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대표 한목소리 "감축 시나리오 1,2,3 모두 뚜렷한 이행방안 없어"

[이투뉴스 손지원 기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부의 중기 보고서가 발표된 후 각계의 격론이 오가고 있다. 이제 논의는 코펜하겐 총회에서 국내외 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중심을 두고 산업계, 학계, 시민단체, 녹색위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상태다.

올해 12월 열릴 코펜하겐협의회에서 국제사회가 한국에 더 높은 수치를 요구한다면 그에 따른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다행히 이번 시나리오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약속한 감축 목표치에 대한 책임을 2020년까지 져야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현 정권 퇴진 후인 2020년까지 과연 무사히 이 약속이 이행될 수 있을 것인가, 이루지 못할 약속을 국제사회에 내놓은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달초 발표됐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 보고서는 우선 감축의지를 국내외에 알렸다는 것에 칭찬을, 그런데 도대체 이 약속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해선 뭇매를 맞고 있다.

이에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지난 26일 서울 혜화동 사무실에서 각계 대표를 초청해 원탁 토론회를 가졌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뤄진 공청회나 찬반 토론이 아닌 서로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날 역시 각계 대표의 모서리진 격론이 오고 갔다.

이날 패널로 초정된 인사는 이경훈 대한상공회의소 기후변화분과장(산업계),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시민단체),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학계), 정익철 런던대학교 계획학과 연구원(학계), 손옥주 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과장(정부)다.

앞으로 3개월 남은 코펜하겐 총회, 무엇이 논란의 쟁점인지 토론회를 통해 꼬인 실타래를 풀어봤다.

 

▲ 경실련 내 갈등해소센터에서 주최한 온길가스감축 목표 및 이행방안에 관한 합의모색 원탁토론회에 각계 대표들이 참여해 토론하고 있다.

◆"전략만 앞세워 현실성 없다…'돈은 어디서"

이번 정부의 시나리오에 대해 산업계와 시민단체, 학계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는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협의를 위해 지나치게 '전략적 측면'으로만 접근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왜 현실성이 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각계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산업계는 "시나리오 3의 계획대로 최대 30% 감축이 2020년까지 가능하기 위해서는 CCS 기술(이산화탄소 포집기술)이 성공적으로 10년 안에 정착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이 기술은 지질학적 문제나 재정적 지원문제로 빠른 시일 내에 실행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산업계는 "아직 개발단계의 기술이 앞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대대적인 역할을 하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며 "산업계가 느끼는 부담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치명적이다"고 말했다.

당장 부담은 '돈'의 문제다. 온실가스 저감연구 지원에 정부가 뚜렷한 계획을 언급하지 않아 당장 기술개발에 산업계가 제 살을 깎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계는 "유럽연합이 ULCOS(Ultra Low CO₂ Steel making) 이란 온실가스 저감연구 추진 비용에 60%의 예산지원을 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COURSE 50 Project'에 전액을 지원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정부 지원 없이 10년 안에 온실가스를 줄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민단체, '1990년이냐 2005년이냐, 데이터 신뢰도 낮아'

▲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
시민단체는 1990년을 기준으로 하느냐, 2005년을 기준으로 감축량을 결정하느냐를 두고 "결국 정부가 숫자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속이려 한다"고 비난했다.

현재 2005년으로 기준으로 잡은 BAU(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경우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시나리오 1은 8% 증가, 2는 동결, 3은 4% 감축하겠다는 것이지만 이것을 1990년 기준으로 바꾸는 순간 세번째 시나리오만 보더라도 1990년 대비 91% 증가하겠다는 것이 된다.

최승국 사무처장은 선진국이 모두 1990년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고 있는 이때에 2005년을 기준으로 감축량을 부풀린 계획이 국내외에 얼마만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데이터의 신뢰도에 대해 회의감을 표했다.

