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교수의 '빗물 칼럼' (5)

[이투뉴스 칼럼 / 한무영]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빚을 갚지 못하는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베어내려고 한다. 판사 포샤는 가슴살은 베어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명판결을 내린다. 살과 피가 어우러져 몸을 이룬다는 것을 모르는 샤일록은 큰코를 다친다.

우리 국토는 살이고 거기에 있는 물은 피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겉에 보이는 국토의 기능과 경관만을 고려하고 그 속에 있는 물의 중요성은 무시해 왔다. 그 결과 전국 강 상류의 개천은 마르고 하천의 수질은 나빠졌다. 지하수위도 낮아져 지하수를 퍼올리기 위한 에너지의 비용이 더 필요하게 됐다.

가뭄 때 용수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 지하수는 공짜며 먼저 퍼서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문제다. 또 가뭄 때 퍼쓴 만큼 채우지 않고 물 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개발한 탓이다. 지금까지 '땅 따로, 물 따로'의 샤일록식 물관리를 해온 것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지표면 근처의 물에 민감하다. 지표가 마르면 근처에 살던 동식물은 살지 못한다.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개울이 마르고 개울에 살던 어류나 양서류 등은 모두 죽는다. 또 지하수를 마구 뽑아 쓰거나 땅바닥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하면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게 된다. 이 때문에 지하수위가 내려가고 지표가 말라 자연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심각성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면 일년간 내리는 모든 빗물(우리나라 평균 약 1300㎜)을 전부 땅의 틈새(공극률 50%)에 집어 넣어도 지하수위는 일년에 2.6m 정도밖에 안 올라간다. 현실적으로 현재 수십 미터가 낮아진 지하수위를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으로도 2~3세대가 지나야 회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물관리 정책은 근본적인 변환이 필요하다. 첫째, 공짜로 떨어지는 빗물을 그냥 버리지 말고 전 국토의 땅 속에 저장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논이나 연못에서 지하수로 충전시킨 양만큼을 돈으로 보상하는 것이다.

둘째, 지하수 사용료를 징수하거나 쓴 양만큼 다시 저장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도로나 택지 등을 개발하면 침투되는 빗물의 양이 그만큼 줄어들므로 이를 보충하는 비용을 원인 제공자에게 징수하는 것이다. 즉 개발 전후의 물의 상태를 같이 만들었던 선조들의 동(洞, 水+同) 개념을 다시 살리자는 것이다. 끝으로 연구와 시범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지형과 기후에 맞는 빗물 저장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땅 따로, 물 따로'식의 국토관리에도 포샤와 같은 명판사가 나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관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에 대한 혜택은 우리보다는 대부분 우리의 후손이나 하류의 동식물 등 생명체가 받을 것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금수강산을 잘 보전해 후손에게 넘겨주는 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우리 시대 사람들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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