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규 SR코리아 대표

▲황상규 SR코리아 대표
황상규
SR코리아 대표

[이투뉴스 칼럼 / 황상규] 얼마 전 특별한 여행을 했다. 보통 여행이라 하면 유서 깊은 곳을 방문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추억을 쌓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번 여행은 유럽 하수처리장 체험이었다. 멀리서부터 고약한 냄새가 스멀거리는 곳, 우리 인간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뒤안길과 같은 그 곳.

하수처리장에서는 하수슬러지가 발생한다. 슬러지(sludge)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찌꺼기에 해당한다. 하수나 오수, 정화조 처리수를 맑게 정화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남는 찌꺼기가 바로 하수슬러지다.

환경 분야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슬러지 문제를 만나게 되고,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고민하고 연구하게 됐고, 그리하여 이번 여행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니 ‘선진 슬러지 체험’ 여행이 된 것이다. 슬러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어느 하수처리장 직원의 말처럼, ‘똥가루’라 할 수 있다. 아니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똥가루보다 더 독하고, 유해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슬러지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현재 대부분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하는 슬러지는 건조시설에서 건조해 화력발전소 등에서 혼소하거나 소각처리하고 있다. 이런 처리 방식에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투입되고, 막대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발생해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최근 유럽의 사례들처럼 바이오가스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자체 메탄 에너지로 고온 고압의 열가수분해(THP) 기술로 처리하니, 골칫거리였던 슬러지가 쉽게 탈수돼 고슬고슬하고, 냄새도 거의 없고, 수분도 적당해 최적의 상태가 된다. 이를 바이오솔리드(biosolid)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생토(生土)라 할만하다. 유럽 현지의 인근 농민들은 이것은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 서로 먼저 가져가려고 한다. 하수슬러지가 귀중한 자원으로 순환되는 순간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 최종 탈수 슬러지를 ‘바이오솔리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물질이 원래 흙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의 뜻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고형물’이란 뜻이고, 말 그대로 ‘생토’가 된다. 실제로 우리 인간의 몸을 비롯한 생물체는 그 구성 원소가 흙의 성분과 거의 같다고 한다. 가장 많은 원소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등이고, 여러 무기물질들이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고, 그 성분들이 그대로 흙속에도 있다. 규소(Si), 알루미늄(Al), 철(Fe), 칼슘(Ca), 나트륨(Na), 칼륨(K), 인(P), 구리(Cu), 아연(Zn), 망간(Mn) 등등.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하수처리장에 발생하는 최종 찌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럽게 생각해 비싼 에너지를 들여 건조하거나 태워서 공기 중으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로 날려 버리지 말고, 다시 흙으로 돌려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유럽 슬러지 체험 여행에서 확인한 새로운 기술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압력밥솥의 원리와 비슷하다. 유기물을 푹 찌고 삶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냄새 원인 물질인 황화합물 및 방향족 유기화합물이 거의 분해되고, 기생충과 박테리아, 바이러스, 잔류 항생제, 곰팡이 독성 물질 등이 모두 사멸하게 된다. 특히 160도 이상 6기압에서 100도 1기압으로 급격히 감압 사출(Steam Explosion) 함으로써 유기화합물 분자들이 절단, 분해돼 메탄 발효균이 더욱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일반 혐기성 소화 과정에서는 보통 30~60일 소요되는 체류시간이 이 기술을 적용하면 15~16일로 줄어들고,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유기물이 메탄 등 바이오가스로 변하게 된다.

이 처리 기술의 백미는 소화 후 잔재물인 바이오솔리드를 생토로 활용하는 것인데, 혐기성 소화 후 남는 것은 미세한 진흙 등 무기입자와 리그닌과 결정질 셀룰로오스인 면섬유, 마섬유 등만 남게 되어, 최고의 비료와 토지개량제가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탄소 성분이 고정돼 있어서 온실가스 고정 효과도 크고, 식물 생장에 특히 효과가 좋다. 인간으로부터 나온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물질이 살아 숨 쉬는 흙으로 되돌아가는 혁신적인 자원순환 기술인 셈이다. 그 결과 얻어진 물질이 흙을 살리고 땅심을 북돋워 다시 먹거리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니 그 발상이 놀랍고 대단하다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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