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와 의견 충돌…시나리오 완성까지 7년 걸려

 

▲ 최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은 아이디어의 원천을 묻자 "평소에도 엉뚱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엉뚱한 생각만 적는 노트도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투뉴스] 각종 자기계발서와 지침서의 홍수 속에서 나온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제목과 포스터만 얼핏 보면 야릇한 B급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재기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구석구석 재치와 익살로 점철된 영화를 보고 나오면 이렇게 신선하고 엉뚱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 궁금증의 주인공 이원석 감독을 만났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이원석 감독의 입봉작이다. 자신이 만든 첫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심정을 물으니 "사람들이 다 마음을 비우고 평점 절대 보지 말라고 했는데 10초에 한 번씩 보고 있다.(웃음) 여러가지로 신경이 쓰인다"고 긴장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 <남자사용설명서> 처음엔 블랙 코미디였다?

이 감독은 학창시절을 모두 미국에서 보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잠깐 들어와 일을 하기도 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떠나 영화 공부를 이어갔다. 그 때 만난 유명 제작자가 "한국에 들어오면 영화하게 해주겠다"고 한 말만 믿고 곧장 한국에 들어왔다.

"그때 짐 싸가지고 한국에 왔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분은 '너 여기 웬일이야?'라는 뉘앙스로 날 바라보시고.  그래도 그 때 들어와서 쓴 시나리오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인 감독들을 지원해주는 NDIF상을 받았다."

제작 사정상 당시 작업했던 시나리오를 영화화하진 못했지만 뒤이어 <남자사용설명서>를 기획했다. 이 감독이 초반에 생각한 <남자사용설명서>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고.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쓰고 싶었다.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였는데, 한국에선 그런 영화를 찍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 작가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지금의 시나리오가 됐는데, 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7년 가까이 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건데, 그 때 내 생각대로 찍었으면 아무도 안 봤을 것 같다.(웃음)"

▲ "진지하게 살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기 힘들다"는 이원석 감독. 사진을 찍을 때도 장난스러운 모습이 묻어났다.

◆ 오정세의 '찌질함', 이시영의 '씩씩함'에 반해 캐스팅

이시영을 캐스팅하기 위해 평소 그녀가 좋아하기로 소문난 건담 프라모델을 사들고 찾아갔다. 다행히 이시영은 캐스팅을 흔쾌히 수락했다.

"몇년 전에 드라마에 조연으로 나온 시영 씨를 봤었는데, 얼마 지나니 주연으로 나오더라. 그걸 보면서 '아, 저 배우 정말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보나 역에 제격이었다."

이 감독은 인터뷰 내내 이시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반복해 밝혔다. 그녀가 이 감독이 블랙 코미디와 로맨틱 코미디 사이에서 갈등을 할 때 자주 의논 상대가 돼주기도 하고 위험한 세트장 붕괴 신에도 대역 없이 직접 뛰어드는 등 영화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로맨틱 코미디로 방향을 잡고 나니 남자 배역에 대한 얘기가 화두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여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는 멋진 배우를 원했지만 이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평범한 사람으로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원빈 씨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다. 내 친구들 별명은 다 '미륵돼지' 이런건데.(웃음) 현실감 있게 가고 싶었다. 오정세가 <쩨쩨한 로맨스>에서 보여준 '찌질함의 디테일'이 좋았다."

◆ "계속 엉뚱하고 재밌는 영화 만들고 싶어"

그의 재기발랄함을 한 번 보고 나니 차기작이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 차기작을 묻자 "사극"이라는 답이 나왔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극은 사극인데 엉뚱한 사극"이라는 말이 덧붙었다.

"계속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는 김지운 감독님이나 봉준호 감독님 같은 멋진 영화는 못 만들 것 같다. 그냥 나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보고 나면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가고 싶다."

이고운 기자 april0408@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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