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라이어'로 연기인생 정점…연출로 새 도전

 

[이투뉴스] 1999년 대학로에 상륙한 연극 <라이어>는 아직까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9년에는 1만회 공연을 돌파했고 지난해 9월에는 13주년을 맞아 1만5000회를 넘겼다.

권혁준(사진)은 2003년 처음 <라이어>에 합류해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 배를 탄 배우다. 매 시즌마다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연극계 특성상 그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그는 "대학로에 올라온 지 10년차에 <라이어>를 하게 됐다"며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을 몰랐다. 연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라이어>는 내게 연기를 새롭게 가르쳐줬다. 처음 연습을 하면서 많이 혼났다. 그리고 혼난 만큼 배웠다. 내 연기를 한꺼풀 벗겨준 작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라이어>는 그에게 연기 철학을 만들어줬다. 그는 "믿음, 존중, 배려가 내 연기 철학이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을 믿고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연기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스무살 때 준비했던 미대 입시에 낙방한 그는 연극을 위해 무작정 대학로에 입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연극 무대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그는 "당시에는 연기자와 스탭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연기는 부족했지만 그림을 그릴 줄 알았기 때문에 스태프 일도 도와주면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대학로로 올라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연기를 해야겠다는 극적인 계기는 따로 없었던 것 같다"며 "대신 한 작품 끝날 때마다 계기가 하나씩 쌓여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혈기 하나만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이지만 어느새 20년차 베테랑 연기자가 됐다. 대한민국 연극계에서, 그리고 대학로에서 20년 이상 연기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연기 인생 20년의 절반을 <라이어>와 함께 한 그는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내달 16일부터 예정된 <라이어> 부산 공연에서 연출에 도전한다. 10년 가량 <라이어>를 하면서 안 해본 배역이 없을 만큼 작품에 통달한 그가 연출이란 새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되는 것.

권혁준은 "사실 연출을 맡게 된 것은 내 개인적인 욕심이 크다. 연출에 관해 공부 하고 싶고, 연출을 통해 연기의 시야을 넓혀보고 싶어 대표에게 건의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제 첫 연출인 만큼 거창한 목표는 없다. 일단 연출이란 과제를 잘 수행해서 그간 <라이어>가 쌓아온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10년간 <라이어>를 공연하며 가장 인상깊던 순간을 지난해 대정전 사태로 꼽았다. 당시 대학로 소극장도 순식간에 어둠에  갇혔었다.

그는 "한참 관객들이 웃으며 즐거워 하고 있는데 정전이 되더니 비상등이 들어왔다"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비상등 4개 만이 무대를 비춰주는 데 막막했다. 불은 들어와 있으니 연기를 하긴 하는데 이정도 불빛으로 관객들이 우리 연기를 볼 수 있을까도 의문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정전이 15분 이상 지속됐다. 연기를 하는 내내 진땀이 났다. 결국 제작진이 내려와 사과하고 환불과 초대권을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어지간한 사고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베테랑인 그도 그날 저녁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그날 공연을 가장 인상깊던 순간으로 꼽은 이유는 그 이후다.

그는 "환불 조치를 해주고 있는 데 몇몇 관객 분들이 기다렸다가 정전 끝나고 공연을 재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리고 많은 관객이 정전이 끝나길 기다린 후 우리의 공연을 다시 즐겼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 생에 최고의 관객"이라고 그들을 추켜세웠다.

권혁준에게 올해는 여러모로 뜻 깊은 한 해다. 첫 연출 데뷔인 동시에 아버지가 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같은 연기자라 그런지 잘 이해해준다. 그래서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준형 기자 jjoon121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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