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우리나라 에너지요금은 정치도구화된 지 오래다. 가격이 소비에 아무런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자립률이 5%도 안되는 나라가 그렇다. 수입하는 에너지가격이 뛰면 비례해 요금을 올려야 과소비를 막고 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지금은 한전이나 가스공사를 완충재로 쓰면서 가격의 순기능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시장으로 넘어간 건 권력이 아니라 정보다. 정부가 비대칭 정보로 시장을 좌지우지하려 들수록 역선택이 커지고 있다. 겉으론 진화를 거듭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외풍에도 여과 없이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에너지안보나 안정적수급은커녕 RE100이나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도 무대책이다.

불똥은 가뜩이나 삶이 팍팍한 국민에게 튀고 있다. 에너지공기업 부채와 고리이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이다. 한전의 경우 매일 120억원 꼴로 이자를 물고 있다. 정부 편의대로 쓴 에너지공기업들은 호흡기능과 소화기능만 살아남은 식물인간 상태다. 그곳에는 정년이 보장된 수십만의 인력이 안쓰럽게 국민을 쳐다보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걸어간 길을 20년 넘게 외면한 대가는 혹독할 전망이다. 외부 강요에 의해 단시일내 산업구조를 바꿔야 하고, 허겁지겁 낡은 시장제도를 들어내야 할 처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생에너지를 늘려라, 원전을 더 지어라' 하명하는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꽤 큰 충격을 받고 밀린 숙제를 하게 될 거라 본다.

먼저 에너지전환에 나선 나라들의 공통된 조언은 에너지가격과 시장기능을 살리고, 시장의 칸막이를 허물라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최근 에너지 민영화란 용어가 다시 출몰하는 모양이다. 이 또한 에너지산업과 시장이 전근대적인 우리나라서만 통하는 선동이다.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가려들어야 한다. 선진국은 정부가 규제로 챙길 영역과 시장에 맡길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요금이 폭등했다거나 특정기업이 폭리를 취한다는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가야하는 에너지전환이나 탄소중립은 필연적으로 민영화가 필요하다. 여기서 민영화는 공기업자산이나 설비를 무턱대고 대기업이나 재벌, 해외기업에 팔아넘기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국민(民)이 재생에너지 확대의 주체가 돼 소유·운영(營)하는 비중을 높여야(化) 한다'는 의미의 '민영화(民營化)'이다. 시장제도가 낙후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4만명의 국민 태양광사업자가 원전보다 더 많은 발전설비를 소유·운영하고 있다. 참여하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이 앞당겨지고 에너지자급률은 높아진다. 새로운 일자리와 창의적인 신산업 창출은 덤이다.

에너지전환시대의 민영화를 재정의하고, 의도적인 선동을 분별할 때가 됐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민영화(民營化)는 빠를수록 좋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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