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공명심·대기업 무책임에 '韓 ESS 회생불능'
政 공명심·대기업 무책임에 '韓 ESS 회생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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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복 기자
  • 승인 2019.04.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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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시험 중 새 유형 화재원인 추가…국표원 "발표시기 미정"
일부 배터리기업은 비공식 제품 교체 후 각서 요구하다 물의
▲화재로 녹아내린 ESS 배터리 내부.
▲화재로 녹아내린 ESS 배터리 내부.

[이투뉴스] 한국 ESS 산업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GW(기가와트) 단위로 공급된 설비가 잇따른 연쇄 화재와 원인규명 조사로 파행운영 되는 가운데 조만간 가격·품질을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 제품의 내수시장 공략이 본격화 될 전망이라서다.

ESS 산업은 박근혜 정부 때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요금 특례와 정부 보조금(REC)으로 중점 육성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공명심과 일부 대기업의 무책임한 사고대응에 산업 자체가 회생불능 수준의 치명상을 입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ESS 화재사고 원인규명에 나선 민관조사위는 지난 28일 산업기술시험원에서 정례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조사결과 발표시기나 내용에 대해 이렇다 할 중지를 모으지 못하고 산회했다.

앞서 조사위는 ESS화재 원인을 21개 유형으로 분류해 3월말쯤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모의시험 중 예상치 못한 또다른 유형의 화재원인이 나타나면서 현재는 발표시점을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명확한 원인규명이 안된 상태에서 재가동 등을 권고했다가 화재가 재발할 경우 정부로서도 뒷감당이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당국을 특히 당혹스럽게 했던 부분은 예상보다 취약한 배터리 안정성이다. 최근 한전 한 시험장에서 진행된 재현시험에서 A사 ESS는 외부 지락사고(Grounding fault) 조건을 부여하자 고조파(高調波)가 배터리 쪽으로 흘러들어가 삽시간에 직류계통 보호장치가 타버렸다.

보호장치가 외부 충격을 걸러낼 겨를도 없이 이런 식으로 자체기능을 상실하면, 이후 배터리 셀 과열과 화재예방이 불가능해진다. 더욱이 전력망의 고조파는 주변 여건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언제, 어떻게 ESS에 영향을 끼칠지 특정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배터리는 어떤 외부충격이라도 자체 위험차단이 가능해야 하는데, 일부 제품은 그런 기본요건조차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견해도 있다.

업계에 의하면 작년말 일어난 연쇄 화재의 상당수는 충전을 끝낸 배터리가 셀(전지) 밸런싱(balancing) 작업을 하는 과정(시간대)에 일어났다. 셀 밸런싱은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각 셀의 전압, 전류, 온도 등을 체크해 충전량을 균일하게 맞추는 작업을 말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BMS가 셀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취약한 셀에 과충전할 경우 과열 및 화재로 이어진다. 민관조사위 측은 최근까지도 이런 셀 밸런싱 과정의 화재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셀의 화재가 삽시간에 다른 셀로 전이·확산되는 열폭주 현상도 의문부호로 남아있다. 전지가 이상과열되면 전해액이 기화되면서 가스가 발생하고, 이때 벤트라는 물리적 격막이 터져 문제를 국소화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화재는 인근 셀의 열폭주로 전면 확산됐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가들조차 납득 안되는 내용들이다. 합동조사 이전에 사실 배터리 제조사가 먼저 명확히 해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특정 배터리를 비공식적으로 교체해 빈축을 산 사례도 있다. B사는 최근까지 자사 배터리를 채택한 사업장을 방문해 특정기간 출하된 배터리 모듈 수만개, 약 500억원 어치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직후 '향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선 법적으로 문제 삼지않겠다'는 내용의 서명을 요구해 사업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ESS 시스템기업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정식 리콜통보도 없이 조용히 문제가 되는 제품만 골라 교체하는 것도 모자라 상식이하의 무책임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해외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원인규명과 후속조치 이후라도 ESS에서 언제든 추가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딜레마다. 외관은 멀쩡해도 외부 충격요인이 배터리 내부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고, 가동시간이 누적되면 열화가 발생해 특정 셀이 취약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뉴욕 등은 건물 내 ESS설치를 원천 금지하고 있고, 일본은 전력 연계용으로 대용량 배터리를 아예 쓰지 않고 있다.

전력학계 전문가는 "장기적으로 또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운영기간이 쌓여서 발생하는 진행성의 위험도 크다"면서 "아직 규명되지 않은 시스템간 부조화 문제까지 면밀하게 짚어보고 재가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일각의 소문처럼 오는 5월로 발표시기를 못박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이귀현 산업부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과장은 “원인규명이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계속 시험 중이며, 새로운 이슈가 제기되면 추가시험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과학적으로 원인을 규명해 국민께 그 내용을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조사결과 및 후속조치 발표에 위험을 무릅쓰고 설비 재가동에 들어간 다중이용시설도 있다.

서울 소재 A 빌딩은 최근 미국산 가스감지장치를 도입해 ESS에 설치한 뒤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감지기를 설치하면 ESS에 문제가 생겨 화재로 확산되기 전 초동조치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계산에서다.

앞서 이 시설은 작년 말 피크부하 저감용 ESS를 설치했다가 정부 가동중단 권고 이후 전력망에서 설비를 분리시켰었다. 한 ESS기업 관계자는 "광주에선 한 시공업자가 손실을 감당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돈다. 곧 국산 배터리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중국산이 밀고 들어온다. 게임은 끝났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정책 실패의 교훈을 뼈저리게 되새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고언도 나온다. 

에너지컨설팅기업 A 대표는 "신산업은 철저한 기술적 검증과 인증제 도입으로 초기시장 문을 열어야 함에도 ESS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검증과정을 생략하고 물량확대와 예산소진에만 급급했다. 시작부터 무리수였다"면서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빨리 봉합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원인을 파악해 철저한 후속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 실적을 위해 졸속 추진된 정책사업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교훈을 남겼으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제도나 정책이 예산낭비는 물론 시장실패 가능성을 가속화한데 대해 정책당국자들과 정부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면서 "현 정부 수소사회 정책도 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차 살펴보고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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