◆학계, "국제사회 현실과 따로 노는 한국의 'early mover'"

 

▲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학계에서는 국제사회 협상 과정을 현실적으로 볼 것을 주장했다. 조영탁 교수는 "12월 코펜하겐 협의회는 사실 미국과 중국 간의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며 팽팽한 대결에 협상 타결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현 정부는 얼리 무버(early mover)가 될 것을 주장하며 서둘렀지만 협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정부의 계획대로 협상이 타결된다 하더라도 시나리오 이행에 대한 실질적 방안도 없다"며 "4대강 사업 같은 반환경적인 사업에 22조원을 쏟고 있는 정부가 현재 어떤 계획을 가진 것인지 의문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

조 교수는 이어 "녹색위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나리오 2를 토대로 예측한 온실가스 감축비용 가계부담액이 16만원이다. 총 가구수가 1600만이라고 했을 때 2020년 까지 시나리오 2가 실현되기 위해서 시민들이 부담하는 금액이 25조원이 된다"며 "4대강에 쏟는 투자금을 이 자금으로 쓰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앞으로의 이행방안에 각계 대표 모두 "안개 속을 걷는 기분"

이경훈 과장은 "차라리 국제사회에 표준안이 나와서 기업 모두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의무가 동일하게 부여돼 페어플레이 약속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과장은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산업계에게 당장 10년 안에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하라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인 셈"이라며 "의무보다도 실질적인 인센티브 부여로 산업계가 자발적으로 감축하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 예로 산업계가 공동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나 국제적으로 동종사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원단위나 에너지 효율이 세계 상위 10% 안에 든다면 감축목표를 면제해 주는 등의 특혜를 주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시민단체 대표로 참여한 최 사무처장은 "이번 시나리오의 이행방안에 정부의 정책의지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에너지 가격 합리화와 탄소세 도입 등 정책변화 의지는 전혀 없고 기술발전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그동안 에너지 과소비 국가였던 한국이 먼저 에너지 가격을 합리화하고 기업에게 배출한 탄소양만큼 세금을 걷는 탄소세를 도입하는 등 큰 그림의 정치적 의지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학계 대표인 조 교수는 "그동안 전기요금이 이만큼 싼 나라도 없었다"며 에너지 세제요금과 전력요금이 지나치게 저렴해 에너지 과소비 국가가 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지적했다.

그는 "특히 심야시간에 원가의 50~60%로 전기를 마구 공급해 왔는데 사실 이 요금을 올려야 할 필요도 있지만 산업계뿐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란이 생길 것이다"며 아직 시민사회와 산업계에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식이 피부에 와닫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10년 안에 감축목표를 이룰지 의문을 표시했다.

◆공론(公論)이 될 것인가 공론(空論)이 될 것인가

조영탁 교수와 정익철 연구원이 방안과 형식 모색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 정익철 런던대학교 환경ㆍ에너지정책 박사.
정익철 연구원은 먼저 "한국사회의 현 에너지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며 단호한 어조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 연구원은 "공론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여론 파악이나 다수의 중론이 무엇이냐가 아니다"며 "공론은 능동적인 논의를 거쳐 공공선을 추구하는 행위인데 현재 상황을 지켜보면 정부가 먼저 결과치를 발표하고 수치의 적절성에 대해 각계가 평가를 하고 책임 배분을 하는 형태로 벌써 공론화의 방향이 어긋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부는 올해 안에 시나리오 1,2,3을 주고 선택하라는 셈이다. 시민들에겐 자기 의견을 적을 공간 하나 주지 않고 선택하라고 하는 여론조사를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하자고 하는 것이다"며 정부의 사회공론화 과정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 손옥주 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과장.
손옥주 과장은 "정부의 신뢰도가 이번 여론조사로 단칼에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실무 담당자로서 사회 각층에 모든 걸 오픈하고 검증 받고 하라는 셈인데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손 과장은 각계 대표자들이 앞으로의 이행방안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원하는 정도의 깊이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자칫 국제사회에 우리가 꺼낼 수 있는 협상 카드를 모두 꺼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한 뒤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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