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재두

한국의 에너지안보 현실을 진단할 때 흔히 “위기의식이 없다”라거나 “국가안보차원에서의 정책 부재”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과거에 비해 자원정상외교도 활발해졌고 다양한 제도 개선과 정책 추진을 하는 분들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하기도 하고 불쾌하게 들릴 소지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양측 다 뭔가 일을 해보자고 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필자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역사적으로 침략은 많이 받았지만 전쟁준비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 대목은 현실적 능력도 없이 이상론적 구호가 난무하는 최근의 우리 풍토를 감안 할 때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전쟁 준비라는 말 대신 부국강병을 향한 국민적 합의와 노력이라고 하면 다소 침략적 뉘앙스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미국이나 주요 유럽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중국, 일본 등 우리 주변국가들은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에너지부족때문에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고 수많은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피눈물나는 경험을 체득했다. 그런 경험은 국민의식속에 깊이 각인되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이익이라는 명제를 바닥에 깔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 역사를 보면 19세기 말이 되어야 겨우 석유를 구경한 입장이었고 그 이후 오랜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시에는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형국이었다. 1970년대 오일 쇼크를 제외하고는 경제부흥기와 저유가시대가 중첩되는 행운도 따랐다. 그러다 보니 고유가시대가 지속된지 몇 년이 흐르도록 에너지정책과 안보정책이 융합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파병정책과 에너지안보정책이 다른 바퀴로 굴러가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사적 차원에서 우리는 동티모르와 이라크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모범적인 부대관리를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차원의 인내와 정책적 차원의 역동적 정책구사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판세를 읽는 능력과 시의적절한 대처방식도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확성과 신속성은 비용을 적게 들여도 할 수 있는 사람의 문제이지만 이 부분에서 뒤졌을 경우 치러야 할 시장 진입 비용은 엄청나게 크다. 중국이 에너지안보 분야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들을 자원의 “묻지마 투자 행태”로 치부해버린다면 본질을 호도하는, 책임회피성 변명에 불과하다. 최근 에너지동맹의 형성을 보면 군사협력과 에너지협력, 통상증진이 3개의 축으로 함께 굴러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안보정책이 국가안보차원이라는 레토릭을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국방분야는 배제된채 시장의 논리로 흘러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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