다양한 쟁점이 문제된다. 영세 규모 발전소가 늘어나면서, 개별 계약의 해석에 관한 의견차이로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EPC를 수행한 시공사가 시공 당시 대부분을 하청업체에 하도급/재하도급 주고, 막상 하자보수를 청구하면 하도급사가 없어져서 보수가 어렵다고 하거나, 알고 보니 ‘모듈 바꿔치기’로 판명되거나, 혹은 생산되지 않는 부품이라 보수가 불가능하다고 하거나, 심지어는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발전소, 시공사, 관련 업체 등 이해당사자들이 워낙 다양한 반면, 최근 생기거나 규모가 영세한 곳도 많다 보니 생기는 문제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정을 들어보면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 의뢰인은 한평생 지방에서 농사만 지으시던 농민이다. 서울에서 온 영업사원의 설명(‘농업시설 지붕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면 전력대금이 들어오니 노후 걱정이 없다, 손해보지 않게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만 믿고 깨알 같은 글씨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여러 문제로 수 년 간 삽 하나 뜨지 못하고 돈만 준 채로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갑자기 나머지 계약금과 중도금을 달라는 소장이 날아 왔다고 한다. 계약서 중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진 독소조항들이 문제가 되었다. 모듈 하나 받은 것이 없는데, 시공업체에서는 의뢰인이 평생 모아 장만한 집에 경매신청까지 했다.

“어쨌거나 본인이 읽고 사인하신 거 아니냐.” 이런 사례에서 의뢰인이 판사나 수사기관에게 많이 듣게 되는 슬픈 말이다. 영세 발전사업자의 경우 법률지식이 취약하다 보니, ‘그냥 사인하시면 된다’는 말만 믿고 계약내용을 잘 모른 채 사인하신 것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법원 등 사법부나 수사기관에서는 발전업계 실무를 잘 모르다 보니, 오로지 계약서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사법부나 수사기관을 대면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 부당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어떤 문서에 본인이 사인하는 순간, 법조계의 관점에서는 ‘그 내용을 본인이 이해하고 확인한 후 약속했다’라는 표시로 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어떤 문서에 서명하기 전에 간단한 무료 법률상담이라도 받아 보는 것이다(이는 사실 발전업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의 모든 문서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적어도 (1) 대금지급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시기 및 발생요건), (2) 계약을 중도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임의로 종료할 수 있는지 (3) 임의해지 등 계약이 종료되거나 중단되는 경우 어떤 페널티(손해배상 의무 등)가 발생하는지, (4) 계약 완료 후 하자보수 약정기한은 몇 년인지, (5)시공 및 설치방법에 따른 최저발전량의 보증 여부 및 그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반드시 체크해 보는 것을 권고한다. 

장기적으로는 정부 또는 규제기관에서 태양광 설비 시공계약에 대한 표준약관 등의 사용을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현재 한국에너지공단 등에서 태양광 설비공사 도급계약서 및 체크리스트 등을 배포하고 있다. 다만 실무에서는 상대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표준계약 등을 좀 더 널리 홍보하고, 추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급인(발주자) 입장에서는 시공 후 최저발전량 미달시의 구체적 분쟁해결 기준이, 수급인(시공사) 입장에서는 대금 미지급이나 원자재 가격 변동시의 계약금액 조정에 대한 구체적 기준 등이 보다 상세하게 보완되면 더욱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계약이 당사자 간 사적자치의 영역이기는 하나, 막상 계약 자문을 의뢰받아 보면 당사자들 모두 실제 본인이 뭘 원하는지, 뭘 모르는지 자체를 몰라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본다. 이 때문에 결국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그 때 가서야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며 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선도하고 조력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자, 공익적 차원에서도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는 방안이라고 본다. 향후 분산에너지 발전소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을 고려할 때, 분쟁 저감을 위하여 정부 및 규제기관의 적정한 지도와 가이드라인이 활성화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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