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이 동국대학교 교수

눈을 뜨니 바깥이 어수선한 느낌이다. 집사람이 분리수거 날이니 쓰레기를 내다버리라고 한다. 이젠 우리사회의 깊숙한 곳에 환경적 개념이 존재하고 시스템화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규정화하지 않고 경비아저씨들이 지켜서 있지 않으면 과연 얼마나 저 시스템이 기능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그렇게 썩 개운치 않은 것은 왜일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하는 지구적 화두로 인해 국제연합, 국가, 기업, 시민단체, 개인 모두가 환경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하지만 어딘가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최근 대부분의 환경관련 논의가 경제적 방법을 이용하여 해결하려 하고 있는 것 때문일까. 이러한 접근법은 환경문제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하는데 기인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환경용량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고 있는 환경하에서 계속되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언제 지구환경용량을 초과할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즉, 환경적 한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호수의 이야기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게 해준다.


“호수에 수초가 살고 있는데 이들의 수초를 일정부분 관리하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30일이 되는 날에 수초가 호수전체를 덮어 호수는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가정을 해보자. 즉, 수초로 인해 호수는 산소부족으로 호수의 모든 생물은 소멸한다는 가정이다. 그러면 이 호수의 반을 수초가 덮는 것은 며칠째인가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29일째가 될 것이다. 즉, 29일이 되도록 우리는 아직도 호수에는 반이나 되는 공간(환경용량)이 남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가 이 호수라고 가정하고 지구의 환경용량에 엔트로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을 모두 새롭게 구축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행히 우리 지구에는 사용하더라도 에너지 비가역성이 없어 엔트로피의 증가가 없는 재생가능한 좋은 에너지원이 존재하고 있다. 태양, 바람, 지열, 해수력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확대계획은 많으면 많을 수 록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너지계의 화두는 아직까지도 원유가격의 폭등이나 폭락이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설계의 완성을 빠른 시기에 그려내어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성의 설계라 함은 Harman Daly가 강조하듯이 생태적 지속가능성, 재생가능한 자원의 지속가능성,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하늘을 맑게 하고 땅을 살리고 물을 깨끗하게 하며 산업계로부터 배출되는 엔트로피, 즉 에너지의 비가역성을 제어하는 일은 위의 지속가능성 발전을 위한 설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핵이 태양열, 풍력, 해수력 등을 이용한 에너지계의 혁신인 것이다. 산업자원부에서 에너지 전문가 인력양성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인력양성의 핵은 신재생에너지에 있다는 것을 꼭 인식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의 숙제가 “미래과학의 발달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점이 무엇인가”였다. 난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의 비가역성이 없는 과학의 발달로 환경문제가 없어지고 자연생태군이 늘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던 기억이 난다. 빠른 시기에 꼭 이러한 미래가 그려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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